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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이야기 상식]

우리나라의 소중한 유산, 사적1호~10호 알아보기!!

오늘은 우리나라의 소중한 유산 중에서 사적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사적이란 기념물 중에서 유적·제사·신앙·정치·국방·산업·교통·토목·교육·사회사업·분묘·비 등으로서 중요한 것을 뜻하는데요. 현재 사적은 제1호부터 제533호까지 있는데 그 중 사적1호~10호까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1. 사적1호 - 경주 포석정지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454-3번지

 지정일(등록일) - 1963년 1월 21일

 시대 - 통일신라

(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유적 정보 - 신라시대 연회장소로서 신라 제49대 헌강왕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5.234㎡의 면적으로 원래는 정자가 있었으나 현재는 정자는 없고 물길만 남아있다. 물길은 무려 22m이며 높낮이의 차이는 5.9cm이다. 고대 중국의 명필이었던 왕희지가 벚들과 유상곡수연을 하였는데, 이를 본따서 만들어졌다고 한다.(유상곡수연 : 물 위에 술잔을 띄워 술잔이 자기 앞에 오는 동안 시를 읊어야 하는데 시를 짓지 못하면 벌로 술 3잔을 마셔야했던 잔치)


2. 사적2호 - 김해 봉황동 유적

 소재지 - 경남 김해시 봉황동 253번지

 지정일(등록일) - 1963년 1월 21일

 시대 - 청동시대

(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유적 정보 -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1~4세기경의 생활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유적으로, 패총은 조개껍질과 생활 쓰레기가 함께 버려져 쌓여 있는 곳인데, '조개더미'라고도 한다. 봉황대 언덕 인근에 시기가 서로 다른 회현리 조개더미(조개더미에서 토기, 석기, 가락바퀴, 중국 화폐인 화천, 탄화미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와 다양한 무덤유적(고인돌, 옹관묘)들이 있다. 


3. 사적3호 - 수원 화성

 소재지 - 경기 수원시 팔달구 장안동 1-2번지

 지정일(등록일) - 1963년 01월 21일

 시대 - 조선시대

(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유적 정보 - 서쪽으로는 팔달산을 동쪽으로는 낮은 구릉의 평평한 평지를 따라 쌓아진 평산성이다. 1794년(정조 18년)에 짓기 시작해 1796년(정조 20년)에 완성되었다. 수원 화성의 둘레는 약 5.7km, 높이는 4~6m에 달한다. 다산 정약용이 설계하였으며 거중기 등을 이용해 매우 과학적이고 실용적으로 지어졌다. 그리고 수원 화성 안에는 화성행궁, 내포사, 사직단, 중포사가 있었었다.(지금은 화성행궁과 내포사만 복원되어있다.) 1796년부터 현재에 오면서 성곽과 시설물들이 파손되었는데 1975년부터 보수와 복원을 하여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다. 

※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4. 사적4호 - 부여 가림성

 소재지 - 충남 부여군 임천면 성흥로97번길 167 (군사리)

 지정일(등록일) - 1963년 01월 21일

 시대 - 백제

(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유적 정보 - 백제의 수도였었던 웅진성과 사비성을 보호하기 위해 금강 하류 부근에 지은 석성으로 501년(백제 동성왕 23년)에 위사좌평이었던 백가가 쌓았다고 전해진다. 가림성은 돌과 흙으로 성벽을 쌓았으며, 형태는 테뫼식(산꼭대기를 빙둘러 쌓은 형태)이다. 성 내부에는 군창터, 남서북문터,우물터 3곳 그리고 보루(방어시설)가 남아있다. 백제시대에 만들어진 성곽 중 유일하게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성이다.


