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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이야기 상식]

[서프라이즈] 롬멜의 보물, 그 행방은?

2007년 7월 18일, ‘테리 호지킨슨’이라는 저명한 탐험가가 놀라운 주장을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사라졌던 일명 사막의 여우라 불렸던 ‘에르빈 롬멜’의 보물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육군 원수였던 ‘에르빈 롬멜’은 능수능란한 지휘로 매우 유명했다. 히틀러 최측근인 ‘요제프 괴벨스’는 ‘사막의 여우 에르빈 롬멜’을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에게 있어 전설적인 존재라고 평가했고, 심지어 상대국이었던 영국의 수상 ‘처칠’ 또한 ‘에르빈 롬멜’을 위대한 장군이라고 평가했을 만큼 ‘에르빈 롬멜’은 독일군과 연합군에게 존경의 존재였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런데, 연합군의 계속된 공세로 독일군의 전선이 점점 무너지게 되자 1943년 ‘롬멜’의 전차부대는 북아프리카 튀니지로 퇴각한다. 그리고 얼마 후, 영국의 한 방송은 튀니지의 사하라 사막에서의 전투에서 연합군이 ‘롬멜’의 부대를 전멸했다고 보도한다. 그런데, ‘롬멜’의 정예부대가 사하라 사막 한 가운데에서 섬멸됐다는 것이 알려지자 ‘에르빈 롬멜’의 부대가 사하라 사막에 간 이유에 의문이 제기된다. 당시 북아프리카 전투에서 상당한 양의 보물들을 강탈한 ‘롬멜’과 친위대 사령관 ‘발터 라우프’(튀니지 나치 유대인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에게 각종 진귀한 역사적 유물들과 금은보화를 약탈했으며 특히 ‘제르바 섬’의 유대인들에게서는 440파운드의 금괴와 보물들을 강탈했다.), 그들이 수탈한 보물의 양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독일군이 계속해서 연합군에게 밀리기 시작하자 ‘롬멜’은 강탈한 보물들을 튀니지에서 이탈리아 남부로 옮기려 했지만, 이미 연합군이 북아프리카 해상까지 모두 장악했음을 알게 되자 ‘롬멜’은 정예부대에게 비밀기지에 보물들을 감출 것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런데, 그가 보물들을 숨기려고 한 장소가 바로 사하라 사막이었고 이로 인해 ‘롬멜’의 정예부대는 군용차 15~20대에 보물들을 싣고 사하라 사막으로 향했다. 그런데 정예부대가 사하라 사막의 비밀장소에 보물을 성공적으로 싣고 돌아오던 도중 연합군의 공격으로 몰살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후, ‘롬멜’이 히틀러에 의해 숙청을 당하자 어딘가에 숨겨진 보물의 위치가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섬멸당한 정예부대가 ‘롬멜’의 보물을 사하라 사막 어딘가에 숨겼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보물들을 찾으려는 수많은 탐험가들이 사하라 사막으로 몰려온다. 하지만 ‘롬멜’의 보물은 쉽게 발견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1948년 6월, 독일 프랑스영사관에 ‘페터 플라이크’라는 한 남성이 ‘코르시카 섬’의 여행 비자를 신청하는데, ‘페터 플라이크’가 제출한 서류를 보던 영사관 직원은 그가 옛 독일군 친위대 잠수부였다는 사실에 의문을 갖게 되고 이에 ‘페터 플라이크’를 조사한다. 그리고 곧 ‘페터 플라이크’로부터 놀라운 이야기을 듣게 된다. 5년 전인 1943년 9월 ‘페터 플라이크’는 상관으로부터 ‘코르시카 섬’ 근처 바다 속에서 철제 상자 6개를 숨길만한 장소를 찾으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이에 ‘페터 플라이크’는 코르시카 섬 인근 바다 속에서 적당한 동굴을 찾았다. 그 후, 그는 그 지점을 표시해 놓고 다음 날 보트에 철제 상자를 싣고 장교들과 함께 그 동굴로 떠났는데, 철제상자를 숨기는 장교들의 모습을 훔쳐보던 중 그 철제상자들 속에 엄청난 보물이 든 것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그는 그곳에 위치와 특징을 기억해 두었다고 한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롬멜의 보물’이 사하라 사막에 숨겨졌다고 알려진 것과는 달리 코르시카 섬 근처에 수장됐다는 ‘페터 플라이크’에 새로운 주장에 탐험가들은 이번엔 ‘코르시카 섬’으로 몰려들었고, 심지어 프랑스 정부는 ‘페터 플라이크’에게 협력을 제안하여 인양작업을 실시하기로 한다. 그런데 몇 달 동안 100억 프랑 이상을 들여 전문 잠수부들과 첨단 장비들을 총 동원해 탐색을 했으나 보물들을 찾지 못했다. 결국 ‘페터 플라이크’는 사기죄로 감옥에 구금된다. 그러던 1943년 9월 어느 날 밤, 독일 군인들이 코르시카 섬 근처 바다 속으로 상자들을 빠뜨리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목격자의 진술로 인해 사람들은 ‘페터 플라이크’의 말처럼 ‘롬멜의 보물’이 ‘코르시카 섬’ 인근에 숨겨져 있을 것 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두 달 후, 출옥을 하게 된 ‘페터 플라이크’, 그런데 출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해변을 산책하다가 갑자기 실종된다. 이에 수색에 나선 경찰들이 그를 끝내 찾아내지 못하자 사람들은 ‘페터 플라이크’의 실종에 거대한 음모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등 근거없는 다양한 소문들이 나돌기 시작한다. 진실은 미궁에 빠진채 어느덧 10여 년이 지난 1961년, 아일랜드의 한 기자가 과거 실종된 ‘페터 플라이크’에 대한 기사를 쓰던 중 이상한 사실을 알게 되는데, ‘페터 플라이크’가 한 말이 전부 거짓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기자는 ‘페터 플라이크’가 사기꾼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쓰게 되고 이는 사람들에 관심을 끌게 된다. 그런데 얼마 후, 기자에게 한 통의 편지가 발송된다. 이 편지는 바로 ‘페터 플라이크’가 보낸 편지였다. 그후 기자는 ‘페터 플라이크’를 만나게 되는데, 그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사실 ‘페터 플라이크’는 이탈리아 해군이었으며, 1943년 9월 17일 모터보트에 철제상자 6개를 싣고 장교들과 함께 코르시카섬의 바스티아 항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출항 전, 상관이 철제상자 속의 물건을 확인하는 것을 훔쳐보고 그것이 ‘롬멜의 보물’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9월 19일 목적지 바스티아 항에 도착하자 갑자기 연합군의 집중 폭격이 시작되었고 이에 다급해져 ‘롬멜의 보물’을 바다 속으로 던져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페터 플라이크’는 당시 ‘롬멜의 보물’을 빠뜨린 지점이 폭파당한 어느 이슬람 사원 건너 편쯤이라고 고백한다. 이후 고들리 기자의 보도로 이 사실은 알려지게 되고, 또 다시 많은 탐험가들이 롬멜의 보물을 찾기 위해 몰려든다. 하지만 롬멜의 보물은 끝내 찾아내지 못한다. 이에 많은 논란이 계속되던 중 2007년 영국의 유명한 탐험가 ‘테리 호지킨슨’이 롬멜의 보물은 코르시카 섬의 바스티아에서 1해리도 채 안되는 바다 속에 수장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다시 한 번 롬멜의 보물은 화제가 됐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롬멜의 보물’은 그 누구도 찾아내지 못한 채 미궁속에 빠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