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라이즈]조지아 가이드 스톤의 정체는??!~

 '미국의 스톤헨지'라고 불리는 '조지아 가이드 스톤', '조지아 가이드 스톤'은 미국 조지아 주 앨버트 카운티의 작은 산에 세워진 인공 건출물이다. 이 인공건축물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4개의 돌비석과 1개의 기둥석 그리고 상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높이 약 5.87m에 그 무게는 무려 약 107,840kg이나 되는 거대한 건축물이다. 1980년 3월 공개된 이 인공건축물은 독특하게도 기둥석에는 북극성을 볼 수 있는 구멍이 상판에는 태양이 관찰되는 구멍이 뚫려있어 달력의 역할을 할 수 있다다고 한다. 그리고 '조지아 스톤'에는 10개의 문구가 영어, 힌디어, 스페인어 등 8개의 언어로 세겨져 있었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조지아 스톤'의 문구>

1. 인류를 5억 이하로 유지하라.

2. 현명하게 번식할 수 있도록 이끌어라.

3. 새로운 언어로 인류를 단결시켜라.

4. 열정 믿음 전통을 이성으로 다스려라.

5. 공정한 법률과 심판으로 사람과 국가를 보호하라.

6. 세계 법안으로 외부와 내부의 분쟁도 해결하라.

7. 사소한 법률과 쓸모없는 관리를 피하라.

8. 사회적 권리와 개인의 권리 균형을 유지하라.

9. 진실 아름다움 사랑 사이의 조화를 추구하라.

10. 자연을 위한 공간을 남겨두어라.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조지아 가이드 스톤'을 만든 사람은 '조 펜들리'라는 건축가였다. 그에 말에 따르면, 1979년 6월 '로버트 크리스천'이라는 사람이 자신을 찾아와 '조지아 가이드 스톤'의 제작을 의뢰하였다고 한다. 이 의뢰인은 미리 작성해 온 모양과 크기대로 건축물을 만들어줄 것을 요청했으며 자신이 적어온 10개의 문구를 8가지 언어로 세겨달라고 했다고 한다. 의뢰인은 세계 종말을 견뎌내고 살아남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지침을 제공하기 위하여 이 건축물을 만든 것이며 이성의 시대를 추구하는 몇몇의 후원이 있었다고만 설명하고 나머지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이상하게 느낀 건축가 '조 펜들리'는 은행장 '와이트 마틴'에게 부탁을 하여 의뢰인의 재정상태를 확인해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은행장 '와이트 마틴'이 의뢰인에게 아무 문제도 없다고 하고 얼마 후 '로버트 크리스천'이 약 1만 달러(현재 한화 약 1억원)의 착수금을 지불하여 건축을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확인결과 '로버트 크리스천'이라고 밝힌 의뢰인의 이름이 가명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러나 서류 작성을 할때 그의 실명을 알게 된 유일한 사람인 은행장 '와이트 마틴'은 의뢰인에 대해 어떤 말도 말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썻으며, 그들은 나를 죽일수도있는 사람이라며 의뢰인에 대해 함구한다.



<'조지아 가이드 스톤'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

1. 유명 소설가 '브래드 멜쳐' 등 - 의뢰인의 말처럼 '조지아 가이드 스톤'은 미래의 생존자들을 위한 지침서가 맞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조지아 가이드 스톤'이 1979년 냉전의 절정기에 제작된 것을 보았을 때, 이는 제3차 세계대전 발발을 걱정한 사람들이 소수의 생존자들을 위하여 제작했다는 것이다.


2. 배후에 '장미십자회'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 장미십자회는 신비주의 철학자였던 '크리스티안 로젠크로이츠'가 17세기 창시한 오컬트 성향의 비밀단체인데, '조지아 스톤'의 1번 지침(1. 인류를 5억 이하로 유지하라.)이 장미십자회의 규율과 비슷할 뿐만아니라 의뢰인이 사용한 가명인 '로버트 크리스천(R.C.Christian)'의 약자가 장미십자회(Rose Cross Christian)의 약자와 같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다양한 주장들이 있다.


마지막으로 '조지아 스톤'의 안내판에는 '이 아래에 타임캡슐이 묻혀있다.'는 문구가 적혀있는데, 정확한 개봉 날짜가 적혀있지는 않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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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예언자, 니콜라스 반 렌스부르그!!


 1999년 남아프리카공화국,  'voice of a prophet'라는 한 권의 책이 출간이 된다. 이 책은 1900년대 초부터 1926년까지 '니콜라스 반 렌스부르그'라는 사람이 말한 내용을 기록한 책이었는데, 그 책은 바로 예언서였다. '니콜라스 반 렌스부르그'는 1864년 남아프리카연방의 작은 시골에서 태어났으며, 가난하여 글자를 못 배웠으나 어렸을때부터 그의 어머니가 성경을 읽어주었었기에 글을 쓸지는 몰랐으나 성경만은 읽을 줄 알았었다고 한다. 그후에도 그는 유일하게 성경만 봤었고 신문 등은 읽을 줄 몰랐었는데, 어느날 갑가지 미래를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출처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의 예언 능력은 남아프리카에서 전쟁이 발발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1899년 당시 남아프리카 최남단 케이프지역은 보어인들(네덜란드계 백인들)이 식민통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 다이아몬드와 금광이 발견되었고 이에 영국이 그 곳을 차지하기 위하여 '보어전쟁'을 일으킨다. 

