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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이야기 상식]

페르시아 왕자 신라공주, 세기의 결혼 이야기

2009년 영국 국립도서관에서 한 권의 책을 보고있는 이란의 학자....그는 그 책을 보다 깜짝놀란다. 그 책에 내용 중 '바실라'라고 기록된 나라명에서 페르시아의 왕자와 신라의 공주가 혼인을 했다는 내용때문이었다. 1400년 전의 기록인 이 책에는 그 당시에 내용이 세세히 작성되어있었다. 그 책은 바로 '쿠쉬나메'라는 책이었는데, 11세기 이란샤 이븐 압달 하이르가 구전으로 전해지던 것을 최초로 7세기부터 전해지던 것을 기록하고 1998년 잘랄 마티니가 현대 이란어로 편찬한 책이었는데, 이란의 전설적인 영웅 '페레이둔'이 자하크를 무찌르고 나라를 되찾는다는 대 서사시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그 이야기는 7세기 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지금의 이란이 있기 전에 사산조 페르시아가 멸망하자 페르시아 왕자 아브틴은 중국 인근 아름다운 나라 바실라로 망명한다. 그리고 당시 '바실라'는 타이후르라는 왕이 통치하고 있었는데, 아브틴은 타이후르 왕에게 딸 중 한명인 '파라랑'공주와의 혼인을 청한다.그러자 왕은 서른 명의 공주 중에서 '파라랑' 공주를 단번에 알아 맞추면 혼인을 승낙하겠다고 '아브틴'왕자에게 말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브틴'은 단 번에 '파라랑 공주'를 알아보았고 그녀와 결혼하게 되었다. 그렇게 페르시아의 왕자와 바실라의 공주가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페레이둔'이 적을 무찌르고 전설적인 영웅이 된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런데 2010년 이란, 쿠쉬나메에 등장하는 바실라가 통일 신라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이란 국립반장인 '다르유시 아크바르자데'박사는 한국의 이희수 교수와의 연구 끝에 절반에 달하는 400여편에 달하는 내용이인 바실라라는 곳이 신라라고 말한다.' 즉, 파라랑 공주 역시 신라의 공주이며, 쿠쉬나메의 모든 내용이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고 주장한다. 근데 이는 매우 놀라운 일이다. 왜냐하면 한국사에서 페르시아와 최초의 발견은 고려 현종 15년 페르시아와의 교류로 알려져 왔는데, 이미 그 전에 신라와 페르시아왕 교류가 있었고 두 나라가 혈맹으로 맺어져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기때문이었다. 

(출어 -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그 첫번 째 근거는, '바실라'에 대한 해석 및 기록

신라 = '더 좋은'

11세기 이전부터 이란의 많은 고서적에 기록된 바실라가 당시 신라의 모습과 일치한다는 것.

두번째 근거는

'세르빈 알리 조르바니'가 작성한 '도로와 왕국 총람'에서 '바실라'를 육지와 바다를 끼고 있는 번영한 곳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신라의 지럭 위치와 일치하며, 900년대에 기록된 이븐 나딤 '세계의 책'에서 역시 금이 많은 나라라고 되어 있는데 신라는 금이 많은 나라로 이는 신라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세버번째 근거는

'신라와 이란의 쌍둥이처럼 닮은 문물이다.'쿠쉬나메에는 신라의 공주 파라랑과 결혼하고 있었던 바실린이 왕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자신이 고향에서 많이 하던 말을 타고 하던 공놀이가 나오는데, 한국사에 보면 고려 의종 때 국가행사가 있을 때마다 이와 비슷한 격구를 했다는 기록이 있고 이를 근거로 페르시아에 아브틴으로 부터 이 놀이가 전해졌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경주 괘릉에서 발견된 무인석상에는 높은 코와 깊은 눈, 덥수룩한 수염 머리에 띠를 두른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이는 모습뿐아니라 페르시아 왕족의 모습과 흡사했다. 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자공작 무늬돌에는 새 두마리가 나무를 마주 보고 서있는 입수쌍조문 문양이 들어가있다. 이 역시 전형적인 페르시아에 문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경주 천마총에서 발견된 유리잔이 모양부터 제작 기법까지 이란 그물무늬 유리잔과 닮아있었다.

(출어 -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뿐만아니라, 아브틴이 바실라에 와서 타이후르왕의 환대를 받으며 입성해 공주와 결혼했다.는 내용이 개운포에 구름과 함께 나타난 용왕의 아들 처용을 헌강왕이 환대하며 서라벌로 데려와 신라의 여인과 혼인시켰다.는 내용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처용은 880년대 인물로 660년 경에 제작한 쿠쉬나메와는 시기가 맞지 않는 다는 점을 들어 이들에 주장을 반박하는 이도 있다. 이들은 처용이 아브틴 이후에 신라로 들어온 또다른 페르시아인으로 타이후르 왕은 헌강왕이 아니라 태종무열왕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정말 말 이들은 신라 시대에 누구였을까? 한편 일각에서는 나를 잃은 페르시아인들이 만든 설화에 불과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과하고 많은 학자들은 페르시아가 신라와 교역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정확한 쿠쉬나메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