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라이즈]조지아 가이드 스톤의 정체는??!~

 '미국의 스톤헨지'라고 불리는 '조지아 가이드 스톤', '조지아 가이드 스톤'은 미국 조지아 주 앨버트 카운티의 작은 산에 세워진 인공 건출물이다. 이 인공건축물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4개의 돌비석과 1개의 기둥석 그리고 상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높이 약 5.87m에 그 무게는 무려 약 107,840kg이나 되는 거대한 건축물이다. 1980년 3월 공개된 이 인공건축물은 독특하게도 기둥석에는 북극성을 볼 수 있는 구멍이 상판에는 태양이 관찰되는 구멍이 뚫려있어 달력의 역할을 할 수 있다다고 한다. 그리고 '조지아 스톤'에는 10개의 문구가 영어, 힌디어, 스페인어 등 8개의 언어로 세겨져 있었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조지아 스톤'의 문구>

1. 인류를 5억 이하로 유지하라.

2. 현명하게 번식할 수 있도록 이끌어라.

3. 새로운 언어로 인류를 단결시켜라.

4. 열정 믿음 전통을 이성으로 다스려라.

5. 공정한 법률과 심판으로 사람과 국가를 보호하라.

6. 세계 법안으로 외부와 내부의 분쟁도 해결하라.

7. 사소한 법률과 쓸모없는 관리를 피하라.

8. 사회적 권리와 개인의 권리 균형을 유지하라.

9. 진실 아름다움 사랑 사이의 조화를 추구하라.

10. 자연을 위한 공간을 남겨두어라.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조지아 가이드 스톤'을 만든 사람은 '조 펜들리'라는 건축가였다. 그에 말에 따르면, 1979년 6월 '로버트 크리스천'이라는 사람이 자신을 찾아와 '조지아 가이드 스톤'의 제작을 의뢰하였다고 한다. 이 의뢰인은 미리 작성해 온 모양과 크기대로 건축물을 만들어줄 것을 요청했으며 자신이 적어온 10개의 문구를 8가지 언어로 세겨달라고 했다고 한다. 의뢰인은 세계 종말을 견뎌내고 살아남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지침을 제공하기 위하여 이 건축물을 만든 것이며 이성의 시대를 추구하는 몇몇의 후원이 있었다고만 설명하고 나머지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이상하게 느낀 건축가 '조 펜들리'는 은행장 '와이트 마틴'에게 부탁을 하여 의뢰인의 재정상태를 확인해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은행장 '와이트 마틴'이 의뢰인에게 아무 문제도 없다고 하고 얼마 후 '로버트 크리스천'이 약 1만 달러(현재 한화 약 1억원)의 착수금을 지불하여 건축을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확인결과 '로버트 크리스천'이라고 밝힌 의뢰인의 이름이 가명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러나 서류 작성을 할때 그의 실명을 알게 된 유일한 사람인 은행장 '와이트 마틴'은 의뢰인에 대해 어떤 말도 말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썻으며, 그들은 나를 죽일수도있는 사람이라며 의뢰인에 대해 함구한다.



<'조지아 가이드 스톤'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

1. 유명 소설가 '브래드 멜쳐' 등 - 의뢰인의 말처럼 '조지아 가이드 스톤'은 미래의 생존자들을 위한 지침서가 맞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조지아 가이드 스톤'이 1979년 냉전의 절정기에 제작된 것을 보았을 때, 이는 제3차 세계대전 발발을 걱정한 사람들이 소수의 생존자들을 위하여 제작했다는 것이다.


2. 배후에 '장미십자회'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 장미십자회는 신비주의 철학자였던 '크리스티안 로젠크로이츠'가 17세기 창시한 오컬트 성향의 비밀단체인데, '조지아 스톤'의 1번 지침(1. 인류를 5억 이하로 유지하라.)이 장미십자회의 규율과 비슷할 뿐만아니라 의뢰인이 사용한 가명인 '로버트 크리스천(R.C.Christian)'의 약자가 장미십자회(Rose Cross Christian)의 약자와 같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다양한 주장들이 있다.


마지막으로 '조지아 스톤'의 안내판에는 '이 아래에 타임캡슐이 묻혀있다.'는 문구가 적혀있는데, 정확한 개봉 날짜가 적혀있지는 않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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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예언자, 니콜라스 반 렌스부르그!!


 1999년 남아프리카공화국,  'voice of a prophet'라는 한 권의 책이 출간이 된다. 이 책은 1900년대 초부터 1926년까지 '니콜라스 반 렌스부르그'라는 사람이 말한 내용을 기록한 책이었는데, 그 책은 바로 예언서였다. '니콜라스 반 렌스부르그'는 1864년 남아프리카연방의 작은 시골에서 태어났으며, 가난하여 글자를 못 배웠으나 어렸을때부터 그의 어머니가 성경을 읽어주었었기에 글을 쓸지는 몰랐으나 성경만은 읽을 줄 알았었다고 한다. 그후에도 그는 유일하게 성경만 봤었고 신문 등은 읽을 줄 몰랐었는데, 어느날 갑가지 미래를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출처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의 예언 능력은 남아프리카에서 전쟁이 발발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1899년 당시 남아프리카 최남단 케이프지역은 보어인들(네덜란드계 백인들)이 식민통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 다이아몬드와 금광이 발견되었고 이에 영국이 그 곳을 차지하기 위하여 '보어전쟁'을 일으킨다. 

 그리고 '니콜라스 반 렌스부르고'도 이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었다. 그는 이 전쟁 중에 큰 전투가 발생할 것을 미리 알리는가 하면, 보어전쟁에서 영국군이 평화협정을 먼저 제안할것이라는 것까지 예언한다. 이러한 사실들이 알려지자 '니콜라스 반 렌스부르그'는 남아프리카연방에서 유명해진다. 전쟁이 끝난 후에 그는 본격적으로 미래를 예언하기 시작했었는데, 그가 말한 내용을 그의 딸 '안나'가 받아 기록한 것이 바로 이 예언서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1. 1911년에 '니콜라스 반 렌스부르그'의 예언 - "3년 뒤 한 나라의 왕세자 부부가 피살되면서 세계적으로 큰 전쟁이 일어날 것."  <-- 1914년은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으며 시발점은 오스트리아 왕세자 부부가 암살 당하는 일이벌어졌고 이에 오스트리아의 선전포고로 시작된 것이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2. "1929년에 마차 바퀴처럼 생긴 것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될 것." <-- 1929년은 경제 대공황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었다. 그리고 '니콜라스 반 렌스부르그'가 말한 마차 바퀴처럼 생긴 것은 당시 사용했었던 주식그래프와 비슷하다고 한다.


