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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이야기 상식]

뿌리를 찾아서, '족보'란


1. 족보의 정의

 족보(族譜)는 시조로부터 혈통의 계승관계가 있는 사람들의 선후 대수(代數)와 항렬별로 친소관계(親疎關係)를 밝힌 기록.[각주:1]


2. 족보의 연원

 족보기록의 역사는 중국의 주(周)나라에서 시작되었다. 주나라의 제도에 성(姓)을 받은 것을 관장하기 위하여 사상(司商)이라는 관직과 세계(世系)를 정하기 위하여 소사(小史)라는 관직이 있었다. <주례(周禮)>에 의하면, 소사는 계통(系統)을 정하고 소목(昭穆)을 분별하는 벼슬이었다. 족보는 파계(派系)를 밝히고 소목을 분별하기 위한 수단이므로 후세의 족보기록은 이 소사에 연원을 두고 있는 것이다.[각주:2]


3. 족보의 형태

 족보는 신분과 기록하는 방식, 범위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로 편찬되었다. 첫째, 족보는 신분과 지위에 따라서 왕실족보(王室族譜)와 사가족보(私家族譜)로 구분된다. 조선이 건국되고 왕실은 세계(世系)를 분명하게 하여 왕실의 위엄을 높이고 왕위계승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왕실족보를 편찬하였다. 왕실의 친족제도 정비와 왕실족보의 편찬은 사가(私家)의 족보 편찬에 영향을 주었다. 혼인을 통해 왕실과 일정한 관계를 가지고 있던 사대부들은 관료제와 신분제의 재정비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왕실과 마찬가지로 족보를 편찬하였다. 둘째, 족보는 기록하는 방식에 따라서 족도(族圖)와 족보(族譜), 팔고조도(八高祖圖), 가첩(家牒) 등으로 구분된다. 족도는 본인을 중심으로 종적인 조상세계를 계보화하고 횡적인 자녀와 내/외손의 파계를 정리하여 한 장의 도표로 만든 것이다. 족보는 조상에 대한 가계 기록을 보다 체계화하여 서책(書冊)으로 편찬한 것을 말한다. 팔고조도는 자기를 중심으로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형태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양쪽의 조상 내외를 고조부 대까지 거슬러 올라간 가계도이다. 가첩은 가보(家譜) 혹은 가승(家乘)이라고도 하는데, 동족의 전부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자기 집안의 직계에 한해서 발췌하고 초록한 세계표이다. 특히 가첩은 절첩본의 형태로 되어 있어서 휴대용으로 적합하였다. 셋째, 족보는 수록하는 범위에 따라서 씨족보(氏族譜)와 만성보(萬姓譜)로 구분된다. 씨족보는 특정한 성씨의 혈통관계를 밝힌 것으로 파보(派譜)와 대동보(大同譜)로 다시 구분된다. 가첩은 그것을 작성한 사람이 자기의 가계를 직계에 한정하여 기록한 계보(系譜)이다. 대동보는 한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동성동본 모두를 기록한 족보이며, 파보는 동성동본 가운데 특정파만을 기록한 족보이다. 만성보는 특정 성관을 기록한 씨족보와 달리 모든 성관의 혈통관계를 기록한 것이다. 만성보는 자기 집안 뿐만 아니라 남의 집안까지도 연구하는 보학(譜學)이 발달하면서 타 성관의 가계를 알기 위해서 편찬되었다.[각주:3]


4. 한국의 가계기록(家系記錄)의 발전

 우리나라에서 가계기록의 역사는 매우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비문에 추모왕부터 17대 광개토왕에 이르는 역대 왕실의 계보를 기록한 것도 그 실례이다. 이후 통일신라에서도 가계의 분화에 따라 독립된 가계를 정리할 사회적 필요성으로 가계기록물이 만들어졌다. 고려 건국 후에는 문벌귀족사회가 전개되면서 직계조상을 주로 적는 가계기록이 등장했는데, 보-조-증조-외조의 사조(四祖)를 기준으로 하고, 여기에 처와 장인, 자녀와 사위의 이름을 적는 방식으로 기록하였다. 고려후기에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집단이 등장하면서 자신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조상의 계보를 멀리 끌어올리는 한편 모계와 처계 및 사위와 며느리의 가계를 종합한 가계기록을 만들었다.[각주:4]

 본격적인 의미의 가계기록이라 할 수 있는 족보는 조선 초기에 들어 작성되었다. 이들 족보는 외손을 본손과 마찬가지로 세대의 제한 없이 수록하였고, 자녀를 기록하는 순서도 출생 순으로 기록하였다. 그 후 17세기 후반 이후 18세기에 문벌숭상의 사회풍조로 인하여 자신과 후손들의 가계배경을 확실히 밝힐 필요성 때문에 합동가승보(合同家乘譜)가 유행하였다. 조선후기 족보는 부계혈족을 기록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외손에 대한 기록을 소략하고, 또한 자녀의 수록 순서도 선남후녀(先男後女)의 형식으로 수록하였다.


5. 한국 최고(最高)의 족보

 현재 전해오는 우리나라 최초의 족보(族譜)는 1476년에 간행된 안동권씨성화보(安東權氏成化譜)이다.[각주:5]


위에 내용 중 인용된 내용의 참고자료는 각주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1. 차장섭, 『조선시대 족보의 유형과 특징』 [본문으로]
  2. 권오영, 『조선시대의 족보기록에 보이는 유교이념의 양상과 의미』 [본문으로]
  3. 차장섭, 『조선시대 족보의 유형과 특징』 [본문으로]
  4. 김용선, 『족보 이전의 가계기록』,『한국사시민강좌』 [본문으로]
  5. 박용운, 『安東權氏의 사례를 통해 본 高麗社會의 一斷面』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