 그리고 '니콜라스 반 렌스부르고'도 이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었다. 그는 이 전쟁 중에 큰 전투가 발생할 것을 미리 알리는가 하면, 보어전쟁에서 영국군이 평화협정을 먼저 제안할것이라는 것까지 예언한다. 이러한 사실들이 알려지자 '니콜라스 반 렌스부르그'는 남아프리카연방에서 유명해진다. 전쟁이 끝난 후에 그는 본격적으로 미래를 예언하기 시작했었는데, 그가 말한 내용을 그의 딸 '안나'가 받아 기록한 것이 바로 이 예언서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1. 1911년에 '니콜라스 반 렌스부르그'의 예언 - "3년 뒤 한 나라의 왕세자 부부가 피살되면서 세계적으로 큰 전쟁이 일어날 것."  <-- 1914년은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으며 시발점은 오스트리아 왕세자 부부가 암살 당하는 일이벌어졌고 이에 오스트리아의 선전포고로 시작된 것이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2. "1929년에 마차 바퀴처럼 생긴 것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될 것." <-- 1929년은 경제 대공황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었다. 그리고 '니콜라스 반 렌스부르그'가 말한 마차 바퀴처럼 생긴 것은 당시 사용했었던 주식그래프와 비슷하다고 한다.


3. "영국의 D부인이 남편과 이혼한 뒤 의문의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는데 이 사고로 영국사람들은 큰 충격에 빠짐." <--  이 예언은 1997년 영국의 왕세자비였던 '다이애나 스펜서'가 의문의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것과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4.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다시 흑인의 통치를 받게 될 것이다." <-- 1994년 남아공에 최로로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가  선출되었었다.


5. "체르노빌이 죽음의 땅으로 변할 것." <-- 1986년 체르노빌 원전 누출 사고를 떠올리게 한다.


이 외에도 수많은 예언을 남기고 '니콜라스 반 렌스부르그'는 1926년에 세상을 떠난다.


이 예언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사회 혼란을 야기한다는 이유로 금서로 지정되었지만 후에 한 작가가 이를 다시 엮어 책으로 출간한 것이었다.


- 우연에 불과하다고 반박하는 주장 -

예언에 대한 내용에 대하여 후대에 해석을 그럴듯하게 하였을 뿐 우연에 불과하다라는 주장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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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JAL123편 추락 사고 - 그 진실은?

 1985년 8월 12일 19시 12분 경 도쿄 하네다 국제공항에서 오사카 국제공항을 향해 JAL123편이 이륙했다. 당시 JAL123편에는 승객 509명과 승무원 15명을 포함해 총 524명이 탑승해있었다. 그런데, 이륙한지 약 12분 후 폭발음과 함께 비행기의 수직 꼬리 날개 부분이 분리되어버린다. 이에 당시 기장이었던 '타카하마 마사미'는 긴급 구난신호를 보내고 급히 회항한다. 그러나 꼬리 날개가 완전히 떨어져 나가버린 JAL123편 항공기는 조정능력을 상실하여 서서히 추락하기 시작했고 안타깝게도 일본 군마 현 다카마가하라 산에 추락하고 만다. 이 사고는 단일 항공사고로는 사상최대의 사망자를 낸 사고로 기록되었는데, 총 탑승인원 524명 중 단 4명만 생존하고 520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중에는 당시 일본 국민 가수로 불렸던 '사카모토 큐', 한신 타이거즈의 구단주였던 '나카노 하지무'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추락사고가 더욱 안타까운 이유는 사고가 발생한 날이 바로 일본 최고의 명절 중 하나인 오본을 얼마 안남기고 일어난 사고였기 때문이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일본 항공사고조사위원회는 이 끔찍한 추락 사고에 대해 조사에 착수하고, "JAL123편 추락 사고는 정부부실로 인한 인재..."이다고 발표를 한다. JAL123펹은 1978년에 착륙을 하던 도중 후미에 손상을 입었었는데 당시 수리를 맡은 기술자가 벌크 헤드를 부실하게 고정을 했고 이로인해 그동안 고정된 금속이 조금씩 뜯겨져 나가다가 사고 당일 금속판 일부가 파손이 되면서 수직 꼬리 날개가 분리되버어버려 JAL123편이 조정능력을 잃고 추락을 했다는 것이었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런데 얼마 후 이번 추락 사고에 대한 의혹들이 제기된다.

의혹 1. 추락 시간과 구조 시간 사이의 간격 : JAL123편의 추락시간은 8월 12일 오후 6시 56분 경이었다. 그런데, 구조대가 파견된 것은 약 13시간이난 다음날 8월 13일 오전 8시 30분경이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추락지역인 군마 현 다카마가하라 산 인근에는 약 1시간 정도면 충분히 도착할 거리에 자위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  생존자들에 의하면 추락 사고 당시에 비가 내리고 있어서 추락직후 화제가 발생하지 않았기에 약 40~50명이 살아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존자들이 죽었다는 것이다.