3. "영국의 D부인이 남편과 이혼한 뒤 의문의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는데 이 사고로 영국사람들은 큰 충격에 빠짐." <--  이 예언은 1997년 영국의 왕세자비였던 '다이애나 스펜서'가 의문의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것과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4.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다시 흑인의 통치를 받게 될 것이다." <-- 1994년 남아공에 최로로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가  선출되었었다.


5. "체르노빌이 죽음의 땅으로 변할 것." <-- 1986년 체르노빌 원전 누출 사고를 떠올리게 한다.


이 외에도 수많은 예언을 남기고 '니콜라스 반 렌스부르그'는 1926년에 세상을 떠난다.


이 예언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사회 혼란을 야기한다는 이유로 금서로 지정되었지만 후에 한 작가가 이를 다시 엮어 책으로 출간한 것이었다.


- 우연에 불과하다고 반박하는 주장 -

예언에 대한 내용에 대하여 후대에 해석을 그럴듯하게 하였을 뿐 우연에 불과하다라는 주장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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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JAL123편 추락 사고 - 그 진실은?

 1985년 8월 12일 19시 12분 경 도쿄 하네다 국제공항에서 오사카 국제공항을 향해 JAL123편이 이륙했다. 당시 JAL123편에는 승객 509명과 승무원 15명을 포함해 총 524명이 탑승해있었다. 그런데, 이륙한지 약 12분 후 폭발음과 함께 비행기의 수직 꼬리 날개 부분이 분리되어버린다. 이에 당시 기장이었던 '타카하마 마사미'는 긴급 구난신호를 보내고 급히 회항한다. 그러나 꼬리 날개가 완전히 떨어져 나가버린 JAL123편 항공기는 조정능력을 상실하여 서서히 추락하기 시작했고 안타깝게도 일본 군마 현 다카마가하라 산에 추락하고 만다. 이 사고는 단일 항공사고로는 사상최대의 사망자를 낸 사고로 기록되었는데, 총 탑승인원 524명 중 단 4명만 생존하고 520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중에는 당시 일본 국민 가수로 불렸던 '사카모토 큐', 한신 타이거즈의 구단주였던 '나카노 하지무'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추락사고가 더욱 안타까운 이유는 사고가 발생한 날이 바로 일본 최고의 명절 중 하나인 오본을 얼마 안남기고 일어난 사고였기 때문이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일본 항공사고조사위원회는 이 끔찍한 추락 사고에 대해 조사에 착수하고, "JAL123편 추락 사고는 정부부실로 인한 인재..."이다고 발표를 한다. JAL123펹은 1978년에 착륙을 하던 도중 후미에 손상을 입었었는데 당시 수리를 맡은 기술자가 벌크 헤드를 부실하게 고정을 했고 이로인해 그동안 고정된 금속이 조금씩 뜯겨져 나가다가 사고 당일 금속판 일부가 파손이 되면서 수직 꼬리 날개가 분리되버어버려 JAL123편이 조정능력을 잃고 추락을 했다는 것이었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런데 얼마 후 이번 추락 사고에 대한 의혹들이 제기된다.

의혹 1. 추락 시간과 구조 시간 사이의 간격 : JAL123편의 추락시간은 8월 12일 오후 6시 56분 경이었다. 그런데, 구조대가 파견된 것은 약 13시간이난 다음날 8월 13일 오전 8시 30분경이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추락지역인 군마 현 다카마가하라 산 인근에는 약 1시간 정도면 충분히 도착할 거리에 자위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  생존자들에 의하면 추락 사고 당시에 비가 내리고 있어서 추락직후 화제가 발생하지 않았기에 약 40~50명이 살아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존자들이 죽었다는 것이다.

의혹 2. 미 공군의 구조 요청 거절 : 추락 사고 현장 근처 미공군 관제사들이 사고 직후 즉각 정찰 헬리콥터를 파견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정찰 헬리콥터가 추락한 JAL123편을 발견하고 구조 허가를 일본정부에 요청했었으나 일본정부가 미공군측의 구조 도움을 거절했고, 사고 현장에서 철수할 것을 요청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  생존자들 역시 비행기 추락 직후 헬기 한 대가 현장에 도착했으나 곧 그냥 헬기가 돌아갔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의혹 3. 인근 자위대의 구조 승인 불허 : 당시 인근에 위치해 있었던 한 일본 자위대 부대에서 추락 사고 현장 구조 준비를 마치고 일본 정부의 구조 승인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헌데, 일본 정부가 구조 승인을 거부하자 한 자위대 지휘관이 자발적으로 부대를 파견하였었다고 한다. 헌데, 해당 지휘관은 이후 상부의 지시를 어겼다는 이유로 좌천된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이처럼 추락 사고의 대해 의혹들이 제기되자 일본 정보는 "구조가 늦어진 것은 당시 야간 구조 장비의 부재 그리고 폭우로 인하여 추가 피해 발생을 우려로 다음날 구조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해명한다. 그리고 "미 공군의 구조 요청을 거절한 것에 대해서는 누가 지시하였는지 파악이 않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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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기적의 이름 - 휴 윌리엄스(Hugh Williams)

"MIRACLE OF NAME, HUGH WILLIAMS" 

-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일어나는 침몰사고 그리고 놀라운 생존자들의 공통점 -  

1860년 작가 '프란시스 코그란'의 저서 '북 웨일스 가이드(GUIDE TO NORTH WALES)''라는 책이 출간되자 엄처난 화제를 불러 일으킨다. 그것은 바로 이 책속에 적혀있는 놀라운 실제 웨일스에서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  

1664년 12월 5일, 영구 웨일스 인근 바다에서 항해를 하고 있던 배 한 척이 있었다. 이 배에는 승무원과 승객을 포함하여 81명의 인원이 탑승을 하고 있었는데, 항해를 시작하고 얼마 후 영국 웨일스 북서쪽 '메나이 해협'을 지나갈 무렵 사고가 발생한다. 갑자기 거센 돌풍과 파도가 쳤고 이로 인해 배가 침몰하게 된 것이었다. 결국 이 사고로 단 한 명만이 살아남고 나머지 80명이 사망하고 만다. 

 1785년 12월 5일, 60명이 탑승한 한 척의 배가 출항을 하였는데 놀랍게도 똑같은 장소인 '메나이 해협'에서 또다시 배가 침몰한다. 그리고 이 사고 역시 한 명만이 살안암고 나머지는 모두 사망했을 뿐만아니라 첫번째 사과와 같은 날짜, 같은 장소에서 사고가 발생했던 것이다.

