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테리 생명체 '장산범', 실재 존재하는가?

2013년 웹툰으로 만들어져 많은 인기를 얻기도 했었던 '장산범'.

(네이버 웹툰 - 2013년 전설의 고향 제6화, 글/그림 - POGO) 

올해 개봉 예정인 염정아, 박혁권 주연의 영화 '장산범', 그렇다면 '장산범'은 무엇일까?

'장산범'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장산범'은 우리나라 설화 속에 등장하는 괴수 중에 하나라고 하는데요.

온몸이 하얀색 털로 뒤덮혀 있고 날카로운 이빨과 긴 얼굴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는 네 발의 괴수, 미스테리 괴수 '장산범'.

뿐만아니라 그 속도도 매우 빠르며, 알 수 없는 시냇물 소리를 내어 사람을 유혹하는 괴수로 묘사되는데요.

(물론 일각에서는 얼굴이 없다는 등의 다른 형태로 묘사되기도 한다.)

'장산범'이란 명칭은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장산에 사는 범'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누워있는 호랑이라는 뜻으로 '와호', '하얀번개'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미스테리한 '장산범'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요?

일단 문서화된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구전(설화) 속 괴수이기에

문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고 원래 존재하지 않은(즉, 갑자기 등장한) 생명체라고 보는 분들도

계실것 같네요. 물론 각종 장산범 목격담 등이 인터넷에 떠돌기는 하지만요.


어찌되었든 '장산범'은 백두산 '천지 괴물'과 함께 국내에서 이야기 나누어지는 미스테리한 생명체가 아닌가 합니다.

(이 외에도 '닷발괴물', '어둑시니', '영노' 등의 요괴들도 있습니다.)

물론 그 존재 유무는 알 수 없지만요. 물론, 전세계적으로는 매우 다양하고 많은 수의 미스테리한 생명체들이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유무에 대해서 논란이 많은 미스테리한 생명체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미스테리한 생명체들이 많은 관심을

받는 것 역시, 그 존재유무가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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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가소성, 뇌의 신비!!