의혹 2. 미 공군의 구조 요청 거절 : 추락 사고 현장 근처 미공군 관제사들이 사고 직후 즉각 정찰 헬리콥터를 파견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정찰 헬리콥터가 추락한 JAL123편을 발견하고 구조 허가를 일본정부에 요청했었으나 일본정부가 미공군측의 구조 도움을 거절했고, 사고 현장에서 철수할 것을 요청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  생존자들 역시 비행기 추락 직후 헬기 한 대가 현장에 도착했으나 곧 그냥 헬기가 돌아갔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의혹 3. 인근 자위대의 구조 승인 불허 : 당시 인근에 위치해 있었던 한 일본 자위대 부대에서 추락 사고 현장 구조 준비를 마치고 일본 정부의 구조 승인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헌데, 일본 정부가 구조 승인을 거부하자 한 자위대 지휘관이 자발적으로 부대를 파견하였었다고 한다. 헌데, 해당 지휘관은 이후 상부의 지시를 어겼다는 이유로 좌천된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이처럼 추락 사고의 대해 의혹들이 제기되자 일본 정보는 "구조가 늦어진 것은 당시 야간 구조 장비의 부재 그리고 폭우로 인하여 추가 피해 발생을 우려로 다음날 구조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해명한다. 그리고 "미 공군의 구조 요청을 거절한 것에 대해서는 누가 지시하였는지 파악이 않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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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기적의 이름 - 휴 윌리엄스(Hugh Williams)

"MIRACLE OF NAME, HUGH WILLIAMS" 

-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일어나는 침몰사고 그리고 놀라운 생존자들의 공통점 -  

1860년 작가 '프란시스 코그란'의 저서 '북 웨일스 가이드(GUIDE TO NORTH WALES)''라는 책이 출간되자 엄처난 화제를 불러 일으킨다. 그것은 바로 이 책속에 적혀있는 놀라운 실제 웨일스에서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  

1664년 12월 5일, 영구 웨일스 인근 바다에서 항해를 하고 있던 배 한 척이 있었다. 이 배에는 승무원과 승객을 포함하여 81명의 인원이 탑승을 하고 있었는데, 항해를 시작하고 얼마 후 영국 웨일스 북서쪽 '메나이 해협'을 지나갈 무렵 사고가 발생한다. 갑자기 거센 돌풍과 파도가 쳤고 이로 인해 배가 침몰하게 된 것이었다. 결국 이 사고로 단 한 명만이 살아남고 나머지 80명이 사망하고 만다. 

 1785년 12월 5일, 60명이 탑승한 한 척의 배가 출항을 하였는데 놀랍게도 똑같은 장소인 '메나이 해협'에서 또다시 배가 침몰한다. 그리고 이 사고 역시 한 명만이 살안암고 나머지는 모두 사망했을 뿐만아니라 첫번째 사과와 같은 날짜, 같은 장소에서 사고가 발생했던 것이다.

[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

1820년 또다시 배가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그런데 사고가 발생한 날은 역시 12월 5일이었고 장소 또한 메나이 해협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생존자는 단 한명 뿐이었는데 놀랍게도 그 생존자의 이름 역시 '휴 윌리엄스'였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사고들에서 유일하게 생존을 한 사람들의 이름이 모두 '휴 윌리엄스'였다. 그 후 사람들은 신이 휴 윌리엄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만을 지켜주고 있다며 이를 '휴 윌리엄스의 기적'이라고 불렀다. 메나이 해협을 항해하는 배에 탑승하기 전 이름을 휴 윌리엄스로 개명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같은날 같은 장소에서 벌어졌을뿐아니라 생존자의 이름까지 모두 같은 3번의 사고. 이러한 내용을 기록해놓은 책의 내용을 본 사람들은 매우 놀라워했다.

 

[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당시 1940년 '메나이 해협'에서 독일군 군함의 공격을 받아 영국 어선이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번 사고에서는 생존자가 두 명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이름이 모두 '휴 윌리엄스'였다.

[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

- 우연일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 -

 허나, 이 모든 것이 우연의 일치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첫번째로 이 사건들이 동일한 장소에서 발생한 것은 '메나이 해협'이 사고가 발생하기 쉬운 지역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메나이 해협'은 조수간만의 차가 커 물의 흐름이 자주 바뀌고 근처에 암초들이 많아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두번째로 이 사건들이 동일한 날짜에 발생한 것은 영국 웨일스의 날씨 특성상 가장 초겨울이 가장 위험한데 우연히도 초겨울 중 12월 5일 모두 사고가 발생한 것이라는 것이다. 

세번째로 이 사건들에서 모두 동일한 이름의 사람들이 살아남은 것에 대하여 '윌리엄스'는 영국 웨일스에서 두 번째로 흔한 성이고 '휴'라는 이름 또한 영국에서 인기있는 이름으로 많이 사용했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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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브라질 예언가 - '쥬세리노 노부레가 다 루스' 예지몽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에 테러사건이 발생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12년 전인 1989년에 9·11테러 사건을 예언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브라질에 사는 '쥬세리노 노부레가 다 루스'라는 남자였다. 그는 9·11 테러사건을 미리 꿈에서 봤으며, 이에 '쥬세리노 노부레가 다 루스'는 1989년 10월 26일 꿈의 내용을 적은 편지를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앞으로 보냈다. 이 편지에는 2001년 9월 11일 뉴욕 세계무역센터가 누군가의 공격으로 무너지고 이사고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당시에는 그저 누군가의 장난이라고 여긴 대통령 하지만 2001년 9월 11일 그 편지의 내용은 현실이 되었고 그러자 그 편지는 뒤늦게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킨다. 