[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

1820년 또다시 배가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그런데 사고가 발생한 날은 역시 12월 5일이었고 장소 또한 메나이 해협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생존자는 단 한명 뿐이었는데 놀랍게도 그 생존자의 이름 역시 '휴 윌리엄스'였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사고들에서 유일하게 생존을 한 사람들의 이름이 모두 '휴 윌리엄스'였다. 그 후 사람들은 신이 휴 윌리엄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만을 지켜주고 있다며 이를 '휴 윌리엄스의 기적'이라고 불렀다. 메나이 해협을 항해하는 배에 탑승하기 전 이름을 휴 윌리엄스로 개명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같은날 같은 장소에서 벌어졌을뿐아니라 생존자의 이름까지 모두 같은 3번의 사고. 이러한 내용을 기록해놓은 책의 내용을 본 사람들은 매우 놀라워했다.

 

[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당시 1940년 '메나이 해협'에서 독일군 군함의 공격을 받아 영국 어선이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번 사고에서는 생존자가 두 명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이름이 모두 '휴 윌리엄스'였다.

[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

- 우연일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 -

 허나, 이 모든 것이 우연의 일치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첫번째로 이 사건들이 동일한 장소에서 발생한 것은 '메나이 해협'이 사고가 발생하기 쉬운 지역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메나이 해협'은 조수간만의 차가 커 물의 흐름이 자주 바뀌고 근처에 암초들이 많아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두번째로 이 사건들이 동일한 날짜에 발생한 것은 영국 웨일스의 날씨 특성상 가장 초겨울이 가장 위험한데 우연히도 초겨울 중 12월 5일 모두 사고가 발생한 것이라는 것이다. 

세번째로 이 사건들에서 모두 동일한 이름의 사람들이 살아남은 것에 대하여 '윌리엄스'는 영국 웨일스에서 두 번째로 흔한 성이고 '휴'라는 이름 또한 영국에서 인기있는 이름으로 많이 사용했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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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브라질 예언가 - '쥬세리노 노부레가 다 루스' 예지몽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에 테러사건이 발생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12년 전인 1989년에 9·11테러 사건을 예언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브라질에 사는 '쥬세리노 노부레가 다 루스'라는 남자였다. 그는 9·11 테러사건을 미리 꿈에서 봤으며, 이에 '쥬세리노 노부레가 다 루스'는 1989년 10월 26일 꿈의 내용을 적은 편지를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앞으로 보냈다. 이 편지에는 2001년 9월 11일 뉴욕 세계무역센터가 누군가의 공격으로 무너지고 이사고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당시에는 그저 누군가의 장난이라고 여긴 대통령 하지만 2001년 9월 11일 그 편지의 내용은 현실이 되었고 그러자 그 편지는 뒤늦게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킨다. 

[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

1969년, 어린 '쥬세리노 노부레가 다 루스'는 잠을 자던 중 자신이 사는 마을에서 큰 교통사고가 나는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그 사실을 엄마에게 말했으나 엄마는 '쥬세리노 노부레가 다 루스'가 악몽을 꾼 것이라 여기고 넘어갔다. 그런데 며칠 뒤 '쥬세리노 노부레가 다 루스'가 말한대로 큰 교통사고가 일어난다. '쥬세리노 노부레가 다 루스'는 그때부터 꿈에서 미래를 보는 예지몽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뒤부터 하루에 3 ~ 9번씩 예지몽을 꾸게 되었다고 한다. 

1989년, '쥬세리노 노부레가 다 루스'는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가 누군가의 공격을 받아 무너지며 많은 사람들이 죽는 모습을 꿈에서 보게 되자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

1997년 3월, '쥬세리노 노부레가 다 루스'는 누군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예지몽을 꾸게 된다. 이에 '쥬세리노 노부레가 다 루스'는 당사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녀는 바로 영국의 왕세자비였던 '다이애나 스펜서'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다이애나 스펜서'가 5개월 뒤인 1997년 8월 31일 교통사고 사망했다. 

1997년 8월, 2004년 12월 26일 오전 7시경 인도네시아에서 강력한 지진이 발생해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하는 장면의 꿈을 반복적으로 꾼다. 이에 8월 20일 '쥬세리노 노부레가 다 루스'는 인도네시아의 대통령에게 이러한 사실을 적은 편지를 보냈는데 놀랍게도 편지에 쓴대로 2004년 12월 26일 오전 7시 58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 강진이 발생해 무려 22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다.

2007년 미국의 부통령이자 환경운동가였던 엘고어의 노벨 평화상 수상,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

2009년 마이클 잭슨의 사망.

[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

2014년 그는 브라질의 항공사 TAM의 항공기가 상파울루 파울리스타 부근 건물에 충돌하는 꿈을 꾸게 된다. 그는 역시나 그 내용을 편지로 적어 TAM사에 보냈는데 결국 TAM사는 결국 해당 항로 항공편의 모든 기종을 전격 교체한다.

2015년 9월, 힐러리 클린턴의 지지율이 76%로 우세한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될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이 역시 현실이 되자 다시 한번 큰 화제를 모았다. 

 이 외에도 수많은 사건 사고를 예견한 '쥬세리노 노부레가 다 루스', '쥬세리노 노부레가 다 루스'가 다른 예언자들과 다른 점은 특이하게도 예지몽을 꾸게 되면 관련이 있는 사람에게 반드시 편지를 보내 이 사실을 알렸다는 것이다. 

일부 분석가들에 따르면 '쥬세리노의 예언'이 90%이상 적중했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알려지자 '쥬세리노 노부레가 다 루스'는 예언가로서 유명세를 타게 된다. 하지지만 일부에서는 '쥬세리노 노부레가 다 루스'의 편지가 사건이 일어난후에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의문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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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영매자 아이린 가레트 - 그날의 진실(R101 추락사건)