5. 사적5호 - 부여 부소산성

 소재지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31 (쌍북리)

 지정일(등록일) - 1963년 01월 21일

 시대 - 삼국시대

(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유적 정보 - 사비시대의 도성으로 성이 자리한 부소산의 이름을 따서 부소산성이라고 부른다.(삼국사기에서는 사비성, 백제본기에서는 소부리성이라 기록되어 있다.) 수도를 웅진에서 사비로 옮기던 538년(백제 성왕 16년)에 왕궁을 지키기 위하여 이중의 성벽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500년(동성왕 22년)경에 테뫼식 산성이 이미 있었던 것을 605년(무왕 6년)경에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한 것으로 짐작되어 진다. 그리하여 테뫼식과 포곡식이 혼합된 형태의 산성이다. 성 내부에는 군창터, 영일루, 사비루, 낙화암, 고란사 등이 남아있다. 


6. 사적6호 - 경주 황룡사지

 소재지 - 경북 경주시 구황동 320-1번지

 지정일(등록일) - 1963년 01월 21일

 시대 - 신라

(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유적 정보 - 553년(신라 진흥왕 14년) 경주 월성 동편에 궁궐을 짓던 중 그 곳에서 황룡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찰(절)로 고쳐 지어지기 시작해 17년 만에 완공되었다. 이후 5m가 넘는 삼존불상을 만들고 이를 모시고자 584년(신라 진평왕 6년)에 금당을 지었다. 그리고 643년(신라 선덕여왕 12년)에 자장의 권유로 외적의 공격을 막기 위한 바람으로 9층 목탑을 건축하게 되는데, 백제의 장인 아비지에 의해 645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무려 93년간에 걸쳐 조성된 큰 절이었다.) 하지만 1238년(고려 고종 25년) 몽고의 침입으로 다 타버려 현재는 그 흔적만 남아있다. 


7. 사적7호 - 경주 망덕사지

 소재지 - 경북 경주시 배반동 956번지

 지정일(등록일) - 1963년 01월 21일

 시대 - 통일신라

(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유적 정보 - 신라 문무왕이나 문왕 때 지어진 것으로 전해지는 경주 낭산 기슭에 위치한 절터로 사천왕사와 마주하고 있다. 679년(신라 문무왕 19년) 당나라가 침입을 하자 부처의 힘으로 이를 이겨내고자 사천왕사를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실을 당나라가 알고 사신을 보내오자 사천왕사 대신 이 절을 보여 주며 당나라의 덕을 우러른다는 뜻에서 망덕사라 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동서 목탑터, 금당터, 강당터, 중문터, 회랑터가 남아있다. 쌍탑 가람배치 형태이다.


8. 사적8호 - 경주 사천왕사지

 소재지 - 경북 경주시 배반동 935-2번지

 지정일(등록일) - 1963년 01월 21일

 시대 - 통일신라

(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유적 정보 - 674년(신라 문무왕 14년) 당나라가 신라를 공격하려 하자 명랑법사에게 이를 막을 계책을 구하는데, 신유림에 사천왕사라는 사찰을 지어 부처의 힘으로 막아내자고 하였다. 이에 사천왕사는 679년에 완공되었다. 절터에는 머리부분이 없어진 귀부 2기와 비신 그리고 당간지주 1기가 현재 남아있다. 사천왕사는 전형적인 쌍탑식 가람 배치 형태를 하고 있으며 통일신라 시대에 접어들고 가장 먼저 지은 절이었다. 


9. 사적9호 - 없음


10. 사적10호 - 서울 한양도성

 소재지 - 서울 종로구 누상동 산1-3번지 외

 지정일(등록일) - 1963년 01월 21일

 시대 - 조선시대

(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유적 정보 - 한양을 둘러싼 도성으로 1395년(조선 태조 4년) 도성축조도감을 설치하고 수도를 방어하기 위해 쌓았다. 흙과 돌로 지은 성곽에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을 두었다. 이후 1422년(조선 세종 4년) 흙으로 쌓은 곳을 전부 돌로 바꾸고 공격과 방어시설을 늘렸다. 그리고 1704년(조선 숙종 30년)정사각형의 돌들을 다듬어서 벽면이 수직이 되도록 쌓았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시면 더욱 다양한 자료들과 정확한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으니 한 번 방문하셔서 둘러보세요~~우리의 문화재는 조금만 여유를 가지면 찾아 볼 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