[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

1969년, 어린 '쥬세리노 노부레가 다 루스'는 잠을 자던 중 자신이 사는 마을에서 큰 교통사고가 나는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그 사실을 엄마에게 말했으나 엄마는 '쥬세리노 노부레가 다 루스'가 악몽을 꾼 것이라 여기고 넘어갔다. 그런데 며칠 뒤 '쥬세리노 노부레가 다 루스'가 말한대로 큰 교통사고가 일어난다. '쥬세리노 노부레가 다 루스'는 그때부터 꿈에서 미래를 보는 예지몽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뒤부터 하루에 3 ~ 9번씩 예지몽을 꾸게 되었다고 한다. 

1989년, '쥬세리노 노부레가 다 루스'는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가 누군가의 공격을 받아 무너지며 많은 사람들이 죽는 모습을 꿈에서 보게 되자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

1997년 3월, '쥬세리노 노부레가 다 루스'는 누군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예지몽을 꾸게 된다. 이에 '쥬세리노 노부레가 다 루스'는 당사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녀는 바로 영국의 왕세자비였던 '다이애나 스펜서'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다이애나 스펜서'가 5개월 뒤인 1997년 8월 31일 교통사고 사망했다. 

1997년 8월, 2004년 12월 26일 오전 7시경 인도네시아에서 강력한 지진이 발생해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하는 장면의 꿈을 반복적으로 꾼다. 이에 8월 20일 '쥬세리노 노부레가 다 루스'는 인도네시아의 대통령에게 이러한 사실을 적은 편지를 보냈는데 놀랍게도 편지에 쓴대로 2004년 12월 26일 오전 7시 58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 강진이 발생해 무려 22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다.

2007년 미국의 부통령이자 환경운동가였던 엘고어의 노벨 평화상 수상,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

2009년 마이클 잭슨의 사망.

[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

2014년 그는 브라질의 항공사 TAM의 항공기가 상파울루 파울리스타 부근 건물에 충돌하는 꿈을 꾸게 된다. 그는 역시나 그 내용을 편지로 적어 TAM사에 보냈는데 결국 TAM사는 결국 해당 항로 항공편의 모든 기종을 전격 교체한다.

2015년 9월, 힐러리 클린턴의 지지율이 76%로 우세한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될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이 역시 현실이 되자 다시 한번 큰 화제를 모았다. 

 이 외에도 수많은 사건 사고를 예견한 '쥬세리노 노부레가 다 루스', '쥬세리노 노부레가 다 루스'가 다른 예언자들과 다른 점은 특이하게도 예지몽을 꾸게 되면 관련이 있는 사람에게 반드시 편지를 보내 이 사실을 알렸다는 것이다. 

일부 분석가들에 따르면 '쥬세리노의 예언'이 90%이상 적중했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알려지자 '쥬세리노 노부레가 다 루스'는 예언가로서 유명세를 타게 된다. 하지지만 일부에서는 '쥬세리노 노부레가 다 루스'의 편지가 사건이 일어난후에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의문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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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영매자 아이린 가레트 - 그날의 진실(R101 추락사건)

 1930년 영국, 심령협회의 회원들이 모여서 누군가의 혼령을 불러내고 있었는데, 그 순간 영매자의 입을 통해 예상치 못했던 누군가의 목소리 흘러나온다. 이 영매자는 아일랜드 출신의 여성으로 그녀는 자신의 몸에 죽은자들의 영혼을 빙의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영매자 아이린 가레트'였다. '아이린 가레트'는 1차 세계대전에서 사망한 병사들의 영혼을 불러내어 망자의 한을 풀어주는 것으로 유명세를 떨쳤었다. 이에 1930년 10월 7일 영국 심령협회에서는 생전에 심령술에 관심이 많았던 추리소설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이 사망한지 3개월을 맞아 그녀를 초청해 아서 코난 도일의 영혼을 불러내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영매자 '아이린 가레트'의 입을 통해 한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하지만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서 코난 도일'이 아니었다. 낯선 목소리의 주인공은 자신을 '카마이클 어윈'이라고 말했는데, '카마이클 어윈'은 놀랍게도 몇 일전 사고로 사망한 영국 항공성 소속의 비행선 선장이었다. 사흘 전인 1930년 10월 4일 '카마이클 어윈'은 영국을 출발하여 인도로 가는 비행선 R101의 조정을 맡게 된다. 비행선 R101은 영국 항공성에서 제작한 길이 약 240M의 커다란 비행물체로 비행기와는 다르게 가벼운 수소를 주입해 하늘에 떠서 날아가는 비행물체였다. 당시 비행선 R101은 시속 114킬로미터의 빠른 속력&최장거리 6,437킬로미터를 날아갈 수 있는 엄청난 비행물체로였다. 거기에다가 비행선 R101이 무착륙 해외 여행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많은 이목이 집중됐었다. 그리고 마침내 18시 25분경 승객과 승무원 54명을 실은 비행선 R101이 이륙한다. 그런데 이륙한지 7시간 30분만에 비행선 R101이 프랑스 북부 상공에서 갑자기 중심을 잃고 흔들리더니 추락하기 시작했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리고 비행선을 가득채우고 있던 수소 가스가 폭발하여 6명은 간신히 목숨을 건졌으나 48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이에 당시 영국 항공성 장관이었던 올리버 빌라즈는 비행선의 추락원인은 조종 미숙과 기상 악화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는데, 비행선의 선장이었던 카마이클 어윈 선장 역시 이 사고로 사망했던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죽은 카마이클 어윈이라고 주장한 그 목소리는 뜻밖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 목소리에 의하면 비행선 R101은 무거운 엔진과 부실건조 때문에 추락했으며 그 과정에서 수소가스가 폭발한 것으로 무엇보다 영국 항공성에서 이미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륙을 강행했다는 것이었다. 그에 말을 들은 심령협회 회원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항공성 장관 올리버 빌라즈를 직접 초청하기로 한다. 그리고 10월 31일 다시 한 번 아이린을 초청해 강령회를 여는데 그 자리에는 항공성의 장관 올리버 빌라즈 역시 참석한다. 그런데 그날은 카마이클 어윈 선장의 목소리뿐만아니라 비행선에 탑승했다가 배행선 사고로 사망한 항공성 국장 세프턴 브랭커를 비롯해 승무원 5명의 목소리가 아이린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고 이들 모두 올리버 장관에게 원망을 쏟아낸것이었다. 결국 올리버 장관은 그 자리를 도망치듯 빠져 나갔고 이 이야기는 영국 전역으로 퍼져나가며 큰 화제를 모은다. 사실 비행선 R101은 사고 발생 전부터 이상한 일들이 유독 많았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 추락 사고 전 있었던 이상한 일들 -