 1930년 영국, 심령협회의 회원들이 모여서 누군가의 혼령을 불러내고 있었는데, 그 순간 영매자의 입을 통해 예상치 못했던 누군가의 목소리 흘러나온다. 이 영매자는 아일랜드 출신의 여성으로 그녀는 자신의 몸에 죽은자들의 영혼을 빙의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영매자 아이린 가레트'였다. '아이린 가레트'는 1차 세계대전에서 사망한 병사들의 영혼을 불러내어 망자의 한을 풀어주는 것으로 유명세를 떨쳤었다. 이에 1930년 10월 7일 영국 심령협회에서는 생전에 심령술에 관심이 많았던 추리소설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이 사망한지 3개월을 맞아 그녀를 초청해 아서 코난 도일의 영혼을 불러내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영매자 '아이린 가레트'의 입을 통해 한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하지만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서 코난 도일'이 아니었다. 낯선 목소리의 주인공은 자신을 '카마이클 어윈'이라고 말했는데, '카마이클 어윈'은 놀랍게도 몇 일전 사고로 사망한 영국 항공성 소속의 비행선 선장이었다. 사흘 전인 1930년 10월 4일 '카마이클 어윈'은 영국을 출발하여 인도로 가는 비행선 R101의 조정을 맡게 된다. 비행선 R101은 영국 항공성에서 제작한 길이 약 240M의 커다란 비행물체로 비행기와는 다르게 가벼운 수소를 주입해 하늘에 떠서 날아가는 비행물체였다. 당시 비행선 R101은 시속 114킬로미터의 빠른 속력&최장거리 6,437킬로미터를 날아갈 수 있는 엄청난 비행물체로였다. 거기에다가 비행선 R101이 무착륙 해외 여행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많은 이목이 집중됐었다. 그리고 마침내 18시 25분경 승객과 승무원 54명을 실은 비행선 R101이 이륙한다. 그런데 이륙한지 7시간 30분만에 비행선 R101이 프랑스 북부 상공에서 갑자기 중심을 잃고 흔들리더니 추락하기 시작했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리고 비행선을 가득채우고 있던 수소 가스가 폭발하여 6명은 간신히 목숨을 건졌으나 48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이에 당시 영국 항공성 장관이었던 올리버 빌라즈는 비행선의 추락원인은 조종 미숙과 기상 악화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는데, 비행선의 선장이었던 카마이클 어윈 선장 역시 이 사고로 사망했던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죽은 카마이클 어윈이라고 주장한 그 목소리는 뜻밖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 목소리에 의하면 비행선 R101은 무거운 엔진과 부실건조 때문에 추락했으며 그 과정에서 수소가스가 폭발한 것으로 무엇보다 영국 항공성에서 이미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륙을 강행했다는 것이었다. 그에 말을 들은 심령협회 회원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항공성 장관 올리버 빌라즈를 직접 초청하기로 한다. 그리고 10월 31일 다시 한 번 아이린을 초청해 강령회를 여는데 그 자리에는 항공성의 장관 올리버 빌라즈 역시 참석한다. 그런데 그날은 카마이클 어윈 선장의 목소리뿐만아니라 비행선에 탑승했다가 배행선 사고로 사망한 항공성 국장 세프턴 브랭커를 비롯해 승무원 5명의 목소리가 아이린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고 이들 모두 올리버 장관에게 원망을 쏟아낸것이었다. 결국 올리버 장관은 그 자리를 도망치듯 빠져 나갔고 이 이야기는 영국 전역으로 퍼져나가며 큰 화제를 모은다. 사실 비행선 R101은 사고 발생 전부터 이상한 일들이 유독 많았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 추락 사고 전 있었던 이상한 일들 -

1. 비행선 R101의 설계단계였던 1925년, 이 추락 사고로 희생된 항공성 국장 '세프턴 브랭커'가 한 점성술사를 찾아갔었는데 그때 이 점성술사는 '세프턴 브랭커'에게 5년 뒤 당신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함.

2.  이 사고로 희생된 정비공 '월터'라는 사람은, 사고 당일 어린 아들과 헤어지려 할 때에 그의 아들이 "더는 아빠가 없다"는 이상한 말을 했었다고 함.

3.  추락 사고가 있던 바로 그 시각 '카마이클 어윈' 선장 사무실의 전화기가 이상한 소리를 냈다는 증언도 있었다고 함.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는 우연일 뿐이라며 '아이린 가레트'를 믿지 않았다. 그런데 1931년 1월 놀라운 사실이 밝혀진다. 바로 영국 정부에서 발표한 비행선 R101의 사고보고서 내용때문이었다. 보고서의 내용이 '아이린 가레트'의 말과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비행선 R101이 이륙하기 전, '카마이클 어윈'과 항공성의 간부들이 비행선R101의 엔진 교체와 대대적인 정비를 해야한다고 주장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항공성의 장관이었던 '올리버 빌라즈'는 영연방 수송회의 개최일에 맞춰 무리하게 이륙을 강행했고 결국 엔진문제로 인하여 비행선R101이 추락하여 48의 희생자를 낸 것이었다. 


- 반대 주장-

1978년, '존 플루어'는 자신의 저서(THE AIRMEN WHO WOULD NOT DIE)에서 그녀(영매자 아이린 가레트)가 이미 사전에 항공기술자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를 영매술인 것마냥 꾸며낸 것 이라며 의혹을 제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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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멸종된 동물들, 그 이유와 종류는?