2011년 중국의 리 씨는 코와 입에서 악취가 계속해서 심하게 풍기자 병원에 갔는데, 검사결과 리 씨의 머리에 긴 칼날이 박혀있었다는 놀라운 말을 듣게 된다. 이러한 일이 벌어진 것은 2004년 리 씨가 강도가 휘두른 칼에 머리를 다친 일이 있었는데, 당시 리 씨를 치료한 의사가 실수로 칼잡이 부분만 제거하고 뇌 안에 칼날은 남겨두는 실수를 한 것이다. 그런데도 리 씨는 아무렇지 않게 정상적인 생활을 한 것이다. 검사결과로 알게 된 뇌 속의 칼을 다시 제거했는데, 그 칼날은 길이 10cm, 폭 1.8cm나 되었다. 어떻게 리 씨는 칼날로 인해 뇌에 손상을 당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했던 것일까? 이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리 씨의 경우 운이 좋아 뇌의 민감한 부위를 절묘하게 피해 칼날이 박혔기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리 씨 외에도 뇌의 절반을 잃고도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1. 1987년 미국 오하이오 주, 14세 소년 ‘아하드 이스라필(Ahad Israfil)’은 사고로 머리에 총을 맞게 된다. 수술을 받은 ‘아하드 이스라필’는 오른쪽 뇌의 대부분을 잃게 된다. 그런데 아하는 기적적으로 살아났으며 심지어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단과대학을 수석으로 입학한 것이다. 사고 후, 한쪽 뇌를 잃은 ‘아하드 이스라필’는 머리 오른쪽 부분이 움푹 파이게 됐다. 5시간이 걸린 첫 수술이 끝났을 때 의사는 ‘아하드 이스라필’가 살아날 가능성이 매우 낮으며 생존하더라도 정상인처럼 살 수는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런데, 의료진의 예상과 달리 ‘아하드 이스라필’는 첫 수술이 끝난 지 얼마 후 말을 했으며 일부 감각 기관이 온전치 않아 휠체어를 타게 됐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했던 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머리를 보고 스스럼없이 농담을 하며 가족들을 위로했다. 한 쪽 뇌가 없는데도 또래 아이들과 다름없이 말을 하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의료진은 ‘아하드 이스라필’의 뇌 기능을 재생하기 위한 수술을 시도했지만 결국, ‘아하드 이스라필’의 외형만이라도 바꾸기로 결정했다. 딱딱한 실리콘을 머리에 이식하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 성적으로 수술은 끝났고 ‘아하드 이스라필’의 머리는 외형상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됐다. 심지어 ‘아하드 이스라필’는 걷는데 성공하는 등 기적적인 모습을 나타냈다. 그 후, ‘아하드 이스라필’는 대학에 입학해 학위를 얻었으며 사고 후 24년이 지난 현재까지 정상인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2.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사는 ‘카메론 모트(Cameron Mott)’는 세 살 때 갑작스런 발작 증세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유 없이 갑자기 쓰러지는 등 신체에 이상 증상이 일어난 것이다. 그 후, 계속된 발작 때문에 카메론은 인지 능력이 떨어지면서 말도 잘 못하는 상태까지 이르게 됐다. 수 십 차례에 걸친 뇌 검사 결과 카메론은 뇌가 파괴되는 희귀병을 앓고 있음이 밝혀졌는데, ‘라스무센 뇌염(Rasmussen's Encephalitis)’라 불리는 이 병은 뇌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질환으로 대게 4~9세의 유아에게 발병하며 신체 일부의 마비와 지능 저하를 동반하게 되는 난치병이다. 카메론의 증상이 점차 악화되자 의료진은 감염 상태였던 카메론의 오른쪽 뇌를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의료진은 카메론의 왼쪽 몸에 마비가 올 것이라 예상했다. 오른쪽 뇌는 신체의 왼쪽 부분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카메론은 수술 후 4주 만에 병원을 걸어 나갔으며, 오히려 질병을 앓았던 오른쪽 뇌를 제거한 이후 언어 기능을 회복하기까지 했다. 2011년 카메론은 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일상생활에 별다른 지장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뇌는 부위별로 담당하는 기능이 있어서 특정 부위가 손상되면 그 기능은 영원히 회복할 수 없다고 여겨져 왔다. 인간의 대뇌는 전두엽, 측두엽, 두정엽, 후두엽의 4개 부분으로 나뉘는데 각각 기억, 이해, 감각, 사고력 등 역할이 구분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두정엽의 한쪽만 손상돼도 무인식증 상태가 되어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게 된다. 그런데 이에 대해 새로운 의견이 주장됐다. 뇌의 구조가 비정상적이더라도 손상된 부위를 다른 부위가 대신 수행하기 때문에 정상인과 다름없이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뇌가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뇌가 전혀 없는 경우는 선척적인 기형인 ‘무뇌증(Anencephaly)’으로 구분된다. 무뇌증은 대뇌가 없거나 흔적만 남아 있으며 두개골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무뇌증 환자는 보통 출생 후 며칠 내에 사망하게 된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즉, 무뇌증 환자의 경우처럼 대뇌가 완전히 없는 상태가 아니라면 극히 일부라도 뇌가 남아있을 경우 일상생활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부 뇌 과학자들은 이를 ‘뇌의 가소성(Plasticity)’이라는 이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뇌가 마치 찰흙이나 플라스틱처럼 변형한다는 것이다. 뇌가 스스로 기능을 회복해 나가거나 손상된 부위를 대체하면서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라고 한다. 뇌의 가소성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독특한 사례를 제시한다. 2002년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대학병원의 의사들은 한 소녀를 수술하게 되는데 그녀는 질병으로 인해 왼쪽 뇌와 함께 대뇌의 특정 기관인 ‘언어중추’를 제거해야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소녀는 네덜란드어와 터키어를 완벽하게 구사했던 것이다. 의료진은 소녀의 오른쪽 뇌가 언어 학습능력을 대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뇌의 가소성만으로 뇌가 가진 미스터리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현재까지 뇌에 대해 알려진 지식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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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자, '타입 슬립'사건 모음!!

1901년 8월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세인트 휴즈 대학의 학장 ‘모벌리(Moberly)’,와 부학장 ‘저데인(Jourdain)'은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관광하던 중 루이 14세의 별궁인 ‘그랑 트리아농’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 곳은 당시에 일반인들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곳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두 사람은 결국 돌아가기로 하고 발길을 돌려 돌아가던 중 기괴한 장면을 보게 된다. 길을 잃고 헤매고 있던 그들 앞에 과거의 화려한 복장을 하고 있는 한 여인을 본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본 화려한 차림의 여자가 18세기 프랑스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라고 주장했는데, 두 사람이 길을 잃고 찾아간 곳은 루이 16세가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선물한 궁전인 ‘쁘띠 트리아농(Petit Trianon)'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다시 그 곳을 찾아갔을 때에는 그들이 그 여인을 본 오솔길은 없었다. 두 사람은 이 괴이한 일을 책으로 출간했는데 당시 한 대학의 학장과 부학장으로 신분과 명성을 보장받았던 그녀들의 얘기는 큰 논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들은 사망할 때까지 당시 체험한 일이 실제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했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타임 슬립(time slip)’이라고 부르는데, ‘타임 슬림’이란 시간에서 미끄러진다는 뜻으로 과거나 미래, 또는 다른 차원의 공간을 넘나드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타임 슬립’을 실제로 겪었다는 사람은 예전부터 존재했었다.