1. 비행선 R101의 설계단계였던 1925년, 이 추락 사고로 희생된 항공성 국장 '세프턴 브랭커'가 한 점성술사를 찾아갔었는데 그때 이 점성술사는 '세프턴 브랭커'에게 5년 뒤 당신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함.

2.  이 사고로 희생된 정비공 '월터'라는 사람은, 사고 당일 어린 아들과 헤어지려 할 때에 그의 아들이 "더는 아빠가 없다"는 이상한 말을 했었다고 함.

3.  추락 사고가 있던 바로 그 시각 '카마이클 어윈' 선장 사무실의 전화기가 이상한 소리를 냈다는 증언도 있었다고 함.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는 우연일 뿐이라며 '아이린 가레트'를 믿지 않았다. 그런데 1931년 1월 놀라운 사실이 밝혀진다. 바로 영국 정부에서 발표한 비행선 R101의 사고보고서 내용때문이었다. 보고서의 내용이 '아이린 가레트'의 말과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비행선 R101이 이륙하기 전, '카마이클 어윈'과 항공성의 간부들이 비행선R101의 엔진 교체와 대대적인 정비를 해야한다고 주장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항공성의 장관이었던 '올리버 빌라즈'는 영연방 수송회의 개최일에 맞춰 무리하게 이륙을 강행했고 결국 엔진문제로 인하여 비행선R101이 추락하여 48의 희생자를 낸 것이었다. 


- 반대 주장-

1978년, '존 플루어'는 자신의 저서(THE AIRMEN WHO WOULD NOT DIE)에서 그녀(영매자 아이린 가레트)가 이미 사전에 항공기술자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를 영매술인 것마냥 꾸며낸 것 이라며 의혹을 제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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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진시황제 무덤과 병마용갱!!