 1712년, 남아프리카 남서부에 케이프 지대를 여행하고 있던 천문학자 ‘피터 폴브’ 그는 놀라운 것을 목견한다. 그에 눈 앞 푸른빛을 내뿜는 네 발 달린 짐승이 있었던 것이다. 판타지에서나 볼 수 있었던 푸른빛의 동물, 학자들은 현실적으로 파란색의 포유류가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왜냐하면 약육강식 세계에서 파란색은 너무 눈에 잘 띄기 때문이다. 눈에 잘 띄는 색은 먹이 사슬의 세계에서 매우 불리하다. 따라서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해온 포유류는 자신을 숨기기 편한 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피터 콜브’가 목격한 파란 짐승은 허상이 아니었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피터 콜브’가 목격한 것, 그것은 ‘파란 영양(Blue buck, Hippotragus Leocophaeus)’, 부드러운 풀을 주식으로 했던 초식동물의 새, 초원이 발달했던 남아프리카 남서부 케이프 지역에서 서식했으나 개체수가 많지 않아 매우 희귀한 동물로 이었다. 헌데 1652년 ‘파란영양’에게 엄청난 시련이 닥친다. 바로, 네덜란드가 아프리카 대륙을 식민지로 건설하면서 많은 유럽인들이 아프리카 대륙에 정착을 시작했는데, 목축업과 낙농업을 하기 위해 양&소를 데리고 온 것이다. 이로 인해 ‘파란 영양’은 새로 유입된 초식동물들과 먹이 경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인간들이 먹이를 주었던 양&소 등의 가축에 비해 스스로 먹이를 찾아야 했던 ‘파란 영양(Blue buck)’. 결국 ‘파란 영양’은 죽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멸종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사냥꾼들의 무차별적인 사냥이었다. 사냥꾼들이 ‘파란 영양’을 사냥했던 주된 이유는 희소성이 높은 파란 빛깔의 모피를 구하기 위해 ‘파란 영양’을 사냥했기 때문이었다. 푸른빛을 내뿜는 ‘파란 영양’의 그 신비롭고 아름다움이 ‘파란 영양’을 멸종케 한 것이다. 안 그래도 먹이 경쟁에 밀려 개체수가 현격히 줄어들던 ‘파란 영양’은 인간들의 사냥으로 그 씨가 말랐고 1800년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파란 영양’이 총에 맞으면서 멸종되고 만다. 현재, ‘파란 영양’의 유해는 유럽의 여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즉, 과거에 존재했었던 ‘파란 영양’은 지금은 볼 수 없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1741년 11월 독일의 박물학자 ‘게오르크 빌헬름 슈텔러’는 러시아 제국의 캄차카 반도를 탐사하던 도중 폭풍을 만나 조난당한다. 그리고 ‘코만도르스키예 제도’ 무인도, ‘베링 섬’에 표류하게 되는데, 그러던 중 뭔가를 발견한다. 그가 발견한 것은 8m가 넘는 거대한 덩치의 물고기였다. ‘게오르크 빌헬름 슈텔러’는 이 엄청난 크기의 고기를 잡아서 선원들과 나눠 먹었는데 한 마리에서 나온 양이 무려 3t으로 선원들이 며 칠 동안 마음껏 먹어도 남을 만큼의 엄청난 양이었다. 뿐만 아니라 맛도 매우 훌륭했다고 한다. 그렇게 ‘게오르크 빌헬름 슈텔러’ 일행은 배고픔을 이겨내고 섬을 탈출했는데, 그들을 아사의 위기에서 구해줬던 그 고기는 바다소의 일종으로 후에 학자들은 그의 이름을 영어식으로 반영해 ‘스텔러 바다소(Steller's Sea Cow, Hydrodamalis gigas)’라 명명했다. ‘스텔러 바다소’, 북태평양 베링 해에서 서식하는 포유류로 길이 8m, 체종 12t에 달하는 바다소 종류 중 가장 크고 무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다에 살지만 잠수하지 못하는 ‘스텔러 바다소(Steller's Sea Cow)’는 몸을 물 밖에 내놓은 상태로 바다를 감돌며 얕은 여울의 다시마를 뜯어 먹고 살았다. 그런데 갑자기 위기상황을 맞이하게 된 ‘스텔라 바다소’, 베링 섬에서 벗어나 귀환한 캄차카 탐험대의 조난 일화가 알려지면서 캄차카 인근의 상인과 사냥꾼들이 ‘스텔러 바다소’의 고기와 지방, 모피를 노리고 남획을 시작한 것이다. ‘스텔러 바다소’는 동작이 느리고 인간에 대한 경계심이 없었는데, 특히 동료가 살해당하면 이를 도우려는 듯 주위로 몰려들어 사냥하기 쉬웠다고 한다. 결국 무자비한 사냥으로 1768년 박물학자 ‘이반 포포프’의 “아직 2~3마리의 ‘스텔러 바다소’가 남아있었는데 죽였다.”라는 기록을 마지막으로 ‘스텔러 바다소’는 사라졌다. 발견된 지 불과 27년 만의 멸종이었던 것이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리고 마다가스타르 앞바다 ‘모리셔스 섬’ 인근에서 살았던 몸무게 23kg의 청회색 깃털과 특이한 부리를 가졌던 새가 있었다. 그런데 이 새는 큰 날개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날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날지 못하는 이 새에게 포르투칼어로 바보, 얼간이를 뜻하는 ‘dodo’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는데, 이 ‘도도새(Dodo bird, Raphus Cucullatus)’가 날지 못하게 된 것은 모리셔스 섬에 자연환경 때문이었다. 모리셔스 섬은 새들의 천국이었는데 초식성으로 과실을 주로 먹었던 ‘도도새’는 굳이 날지 않아도 ‘모리셔스 섬(Mauritius)’에 지천으로 널린 과실나무에서 먹이를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천적의 위험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날개 짓을 할 필요도 없었다. 왜냐하면 천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날 필요가 없었던 ‘도도새’의 날개는 더위를 쫓는 용도로만 쓰였던 것이다. 그야말로 ‘도도새’의 낙원이었던 ‘모리셔스 섬’, 하지만 대항해 시대 1505년 포르투칼 선원들이 ‘모리셔스 섬’에 상륙한다. 그들은 오랜 항해로 인한 체력소모를 ‘도도새’를 통해 보충하려 했고 날지 못했던 ‘도도새’는 잡힐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모리셔스 섬’이 네덜란드 정부에 의해 죄수들의 귀향소로 지정되면서 죄수들과 함께 섬에 들어온 다양한 동물들이 ‘도도새’의 알을 공격하기에 이른다. 이로 인해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었는데, 결국 1681년 영국인 ‘벤자민 해리’가 마지막 ‘도도새’를 목격하는데 이마저도 사냥꾼에 의해 죽으면서 ‘도도새’는 멸종하고 만다. 인간들에 의해 발견된지 150년 만의 멸종이었다. 불과 150년 만에 실존했던 ‘도도새’가 역사 속 생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도도새’의 멸종은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1992년 브라질 리우 환경위에서 충격적인 발표가 보고되는데, 바로 ‘모리셔스 섬’의 ‘카바리아 나무’가 더 이상 번식하지 않고 희귀종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모리셔스 섬’에는 13그루의 ‘카바리아 나무’가 있었는데 13그루 전부 다 수명이 300살이었다. 즉, 300여 년 전에 성장을 멈췄다는 것이다. 이에 학자들은 현재 존재하고 있는 ‘카바리아 나무’가 수명을 다하게 되면 그와 동시에 멸종을 맞이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바로 ‘카바리아 나무’가 멸종에 처한 이유를 조사한다. 그 결과 이유는 ‘도도새의 멸종’이었다. 학자들은 ‘카바리아 나무’가 스스로 번식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카바리아 나무’가 번식하려면 새의 소화기관을 통해서만 가능한데 이를 ‘도도새’가 해주었다는 것이다. ‘도도새’는 ‘카바리아 나무’에 열매를 먹고 살았고 열매를 소화시켜 배설하면서 씨앗을 옮기고 성장시키는 방식으로 ‘카바리아 나무’에 번식을 도왔다. 즉, 공생 관계였던 것이다. 이 사실이 학계에 보고되면서 ‘도도새’의 멸종으로 멸종의 위기에 처한 ‘카바리아 나무’는 ‘도도나무’로 불리게 되었는데, 한 종의 생물이 사라진 뒤 300년이 흐른 뒤 밝혀진 놀라운 사실, 300년 전 사라진 생물이 현재의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학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공룡이 기후변화로 멸망하기까지 걸린 시간 1억 5천만년, 하지만 이렇게나 많은 생물들이(오록스, 훗카이도 늑대, 스테고돈, 바바리 사자, 카스피 호랑이, 시리아 코끼리, 일본 늑대, 주머니 늑대 등)급작스런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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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랜드 공국, 그 정체는 무엇인가?

