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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이야기 상식]

[서프라이즈]진시황제 무덤과 병마용갱!!

1974년 중국 산시성에서 이상한 것이 발견된다. 그것은 인간을 본 떠 만든 인형과 창, 청동화살, 석궁의 촉 등이었다. 이것을 본 한 일간지 기자가 이 상황을 신문에 실었다. 그런데 이 소식을 접한 중국의 주석이었던 ‘마오쩌둥’은 사람 형체의 인형이 발견된 곳으로 발굴팀을 급파했고 파견된 고고학 발굴팀은 도착하자마자 대대적인 조사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뒤, 발굴팀은 6m 깊이의 땅속에서 벽돌바닥 위에 줄지어 서 있는 지하군단을 발굴한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이 군단은 병사들만 서있는 보병, 전차와 병사가 함께 있는 기병군단이 섞여있었는데 말 4마리가 끄는 전차에는 병사들이 3~4명씩 타있었으며 그 뒤에는 보병이 12명씩 서있었다. 그것은 막강한 권력을 누렸던 진시황제의 무덤을 지키는 병사들이었던 것이다. 진시황은 기원전 246년 13세의 나이에 진나라 왕위에 올라 23세에 실권을 잡았으며 26세에 중국 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인물이었다. 진시황은 통일 후에 당시 통치제제였던 봉건제를 중앙집권제로 바꾸고 넓은 영토와 여러 민족을 다스리기 위해 철권통치를 일삼았다. 이때 봉건제도를 뒷받침했던 유교 철학을 철폐하기 위해 유학서적을 전부 불태우고 460명의 유학자를 생매장하는 ‘분서갱유사건’을 일으키는 등 악명을 떨친 전제군주였다. 하지만 그런 그가 중국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여겨지는데 이 이유는 진시황의 엄청난 치적 때문이었다. 그는 성문법을 만들고 도량형과 화폐를 통일했다. 또한 진시황은 글자를 통일함으로서 넓은 영토 어디에서도 뜻이 통하게 했고 식량과 물자를 신속하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도로를 개설하고 운하를 건설했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또한 진시황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건축물을 많이 지었는데, 인류 최대의 토목공사라 불리는 만리장성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진시황은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에 거대한 무덤을 만들도록 했는데, 이것은 사후 자신의 무덤이 파헤쳐질 수 있다는 생각에 진짜 묘는 철통같은 보안 속에서 만들게 하였으며 사후에는 가묘를 만들어 자신의 진짜 묘를 찾지 못하게 하라고 명령했다. 심지어 진시황은 자신의 무덤을 만드는 것에 관련된 사람들을 비밀 유지를 위해 모두 생매장했다. 그래서 옥수수밭에 지나지 않던 곳에서 거대한 병마 군단이 모습을 드러내자 많은 중국 사람들이 흥분했던 것이다. 그리고 1976년 4월, 처음 발견된 무덤으로부터 약 20m 근처에서 2,000여 명의 병사와 89대의 전차, 청동 병기 수만 점이 나온 ‘병마용갱’이 또 하나 발견된다. 그리고 한 달 뒤, 지휘부 군영을 재현한 ‘제3호 용갱’이 추가로 발견되는데 학계에서는 특히 이 ‘제3호 용갱’에 관심을 가졌다. 왜냐하면 ‘제3호 용갱’은 그동안 비밀에 쌓여있던 진시황의 군사 포진도 즉,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했을 당시 그의 강력한 군대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어 무덤 그 자체가 커다란 하나의 군사 박물관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후 진시황에 대해 연구하던 학자들이 뜻밖의 주장한다. 그것은 바로 진시황이 우주에 광적인 집착을 가졌었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진시황 무덤의 축조 기술을 살피던 학자들은 직사각형 모양의 무덤이 전체적으로 ‘돌아올 회’자 모양을 하고 있으며 건축물의 공간배치가 천체의 움직임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는 그가 살았던 ‘아방궁’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아방궁’이란 중국 진시황이 세운 궁전으로 약 900개의 방이 있어 약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라고 전해지는 궁전인데 학자들이 이 아방궁터를 하늘의 별자리와 비교하면 아방궁의 공간배치는 하늘의 별자리와 대응했고 황제가 머물렀던 ‘자미궁’은 북두칠성자리에 그리고 아방궁 안에 있던 ‘위수’는 은하수자리에 북쪽에 있는 나머지 궁전은 페가수스 두 별자리에 위치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실에 대해 일본의 한 연구단체는 진시황의 우주에 대한 관심은 이상한 믿음에서 생기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이 제시한 기록에 의하면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한 직후 자기 자신 스스로 신선이 되겠다고 다짐하고 한 도인을 찾아갔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때 그 도인으로부터 ‘사람을 대할 때 생기는 사악한 기를 피하라(인주 미행 체중 사기 피)’는 말을 듣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진시황은 호위무사에게 신하들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거처를 알리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얼마 후, 진시황의 거처를 알아내고 신하들이 찾아오자 매우 분노한 진시황은 주위에 있던 신하들을 전부 죽여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이때부터 진시황이 더욱 심하게 자신이 인간 이상의 존재라고 믿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자신의 호칭을 바꾼 것이었다. 그동안 ‘왕’이라고 불렸던 것을 금지시키고 ‘황제’라고 부르게 한 것이다. 이때 황제의 ‘황’은 천제, 즉 우주의 지배자라는 뜻이었다. 또한 학자들은 주장의 근거로 <사기>와 같은 중국의 문헌들을 제시했는데 이 문헌들의 기록에는 그동안 알고 있었던 진시황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 스스로 자신을 신이라 여겼음은 물론 자기를 인간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모조리 형벌을 내렸다는 것이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또한 고고학자 ‘크라피바’ 박사는 기록 중 진시황의 청동거울을 언급하며 이때부터 진시황이 우주, 외계를 광적으로 맹신했다고 주장했다. 청동거울이란 진시황이 만든 12개의 커다란 거울을 말한다. 그런데 이 청동거울을 진시황은 밤마다 달빛에 비추며 우주와 대화를 했다는 것이다. ‘크라피바’ 박사는 그의 이러한 행동은 이뿐만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진시황은 외계의 계시를 받아야만 건축물을 축조를 했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렇게 지어진 첫 건축물이 ‘극묘’라고 했다. ‘극’은 하늘의 중심 별자리인 북극성을 말하는 것으로 진시황은 당시 지상공간을 천상세계와 명확하게 대응시키는 새 궁전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극묘’를 지었다는 것이다. 이때, 기적의 삼발이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기적의 삼발이가 진시황의 건축물을 짓는데 이용되었다는 것으로 진시황의 건축물로 대표되는 아방궁과 270채의 궁전, 만리장성은 물론 거대한 자신의 무덤 역시 이 기적의 삼발이가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기적의 삼발이는 문헌에만 기록되어 존재할 뿐 실제로 발견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