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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이야기 상식]

절개의 상징 절부암에 담긴 이야기

조선 말기 제주도에 고씨 성을 가진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남편 강씨에게 19세에 시집을 와서 가정을 꾸리고 잘 살고 있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어부인 남편 강씨는 고기잡이를 하러 나갔는데 거센 풍랑에 의해 돌아오지 못하게 됬다. 그러자 아내 고씨는 남편을 밤낮없이 남편을 찾아다녔으나 끝내 찾지 못하였다. 이에 고씨는 남편의 뒤를 따르기 위해 한 언덕에 있는 나무에 목을 매고만다. 그러자 남편의 시체가 바닷가에 떠올랐는데, 신기하게도 고씨가 목을 맨 나무 아래 바위쪽이었다고 한다.



이후, 그 바위에 '절부암'이라 새기게 하고 부부를 합장하였으며 매년 3월 15일 부부의 넋을 기리기 위해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에 절부암이 위치하여 있으며,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9호로 지정되어있다.(올레길 12코스 끝에 위치함)



이러한 절개는 조선시대 성리학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오직 여성에게만 요구된 절개, 정절)

절부암 고씨와 같은 이야기들을 옛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안동의 선비 남시윤이 계묘년(1783)에 과거시험장에서 죽었다. 그러자 그의 처 신씨는 장례를 치룬 뒤 치마로 낯을 가리고 물에 뛰어들어 죽었다. -정조실록 8년 3월 3일-]

이 외에도 많은 기록이 있다. 가장 유사한 이야기는 정조실록 17년 6월 25일 내용에 기록된 나주의 한 종(노비)에 대한 사연인데 이 역시도 죽은 남편의 뒤를 따라 절개를 지키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