2007년 1월 8일, 영국의 한 일간지에 황당한 광고 하나가 게재되는데, 사생활 보장과 지위 승격!을 내건 파격적인 내용의 이 광고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이 광고를 본 사람들은 매우 황당하고 놀라워했다. 왜냐하면 이 광고에 실린 판매 물품 때문이었다. 신문에 실린 판매 물품의 이름은 ‘시랜드(Sealand)’,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시랜드’가 군주제 국가라고 소개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사람들의 관심을 끈 광고 문구가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것은 한국 돈 약 45,000원을 내면 ‘시랜드 공국(The Principality of Sealand)’에서 인정하는 백작신분도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놀라운 광고 내용으로 인해 이 광고 한 장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이 분위기로 인해 언론에서도 ‘시랜드 공국’에 실체에 주목하게 된다. 하지만 ‘시랜드 공국’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당시 광고에 표시된 ‘시랜드 공국’은 북위 51° 53’ 40’’ 동경 1° 28’ 57’’ 지점에 자리하고 있었다. 헌데, 이 위치는 에식스 주의 ‘하리치항’으로부터 11km 떨어져 있는 바다 위였다. 이에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고 영해에서 포착되는 섬을 위주로 샅샅이 뒤졌는데, 바다 한 가운데에서 정말로 ‘시랜드 공국’으로 추정되는 조그마한 뭔가가 포착됐다. 언뜻 보기에 섬처럼 보인 ‘시랜드 공국’은 사실 2개의 원통형 구조물이 영토를 대신하는 플랫폼을 지탱하고 있었고 그 위에 주거가 가능한 건물 & 헬리콥터 착륙장을 건설한 뒤 국기를 세워놓은 약 166평 정도의 구조물이었다. 그곳에는 당시 2명의 군인과 공작 1명 그리고 백작 1명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이 '시랜드 공국'에는 통치자까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패디 로이 베이츠’였다. 그러면 이 시랜드 공국은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을까? ‘시랜드 공국’의 탄생배경은 1942년 시작된다. 당시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영국, 영국군은 독일군의 공습을 방어하기 위해 동부해안에 해상벙커를 설치하였는데, 이 해상벙커에는 150~300명 정도의 병력이 상시 거주하며 작전에 합류했었다. 이렇게 이 해상벙커는 전쟁의 요새로 쓰이다가 1945년 종전이 되자 그 기능을 잃고 버려졌다. 헌데 22년 뒤에 ‘패디 로이 베이츠’가 사람들 앞에서 이 해상벙커를 ‘시랜드’라고 명명한 뒤 한 나라로서 독립한다며 독립선언문을 낭독한것이다. ‘패디 로이 베이츠’는 해상 벙커가 만들어질 당시에 영국에 육군 소령이었다. 그런데 전역을 하고 라디오 해적 방송을 운영하고 있던 ‘패디 로이 베이츠’는 어느 날 우연히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다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되었던 해상벙커를 생각하게된다. 그리고 그는 이 해상벙커가 영국령으로부터 벗어나 있을 뿐만 아니라 공해상에 세워져 있기 때문에 영국 법적으로 규제가 없다는 점을 이용해서 영국 해군이 지어 이용했었던 해상벙커를 ‘시랜드 공국’이라고 명명한 뒤, 자신 스스로 ‘시랜드 공국’의 통치자라 정한 것이다. 그리고 ‘패디 로이 베이츠’자신의 신분을 공작으로 바꾼 뒤 가족을 데리고 와서 정착하였다. 그리고 20명 정도의 사람들을 '시랜드 공국'의 백성으로 두었던 것이었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시랜드 공국'에 건물을 살펴보면 10여 명 정도의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건물있는데, ‘시랜드 공국’ 사람들은 이곳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들 모두에게는 '시랜드 공국'의 신분증이 발행되어 있으며, 신분증이 발급된 사람들은 ‘시랜드 공국’에서 발행한 화폐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랜드 공국’에서 발행한 우표로 외부와 간단한 연락을 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외부인은 ‘시랜드 공국’에 출입 시 반드시 여권확인을 통해서만 출입을 할 수 있었는데, 만약 위의 규제를 어길 시에는 이에 합당한 처분이 주어진다. 그리고 '시랜드 공국'은 국가대표 축구선수를 선발하여 독립국으로서 의지를 다지는 등 한 나라로서 갖춰야 할 조건들을 조금씩 갖추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1968년 어느 날, 영국 해군이 해상벙커에서 생활하고 있는 ‘시랜드 공국’ 사람들을 확인하게 되는데, 이때 영군 해군에게 총알이 날라온다. 당시 ‘시랜드 공국’의 경비를 섰던 '패디 로이 베이츠'의 아들인 '마이클'이 영국 해군을 발견하고 발사한 것이다. 이 일로 영국 해군은 ‘시랜드 공국’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곧바로 상부에 보고 한 뒤 '시랜드 공국'의 사람들을 강제퇴거 시키려고 했는데, 이는 영국해군의 생각되로 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시랜드는 영국 영해 밖 공해에 있기 때문에 영국의 사법권이 미칠 수 없다.”라며 영국 법정에서 사건을 일단락 지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세계 지도 어디에도 ‘시랜드 공국’은 표기되지 않는다. ‘시랜드 공화국’ 사람들은 하나의 독립국으로서 인정받고 싶어했지만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시랜드 공화국’은 세계적으로 독립국으로 인정한 나라가 없다. 즉, ‘시랜드 공화국’은 현재 존재하지만 국가로는 여겨질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시랜드 공국’에서는 황당한 사건들이 일어나기도 했다. 1978년 독일 출신의 사업가가 ‘시랜드 공국’을 방문했다가 마음대로 '시랜드 공국'을 검거(점령)한 것이다. 이에 시랜드 국민 전체가 합심하여 그들을 제압한 뒤 사업가를 붙잡아 포로로 선포한다. 그리고나서 '시랜드 공화국'은 독일과 포로 협상을 벌였다. '시랜드 공국'에서는 이 사건을 ‘외자의 난’이라 칭하는데 이 일은 ‘시랜드 공국’ 역사에서 중요한 독립운동 사건이다. 이 일이 있은 후 ‘패디 로이 베이츠’는 아들 ‘마이클’에게 통치권을 승계한 뒤 ‘시랜드 공국’을 떠나버렸다. 한편, 마이클은 국민들에게 ‘시랜드 공화국’의 발전을 다짐했다. 하지만 ‘시랜드 공국’은 영국과 영해권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싸움이 계속되어 마찰을 피할 수 없는 지경에 처했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시랜드 공화국’에서 발행된 여권이 범죄자들에게 이용되는데, 이로 인해 영국에서는 ‘시랜드’의 존재가 엄청난 문제로 떠올랐다. 이처럼 영국과의 대립은이 빈번해지자 ‘시랜드 공국’의 국민들은 '시랜드 공국'을 떠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2006년에는 ‘시랜드 공국’에 전기를 공급하는 기계에 불이나 국민들 중 일부가 사망했으며, 지금은 경제적 문제로 힘들어져 통치자와 단 한 명의 백작만 남아있는 상태다. 계속된 문제로 상황이 악화되자 2007년, ‘시랜드 공국’은 결국 약 1,200억 원에 '시랜드 공화국'을 판매 물품으로 내놓았다. 이에 실제로 이 사실을 알게 된 일본이 ‘시랜드 공화국’을 사려하였는데, 교통수단이 불편하다고 접근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거래를 취소한바 있다. 아직도 ‘시랜드 공국’은 자기네 정부가 승인한 신분 작위를 판매하고 있으며 ‘시랜드 공국’을 매입 할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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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라미드, 쿠푸왕의 피라미드