1974년 중국 산시성에서 이상한 것이 발견된다. 그것은 인간을 본 떠 만든 인형과 창, 청동화살, 석궁의 촉 등이었다. 이것을 본 한 일간지 기자가 이 상황을 신문에 실었다. 그런데 이 소식을 접한 중국의 주석이었던 ‘마오쩌둥’은 사람 형체의 인형이 발견된 곳으로 발굴팀을 급파했고 파견된 고고학 발굴팀은 도착하자마자 대대적인 조사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뒤, 발굴팀은 6m 깊이의 땅속에서 벽돌바닥 위에 줄지어 서 있는 지하군단을 발굴한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이 군단은 병사들만 서있는 보병, 전차와 병사가 함께 있는 기병군단이 섞여있었는데 말 4마리가 끄는 전차에는 병사들이 3~4명씩 타있었으며 그 뒤에는 보병이 12명씩 서있었다. 그것은 막강한 권력을 누렸던 진시황제의 무덤을 지키는 병사들이었던 것이다. 진시황은 기원전 246년 13세의 나이에 진나라 왕위에 올라 23세에 실권을 잡았으며 26세에 중국 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인물이었다. 진시황은 통일 후에 당시 통치제제였던 봉건제를 중앙집권제로 바꾸고 넓은 영토와 여러 민족을 다스리기 위해 철권통치를 일삼았다. 이때 봉건제도를 뒷받침했던 유교 철학을 철폐하기 위해 유학서적을 전부 불태우고 460명의 유학자를 생매장하는 ‘분서갱유사건’을 일으키는 등 악명을 떨친 전제군주였다. 하지만 그런 그가 중국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여겨지는데 이 이유는 진시황의 엄청난 치적 때문이었다. 그는 성문법을 만들고 도량형과 화폐를 통일했다. 또한 진시황은 글자를 통일함으로서 넓은 영토 어디에서도 뜻이 통하게 했고 식량과 물자를 신속하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도로를 개설하고 운하를 건설했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또한 진시황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건축물을 많이 지었는데, 인류 최대의 토목공사라 불리는 만리장성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진시황은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에 거대한 무덤을 만들도록 했는데, 이것은 사후 자신의 무덤이 파헤쳐질 수 있다는 생각에 진짜 묘는 철통같은 보안 속에서 만들게 하였으며 사후에는 가묘를 만들어 자신의 진짜 묘를 찾지 못하게 하라고 명령했다. 심지어 진시황은 자신의 무덤을 만드는 것에 관련된 사람들을 비밀 유지를 위해 모두 생매장했다. 그래서 옥수수밭에 지나지 않던 곳에서 거대한 병마 군단이 모습을 드러내자 많은 중국 사람들이 흥분했던 것이다. 그리고 1976년 4월, 처음 발견된 무덤으로부터 약 20m 근처에서 2,000여 명의 병사와 89대의 전차, 청동 병기 수만 점이 나온 ‘병마용갱’이 또 하나 발견된다. 그리고 한 달 뒤, 지휘부 군영을 재현한 ‘제3호 용갱’이 추가로 발견되는데 학계에서는 특히 이 ‘제3호 용갱’에 관심을 가졌다. 왜냐하면 ‘제3호 용갱’은 그동안 비밀에 쌓여있던 진시황의 군사 포진도 즉,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했을 당시 그의 강력한 군대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어 무덤 그 자체가 커다란 하나의 군사 박물관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후 진시황에 대해 연구하던 학자들이 뜻밖의 주장한다. 그것은 바로 진시황이 우주에 광적인 집착을 가졌었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진시황 무덤의 축조 기술을 살피던 학자들은 직사각형 모양의 무덤이 전체적으로 ‘돌아올 회’자 모양을 하고 있으며 건축물의 공간배치가 천체의 움직임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는 그가 살았던 ‘아방궁’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아방궁’이란 중국 진시황이 세운 궁전으로 약 900개의 방이 있어 약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라고 전해지는 궁전인데 학자들이 이 아방궁터를 하늘의 별자리와 비교하면 아방궁의 공간배치는 하늘의 별자리와 대응했고 황제가 머물렀던 ‘자미궁’은 북두칠성자리에 그리고 아방궁 안에 있던 ‘위수’는 은하수자리에 북쪽에 있는 나머지 궁전은 페가수스 두 별자리에 위치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실에 대해 일본의 한 연구단체는 진시황의 우주에 대한 관심은 이상한 믿음에서 생기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이 제시한 기록에 의하면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한 직후 자기 자신 스스로 신선이 되겠다고 다짐하고 한 도인을 찾아갔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때 그 도인으로부터 ‘사람을 대할 때 생기는 사악한 기를 피하라(인주 미행 체중 사기 피)’는 말을 듣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진시황은 호위무사에게 신하들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거처를 알리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얼마 후, 진시황의 거처를 알아내고 신하들이 찾아오자 매우 분노한 진시황은 주위에 있던 신하들을 전부 죽여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이때부터 진시황이 더욱 심하게 자신이 인간 이상의 존재라고 믿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자신의 호칭을 바꾼 것이었다. 그동안 ‘왕’이라고 불렸던 것을 금지시키고 ‘황제’라고 부르게 한 것이다. 이때 황제의 ‘황’은 천제, 즉 우주의 지배자라는 뜻이었다. 또한 학자들은 주장의 근거로 <사기>와 같은 중국의 문헌들을 제시했는데 이 문헌들의 기록에는 그동안 알고 있었던 진시황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 스스로 자신을 신이라 여겼음은 물론 자기를 인간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모조리 형벌을 내렸다는 것이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또한 고고학자 ‘크라피바’ 박사는 기록 중 진시황의 청동거울을 언급하며 이때부터 진시황이 우주, 외계를 광적으로 맹신했다고 주장했다. 청동거울이란 진시황이 만든 12개의 커다란 거울을 말한다. 그런데 이 청동거울을 진시황은 밤마다 달빛에 비추며 우주와 대화를 했다는 것이다. ‘크라피바’ 박사는 그의 이러한 행동은 이뿐만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진시황은 외계의 계시를 받아야만 건축물을 축조를 했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렇게 지어진 첫 건축물이 ‘극묘’라고 했다. ‘극’은 하늘의 중심 별자리인 북극성을 말하는 것으로 진시황은 당시 지상공간을 천상세계와 명확하게 대응시키는 새 궁전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극묘’를 지었다는 것이다. 이때, 기적의 삼발이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기적의 삼발이가 진시황의 건축물을 짓는데 이용되었다는 것으로 진시황의 건축물로 대표되는 아방궁과 270채의 궁전, 만리장성은 물론 거대한 자신의 무덤 역시 이 기적의 삼발이가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기적의 삼발이는 문헌에만 기록되어 존재할 뿐 실제로 발견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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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바머(Unabomber)', 미국 역사상 최악의 연쇄테러범


