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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이야기 상식]

고대 이집트 최고의 미녀, 네페르티티 여왕

1923년 하나의 보물을 두고 이집트 정부와 독일 정부, 두 나라 사이에 대립이 고조되었다. 이집트 정부의 것이니 즉각 반환하라고 요구하는 이집트 정부와 보물이 운송과정에서 손상우려가 있다며 반환을 거부하는 독일 정부 대표 아돌프 히틀러, 이 보물은 바로 고대 이집트 최고의 미녀라고 불리는 여인의 흉상이었다. 1912년 12월 6일, 이집트 나일강 인근 사막도시 아켈타톤에서 독일의 고고학팀은 이집트 정부의 허가 하에 유적을 발굴 중이었다. 그러던 중 독일의 이집트 전문학자인 루트비히 보르하르트(Ludwing Borchardt)는 아름다운 여인의 흉상을 발견한다. 그리고 '루트비히 보르하르트'는 이집트 출입국 관리들의 눈을 피해 흉상을 독일로 밀반출한다.(당시 흉상에 석고를 발라 몰라보게 했다고 한다.) 이렇게 독일로 밀반출된 이 조각상은 1923년 원래 상태로 복원되어 독일 베를린 알테즈 박물관에 전시된다. 기원전 1360년쯤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어지는 이 조각상은 왼쪽 눈동자가 없는 미완성 상태였지만 매우 섬세하고 정밀하게 조각되어 현대의 미인상에 견주어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밝은 갈색 피부, 갸름한 얼굴, 커다란 눈, 오똑한 코, 도톰한 입술, 가늘고 긴목의 형태) 이에 이집트 예술품 중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데, 이 흉상이 바로 이집트 여왕 '네페르티티'의 조각상이다. 클레오파트라(Cleopatra), 아낙수나문(Anksnmn)과 함께 고대 이집트 3대 미녀로 꼽히는 네페르티티는 이름의 뜻 '미녀가 왔다.'를 보여주듯이 이집트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미인이었다. '네페르티티'는 기원전 14세기 고대 이집트 제18왕조의 10대 파라오 아크나톤(Akhnaton, 아멘호테프 4세)이 가장 사랑했던 왕비였으며, 파라오 투탕카멘(이집트 제18왕조 12대 파라오, Tutankhamen)의 장모이자 양모로 알려져 있다. 또한 '네페르티티'는 고대 이집트 왕국의 최초의 여왕이었다. 그리고 남편인 10대 파라오 아크나톤과 함께 이집트를 다스릴만큼 엄청난 권력을 가졌었다. 그런데 기원전 1367년 홀연히 역사 속 기록에서 사라진다. 뿐만아니라 무덤, 유물, 유적 등 '네페르티티'와 관련된 모든 기록이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네페르티티'의 기록 실종에 대해서 여러가지 설이 있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첫 번째, 아크나톤 왕 14년 이집트에 전염병이 유행했는데 이때 '네페르티티'가 사망했다는 설.

두 번째, 아크나톤 왕이 사망하고 다음 파라오인 투탕카멘이 즉위하기 전에 잘 알려지지 않은 파라오 '스멘카레'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 '스멘카레'가 '네페르티티'라는 설.

세 번째, 기원전 1367년 '네페르티티'가 아크나톤 왕의 사랑을 잃고 왕비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설.

네 번째, 일신교(태양신을 유일신으로 숭배하는 종교)를 도입하는 종교혁명이 실패로 돌아가자 정치적인 이유로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는 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런데, 독일 베를린 알테즈 박물관에 공개된 '네페르티티'의 조각상은 기이하게도 왼쪽 눈동자가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 때문인지 '네페르티티' 조각상은 보는 각도에 따라 소녀처럼 보이기도 하고, 성숙하고 아름다운 여인처럼 보이기도 하고, 추한 여인으로 보이기도 하는 등 여러 얼굴로 보였다. 이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주장이 있다.

첫 번째, 고대 이집트 궁중 조각가였던 투트모스가 '네페르티티'를 사랑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원한을 담아 아름다움과 추함이라는 이미지를 섞어 만들었다는 설.

두 번째, 고대 이집트 궁중 조각가였던 투트모스가 '네페르티티'의 실제 아름다움에 자신이 만든 조각상이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조각을 미완성인 상태로 남겨놓았다는 설.

세 번재, '네페르티티'조각상을 밀반출했던 '루트비히 보르하르트(Ludwing Borchardt)'가 밀반출 과정 중 훼손시켰다는 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런데 2003년 영국 요크대학의 '조앤 플레처'교수가 놀라운 주장을 한다. 1898년 프랑스의 이집트 고고학자 '빅터 로렉'이 발견한 7대 파라오 아멘호테프 2세의 무덤에서 발견되었던 '젊은 여인'이라는 이름이 붙어진 미라가 발견되었었다. 하지만 당시 훼손 상태가 심해서 주목을 받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 미라가 흉상과 유사하다고 느낀 '조앤 플레처'교수가 12년간 미라의 가발 조각들과 뼈의 형태 등을 분석한 결과 미라를 싼 천이 당시 왕족들만이 사용한 고급 천이었다는 것과 최상의 약품으로 만들어졌다는 것, 왕이나 왕비의 미라를 만들 때만 사용하는 방식으로 팔이 꺽어져 있다는 점 그리고 미라의 양쪽 귀에 귀걸이 구멍이 있다는 점 등이 흉상의 모습과 완벽히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미라를 복원해 '네페르티티'의 당시 얼굴을 공개하였는데 아프리카계의 미인의 모습을 하고 있어 더욱 주목을 받기도 했다.)

많은 논란이 계속되던 2003년 8월 30일, 이집트 카이로 유물관리 위원회 사무총안 '자히 하와스'는 '조앤 플레처'교수가 '네페르티티'의 미라라고 주장한 미라에 대해서 '네페르티티'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고대 남성의 미라라며 반박한다. 이에 대한 근거로 양쪽 귀에 귀걸이 구멍은 당시 고대 이집트에서 남성과 여성 모두 했던 풍습이었으며 왕비들은 귀를 뚫지 않고 가발을 이용해서 귀걸이를 착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6번이나 출산을 했다고 알려진 '네페르티티' 여왕이라고 하기엔 이 미라의 골반이 너무 작다는 것이었다. 뿐만아니라 '네페르티티'는 30세 쯤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 미라는 18~30세로 추정되므로 '네페르티티'의 미라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에 진짜 '네페르티티'의 미라를 찾기 위한 발굴 작업이 본격화된다. 그 결과 투탕카멘, 아크나톤 등 수많은 미라들에 신원이 밝혀진다. 하지만 아쉽게도 '네페르티티'의 진짜 미라는 아직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