1979년 ‘바이킹 호(Viking spacecraft)’를 통해 화성의 표면을 탐사하고 있던 나사(NASA). 그러던 중 ‘바이킹 호(Viking spacecraft)’가 찍어 보내온 사진을 보고 과학자들은 깜짝 놀라게 된다. 그 이유는 ‘바이킹 호(Viking spacecraft)’가 보내온 사진들 중간에 거대한 피라미드(Pyramid) 모양의 구조물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사진이 공개되자 이것이 빛에 의한 단순한 착시현상인지 인공으로 만들어진 구조물인지에 대해 논란이 일었는데, 엉뚱하게도 세계가 주목한 것은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of Khufu)’였다. 그 이유는 '바이킹 호(Viking spacecraft)'가 전송해 온 사진 속 구조물과 똑같은 모양의 피라미드가 이집트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서쪽으로 13km 떨어진 '기자지역'에는 4,5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피라미드가 있는데, 이 피라미드는 평균 2.5T의 돌 230만 개를 쌓아올린 피라미드였다. 완공 당시의 높이는 147M, 바닥면적은 53,000제곱미터로 그 규모를 지금의 인공적인 구조물과 비교해보면 현대의 42층 높이의 빌딩의 높이에, 10개의 축구장을 합한 바닥면적에 달한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럼 과연 이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of Khufu)’는 누구의 피라미드일까? 이에 대해 학자들은 이 ‘대피라미드’가 ‘쿠푸왕의 피라미드’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1837년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of Khufu)’ 안에서 ‘쿠푸왕(Khufu)’이라고 새겨진 상형문자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 후부터,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of Khufu)’는 쿠푸왕의 피라미드라고 불리게 됐다.(‘쿠푸왕(Khufu)’은 이집트 4대왕조의 두 번째 왕으로 기원전 2551년부터 2528년까지 약 20년간 이집트를 통치한 왕이다. 하지만 '쿠푸왕(Khufu)'에 대해 남겨진 기록은 거의 없고 오직 7.5CM의 작은 ‘쿠푸상’ 하나만이 발견되었을 정도로 베일에 싸인 왕이다.) 그런데, ‘쿠푸왕(Khufu)’의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of Khufu)’를 살펴보면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보통 이집트 피라미드는 왕이 사후에 살고 있는 궁전이라 생각하여 완성되면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 입구를 돌로 막아 어느 곳이 입구인지 알 수 없도록 했는데,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of Khufu)’ 외벽에서 입구가 발견된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이 외벽 입구는 내부와 연결되어 있지 않고 막혀 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이로인해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of Khufu)' 안에 엄청난 보물이 숨겨져 있을 거라는 소문에도 오랜 시간동안 도굴범들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런데 이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of Khufu)’ 안으로 들어간 최초의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이슬람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 알 마문’이었다. 그는 818년 이집트를 정복하고 ‘쿠푸왕(Khufu)’의 막대한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대피라미드’를 파헤치도록 명령했고, 결국 내부로 통하는 통로를 발견한다. 그리고 드디어 ‘쿠푸왕’의 보물과 미라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방에 도달하게 된 ‘칼리프 알 마문’, 그가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여왕의 방’이었다. ‘여왕의 방’은 동서 길이 5.75m, 남북 길이 5.68m, 높이 6.22m에 천장은 우아한 맞배구조로 만들어져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of Khufu)’의 동서축과 동일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기대한것과 달리 아무것도 없었다. 보통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흔히 발견되는 상형문자가 새겨진 벽화, 유물, 미라 등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실망한 ‘칼리프 알 마문’은 다시 통로를 따라 들어갔고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왕의 방’이었다. 하지만 '왕의 방' 역시 텅 비어있는 왕의 석관만 존재할 뿐 이집트 왕의 절대 권력을 자랑하는 보물, 유물, 벽화, 부장품, 왕의 미라 등 그 어떤 것도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놀라운 점은 '왕의 방'이 수학적 계산으로 건설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왕의 방'이 정확히 3:5의 비율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3:5의 비율, 즉 황금비율은 기원전 4세기 전후로 고대 그리스에서 처음 발견됐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이보다 훨씬 이전에 건축된 ‘대피라미드’의 '왕의 방'에서 황금분할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런데 왜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of Khufu)’에는 왕의 미라, 유물, 보물 아무것도 없는 것일까? 첫 번째 가능성은 '도굴'이다. 하지만, 내부와 외부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도굴을 당한 흔적이 어디에도 없다. 두 번째 가능성은 이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of Khufu)’가 ‘쿠푸왕(Khufu)’의 진짜 무덤이 아닐 가능성이다. 일부 학자들은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of Khufu)’가 ‘쿠푸왕(Khufu)’의 진짜 무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학자들은 동지에 해가 지기 바로 직전 ‘대피라미드’의 그림자를 연구했는데, 그 그림자의 끝은 나일강 유역이었다. 과거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us)’는 “나일강 가운데 있는 섬 지하 어딘가에 쿠푸왕의 무덤이 있다.”고 기록했는데, 학자들은 이 기록과 연구결과가 일치한 다는 점을 들어 쿠푸왕의 진짜 무덤은 나일강 유역에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of Khufu)’는 도굴을 막기 위해 만든 속임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마지막 가능성은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of Khufu)’ 내부에 '비밀의 방'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고대 이집트에서 왕은 신이자 우주의 중심이기 때문에 피라미드의 정중앙에 왕의 방이 건설되는데, 이에 반해 ‘쿠푸왕의 방’은 정중앙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부의 어떤 곳에 진짜 왕의 무덤이 숨겨져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1992년 로봇 공학자 ‘루돌프 간텐브링크’ 탐사팀은 여왕의 방 위쪽에 있는 환기 통로에 탐사로봇을 투입했다. 혹시 다른 곳과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해서였는데, 그들은 놀라운 것을 발견한다. 로봇이 통로의 끝에서 두 개의 구리 손잡이가 달린 돌문을 발견한 것이다. 탐사팀은 이것이 바로 비밀의 방으로 가는 통로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이집트 정부는 그것이 비밀의 방이 아닌 공기 통로에 불과하다며 탐사팀의 추측을 부정했다. 그리고 이후 이집트 정부는 ‘루돌프 간텐브링크’ 탐사팀의 피라미드 탐사 재게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집트 정부는 ‘여왕의 방’을 폐쇄한다. 갑작스런 이집트 정부의 태도변화에 사람들은 당황했고 여기에 대한 의문이 재기되는 가운데 2002년 이집트 정부가 다시 ‘여왕의 방’을 공개하면서 미국 시카고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 합동팀이 ‘루돌프 간텐브링크’팀이 발견한 돌문을 기계로 뚫어 탐사하게 되는데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은 가로막힌 또 다른 돌문이었고 결국, 어딘가에 비밀의 방이 있을 것이라는 의문을 남긴 채 탐사에 실패하게 된다. 계속된 실패에도 2010년 영국 리즈 대학교 기술진은 어렵게 이집트 정부의 허가를 받아 이집트 문화재청과 함께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of Khufu)’의 비밀을 풀기 위해 현재까지 탐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과연 비밀의 방이 발견될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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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신체이형장애로 고통받는 사람들