1978년 5월, 미국 노스 웨스턴대학 ‘버클리 크리스트’ 교수는 자신이 보냈으나 반송되어 다시 자신에게 온 한 통의 소포를 받는다. 하지만 소포를 보낸 적이 없었던 ‘버클리 크리스트’교수는 경찰에게 이 소포를 조사해달라고 요청한다. 바로 그때,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소포가 폭발한다. 그리고 1년 후인 1979년 5월 9일, 미국 노스 웨스턴 대학의 대학원생 ‘존 해리스(John Harris)’ 역시 소포를 개봉하다가 소포가 폭발해 부상을 입는다. 당시 이 두 사건의 폭탄은 정교하지 못했고, 그 피해 또한 매우 경미했기 때문에 세간의 관심을 끌지 못한 채 수사는 종료된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런데, 1979년 11월 15일, 시카고에서 워싱턴D.C로 향하던 아메리칸 에어라인 보잉 444기의 우편물 보관실에서 엄청난 양의 연기가 발생한다. 이로 인해 아메리칸 에어라인 보잉 444기는 비상착륙을 했고 곧바로 출동한 FBI는 우편물 보관실에서 수화물로 위장한 여러 개의 폭탄을 발견한다. 놀랍게도 비행기에 탑재된 폭탄은 노스 웨스턴 대학에 배달되었던 폭탄과 같은 재료로 제조된 동일한 폭탄임이 밝혀진다. 이를 근거로 FBI는 세 가지 폭탄사건의 범인이 동일범이라고 예측하고 수사를 진행하던 중, 1980년 6월 10일 아메리칸 에어라인의 사장에게 네 번째 폭탄이 도착하고 이 사고로 그는 얼굴과 온 몸에 커다란 중상을 입게 된다. 이후 마치 FBI를 농락하기라도 하듯 미국 전역에서 우편물 폭탄테러가 연이어 발생했고 특히 대학과 항공사가 주 타깃이 되었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1981년 10월 8일 유타 대학에서 폭탄 발견됨. - 피해자: X

1982년 5월 5일 밴더빌트 대학 컴퓨터 공학대학 폭탄테러 발생. - 피해자: 쟈넷 스미스(Janet Smith)

1985년 11월 15일 미시건 주에서 폭탄테러 발생. - 피해자: 수이노

1982년 7월 2일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폭탄테러 발생. - 피해자: Diogenes Angelakos 교수

1985년 5월 15일 캘리포니아 대학 졸업생에게 폭탄테러 발생. - 피해자: John Hauser

1985년 6월 13일 워싱턴 항공사에서 폭탄 발견됨. - 피해자: X

1985년 11월 15일 미시건 주에서 폭탄테러 발생. - 피해자: Suino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러자 사람들은 ‘University(대학)’의 'Un'과 ‘Airline(항공사)’의 'A' 그리고 ‘Bomber(폭탄)’를 합쳐 이 정체불명의 테러범을 ‘Unabomber = 유나바머’ 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1985년 12월 11일 ‘유나바머’에 의한 첫 번째 사망자가 발생한다. 소포폭탄으로 사망한 첫 희생자는 캘리포니아에서 컴퓨터샵을 운영하던 ‘휴 스크러턴’, 첫 희생자가 생긴 후 ‘유나바머’의 폭탄은 더욱 위력이 강력해졌음을 보여주는데, 1985년 6월 13일 워싱턴 항공사에서 발견된 그의 폭탄은 해체에만 무려 17시간이나 걸렸을 정도로 정교해졌다고 한다. 이에 미국은 소포 폭탄에 대한 공포로 뒤덮힌다. 그런데 ‘유나바머’는 1987년 2월 20일 컴퓨터 판매업자 ‘게리 라이트’가 소포 폭탄으로 중상을 입힌 사건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어떠한 사건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고 이에 사람들은 ‘유나바머’의 소포 폭탄 테러 사건을 잊는다. 그런데 6년이 지난 1993년 6월 22일 캘리포니아 대학 유전학 교수 ‘찰스 엡스타인’이 소포 폭탄 테러로 손가락 세 개와 양쪽 고막을 잃는 테러 사건이 발생한다. 급기야 1994년 12월 10일 뉴저지에서는 두 번째 희생자가 발생한다. 이 희생자는 세계적 광고회사인 ‘버스&마스텔라’의 ‘토마스 모서’, 그는 집으로 배달된 소포를 열어보다가 그 자리에서 희생되고 만다. 그리고 1995년 미국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서 캘리포니아 삼림협회 협회장인 ‘길버트 머리’가 희생됨으로서 ‘유나바머’에 의한 세 번째 사망자가 된다. 6년 만에 다시 나타난 ‘유나바머’는 글씨체와 손가락의 지문을 바꾸는 등의 방법으로 FBI의 수사망을 피해 나갔고, 이에 난관에 봉착한 FBI는 결국 100만 달러라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액수의 현상금을 내걸게 된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이 현상금은 당시 미국 역사상 가장 큰 현상금이었는데, ‘유나바머’가 갑자기 이상한 일을 하기 시작한다. ‘유나바머’는 1995년 4월 24일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 미국의 주요 언론매체에 한 통의 편지와 A4용지로 54페이지의 논문을 보낸다. 그리고 자신의 논문을 신문에 게재하지 않으면 테러를 계속할 것이라고 언론사를 협박했는데, 고민하던 수사본부는 해당 언론사, 법무장관 그리고 FBI국장과의 논의 끝에 1995년 9월 19일 ‘유나바머’의 논문 ‘산업사회와 미래’라는 제목의 이 논문을 신문에 게재했다. 그의 논문은 35,000 단어와 232개의 문단 36개의 각주로 구성된 산업 사회와 현대 문명을 공격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그는 논문에서 현대 사회에서 권력 과정이 어떻게 붕괴되었는지 테크놀로지가 어떻게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지를 다뤘고 그 해결책까지 제시했다. 그런데, 신문에 실린 ‘유나바머’의 논문을 읽은 ‘데이비드 카진스키’라는 남자가 논문의 주인공이 자신의 형이 ‘유나바머’인 것 같다고 FBI에게 연락한다. 그는 논문에 작성된 표현들이 평소 자신의 형이 자주 하던 말이다며 그 이유를 밝힌다. 이에 곧바로 FBI는 조사에 들어갔고 결국 그가 ‘유나바머’임을 밝혀낸다. 이로써 FBI는 소포 폭탄 테러범인 ‘유나바머’를 18년 만에 검거하게 된다. 그렇게 ‘유나바머’의 정체는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데, 그의 정체는 충격적이었다. 그의 본명은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로 하버드 대학과 미시간 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버클리 대학에서는 수학 교수로 재직했던 IQ 167의 천재였던 것이었다. 그는 15세에 하버드에 입학하여 18세에 교수들도 풀지 못한 난제들을 풀며 20세에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22세에는 6편의 수학 관련 논문을 책으로 출판하며 버클리 대학의 종신 교수로 임명된 인물이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체포된 곳은 의외로 산 속 깊은 곳의 오두막이었던 것이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하버드에서 수학을 공부하던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는 미국정부의 극도의 스트레스 장애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험의 대상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가 평소 조울증을 앓으며 약간의 자폐증세를 보였었기에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를 실험대상으로 삼은 것이었다. 그리고 네 명의 법학생을 위장하여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와 토론을 하게 했는데 이 법학생 4명은 미국정부로부터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를 몰아 붙이라는 명령을 받고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를 매우 몰아붙인다. 이에 엄청한 스트레스를 받은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는 후에 이것이 자신을 대상으로 한 실험의 일환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분노한다. 그리고 과학자들과 현대문명에 혐오감을 갖게 된다. 그 후 산속으로 들어가 생활을 하며 현대 문명과 동떨어진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1983년의 어느 날, 산책하던 그는 자신이 살던 숲에 도로공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도로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터전을 부수는 현대 문명에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복수를 다짐하게 된다. 특히, 현대문명을 대표하는 지식인들 그리고 최첨단 컴퓨터 관련 전문가들을 테러 대상으로 삼고 테러를 한 것이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결국 그는 현재 종신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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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문자 룬 문자란 무엇인가