2005년, 미국 유명 토크쇼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한 한 청년. 그는 누가 보아도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를 가진 남자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는 자신을 괴물이라고 표현했다. 자신을 괴물이라고 표현한 남자는 '제스'라는 청년으로 그의 뜻밖의 발언은 계속되었다. '자기의 눈은 이상하고 양쪽 턱선도 비대칭이며, 피부도 더럽고 전부 다 기형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자신이 매우 흉측한 외모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매일 지나치게 하루 종일 외모에 신경을 썼고 그로인해 직장을 계속 그만 둬야 했으며, 점점 그 정도가 심해져 자신의 자동차 룸미러 조차 쳐다보지 못하게 되어 직접 운전을 하지 못하게 됬다. 이런 '제스'에 고백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은 의아해 했다. 그런데 의학박사 '캐서린 필립스'는 이러한 증상이 정신질환의 일종이라고 말했다. '신체이형장애, BDD 증후군'이라는 것이었다. 신체이형장애란 정상적인 용모를 가진 사람이 자신의 외모에 심각한 기형이 있다고 왜곡되게 인식하는 정신적 질환이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실제로 신체이형장애를 앓고 있는 '샤이엔'이라는 여성이 그린 그림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샤이엔'은 자신의 외모와 다르게 왜곡되게 그림을 그렸다. '캐서린'박사는 신체이형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의 수가 전세계 인구의 2%에 달하며 심각한 성형중독 또한 신체이형장애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신체이형장애 때문에 무려 26번이나 성형 수술을 한 사례가 있었다. 2001년, 텍사스에 사는 '제니'는 남편으로부터 외모에 대한 지적을 받고 큰 상처를 받게 된다. 그 후, 자신의 외모가 흉측하다고 생가가게 된 그녀는 성형수술을 받게 되는데 아무리 고쳐도 자신의 얼굴이 흉측하게 보이는 제니느 그후 강박처럼 치아, 코, 볼, 가슴 뿐만아니라 팔, 배, 엉덩이, 허벅지, 무릎까지 지방흡입 등의 총 26번의 수술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신체이형장애를 앓고 있는 것은 일반인 뿐만이 아니었다. 많은 유명인들도 신체이형장애를 앓고 있다고 고백했는데 할리우드 유명 스타인 브루스 윌리스와 데미무어의 딸 탈룰라 윌리스. 그녀는 한 인터뷰를 통해 13세부터 '타블로이드지'를 읽으면서 자신의 외모를 혐오하기시작했고 심지어 계속해서 굶어 체중이 40kg이 채 되지 않은 적도 있었다는 것이었다. 또, 미국 유명 드라마 '모던 패밀리'에서 딜런 역을 맡았던 '리드 유잉' 역시 신체이형장애를 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배우를 준비하던 시절 연기를 위해 자신의 얼굴을 스스로 분석하던 중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얼굴에 큰 결함이 있다고 생각했고 급기야 성형수술을 수 차례 받았다고 한다. 한편 일부 학자들은 마이클 잭슨 역시 이 증상을 앓았을 것으로 보았다. 그는 얼굴과 턱 등 1990년대 후반까지 수차례 성형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특히 1979년 안무 도중 코 부상으로 코 수술을 하게 되는데 그 후 수술한 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이유로 1981, 1984, 1986년에 계속 코 수술을 받아 부작용으로 코가 주저앉아 보형물을 넣고 짙은 화장으로 가려야만 했다. 이러한 사례만 봐도 마이클 잭슨이 신체이형장애로 고통받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체이형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은 왜 자신의 외모를 실제와 다르게 인식하는 것일까?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2010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제이미 류스너'교슈는 신체이형장애는 뇌기능 이상 때문에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신체이형장애 환자 17명 vs 일반인 16명에게 자신의 얼굴 사진과 유명한 남자 배우 사진을 보여줄때 뇌반의 차이를 보는 실험을 했다. 이 실험에서 신체이형장애 환자들의 뇌인지를 살펴보면 일반인과 달리 뇌에서 시각자극을 처리하는 영역이 비정상적이었다고 한다. 신체이형장애 환자들은 자신의 얼굴을 볼때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구체적인 부위만 본다는 것이었따. 즉, 이러한 뇌기능 이상으로 자신의 얼굴을 실제와 다르게 인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이미 교수' 역시 이러한 뇌기능 이상의 원인은 설명하지 못했다. 그밖에도 신체이형장애의 원인에 대해 환경적인 요인, 유적적인 요인 등 다양한 설이 제기 되고 있지만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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