룬 문자 - 초기 게르만 족이 1세기경부터 사용했던 문자로 무려 17세기까지 사용되었던 초기 문자이다.
룬 문자의 뜻 - rune(​비밀​) + alphabet(​문자​)
룬 문자 사용 목적 - 예언, 점술, 의술, 마법 등
룬 문자의 종류 - 게르만족의 언어(​룬 문자​)
스칸디나비아어의 변이(​푸타르크​)
앵글로색슨어의 변이(​푸토르크​)
**가장 오래된 룬 문자는 8문자를 한 개의 조로 하여 24문자로 되어있었고, 영국은 33자, 북유럽은 16자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룬 문자 전성기 - 400~700년 경
룬 문자 작성 순서 - 글자를 쓰는 방향은 일정치 않음.



이러한 룬문자가 쇠퇴하고 사라지게 된 것은 세계가 기독교화되면서 문자가 라틴어로 바뀌면서부터이다. 당시 기독교 외의 종교나 풍습 등을 믿는 미신같은 것들은 이단으로 몰릴 수 있었으므로 사용되지 못한것이다.

-룬 문자에 얽힌 이야기-
1. 히틀러가 강력한 주술 기호인(북유럽에선 태양을 나타내는) 룬 문자인 (만)자를 뒤집어서 나치당과 제3제국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 문양을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2. 또한 히틀러는 승리를 상징하는 룬 문자인 '소우웰우'를 두 개의 각진 형태로 변형시켜 나치 친위대의 머리글자인 'SS'를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현대에는 사랑, 부유 등의 룬문자를 몸에 새기거나 장식품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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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개의 상징 절부암에 담긴 이야기

조선 말기 제주도에 고씨 성을 가진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남편 강씨에게 19세에 시집을 와서 가정을 꾸리고 잘 살고 있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어부인 남편 강씨는 고기잡이를 하러 나갔는데 거센 풍랑에 의해 돌아오지 못하게 됬다. 그러자 아내 고씨는 남편을 밤낮없이 남편을 찾아다녔으나 끝내 찾지 못하였다. 이에 고씨는 남편의 뒤를 따르기 위해 한 언덕에 있는 나무에 목을 매고만다. 그러자 남편의 시체가 바닷가에 떠올랐는데, 신기하게도 고씨가 목을 맨 나무 아래 바위쪽이었다고 한다.



이후, 그 바위에 '절부암'이라 새기게 하고 부부를 합장하였으며 매년 3월 15일 부부의 넋을 기리기 위해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에 절부암이 위치하여 있으며,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9호로 지정되어있다.(올레길 12코스 끝에 위치함)



이러한 절개는 조선시대 성리학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오직 여성에게만 요구된 절개, 정절)

절부암 고씨와 같은 이야기들을 옛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안동의 선비 남시윤이 계묘년(1783)에 과거시험장에서 죽었다. 그러자 그의 처 신씨는 장례를 치룬 뒤 치마로 낯을 가리고 물에 뛰어들어 죽었다. -정조실록 8년 3월 3일-]

이 외에도 많은 기록이 있다. 가장 유사한 이야기는 정조실록 17년 6월 25일 내용에 기록된 나주의 한 종(노비)에 대한 사연인데 이 역시도 죽은 남편의 뒤를 따라 절개를 지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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