<타임 슬립의 예>

1. 1974년 6월 ‘보 오르소’라는 한 남자가 캘리포니아의 파사디나에 위치한 로우 산에서 하이킹을 하던 중에 산 중턱에서 녹색의 한 호텔을 발견한다. 그런데 그곳은 호텔이 있을만한 장소가 아니었기에 이상함을 느꼈으나,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 호텔을 그냥 지나쳐 하이킹을 계속했다. 그런데 며칠 후, 하이킹을 했던 ‘로우 산’에 대한 책을 읽던 그는 놀라운 내용을 보게 된다. 그가 보았던 그 녹색의 호텔이 1937년 화재로 소실되어 돌 조각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쓰여 있었던 것이다. 이에 그는 급히 그 호텔을 찾아가 봤지만 책에 나온 것처럼 그 곳에는 돌 조각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2. 1968년 6월 아르헨티나의 변호사 비달 부부는 마이프 시를 향해 운전 중이었고 그 뒤에 친구인 ‘로오캄 부부’가 따라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짙은 안개에 휩싸인 비달 부부의 차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깜짝 놀란 ‘로오캄 부부’는 경찰에 신고를 했고 대대적인 수색이 벌어졌다. 그런데 이틀 후 비달부부는 멕시코에서 발견된다. 그들이 실종된 곳에서 약 7,000km 가량 떨어진 장소였는데, 이는 도저히 이틀 동안에는 갈 수 없는 거리였다. 더군다나 그들은 자동차를 탄 채 고스란히 멕스코로 이동된 것이었다.

3. 1970년 2월 뉴욕 맨해튼에 사는 14세 소년 ‘샘’은 친구와 농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샘’이 덩크슛을 하려고 점프를 하는 순간 갑자기 사라지고 만다. 같은 날 저녁 신기하게도 ‘샘’은 한 교회 앞에서 발견되었다. 조금 전까지 친구와 농구를 하던 그는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에서 모습을 나타낸 것이었다.

4. 1997년 미국의 라디오 프로그램 ‘코스트 투 코스트(Coast to Coast)’에서 미래에서 왔다는 시간 여행자가 앞으로 발생할 사건에 대해 예언한 것이다. 그는 플로리다 주 근처의 바다에서 화재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1998년 7월 우연하게도 플로리다 주에서는 마이애미 항을 출항한 유람선에서 큰 화재가 발생해 CNN이 생방송으로 보도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5. 미국의 물리학자 ‘톰 웨일러’와 ‘추이 맨’은 과학이 발달하면 과거나 미래로 메시지는 보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인간이 시간을 여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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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슬립’이 불가능하다는 주장>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1.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통해 시간을 여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과거나 미래로 가기 위해선 빛보다 빠른 속도를 내는 물질이 필요한데 이러한 물질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수상대성이론 공식 - E=mc2)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2.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도 과거로의 시간여행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원인이 시간상으로 결과에 항상 앞서야 한다는 기본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라는 ‘타임패러독스(Predestination)’ 이론’을 들었다.

<‘타임 슬립’이 가능하다는 주장>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1. 일부 과학자들은 ‘웜 홀(worm hole)’을 이용해 과거나 미래로의 시간여행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웜 홀’은 벌레가 사과 표면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이동할 때 사과에 구멍을 뚫고 통과하면 표면을 기어가는 것보다 더 빨리 간다는 점에 착안한 이론이다. 즉 은하계에서 ‘웜 홀’과 같은 지름길을 찾을 수 있다면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웜 홀’은 강력한 중력으로 시공간을 흡수하는 블랙홀을 이용해 짧은 시간 안에 다른 차원의 시공간을 이동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2. 2000년, 미국 코네티컷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로널드 몰렛’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기초해 수십 년 내에 시간여행이 가능하다고 주장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어떤 학자는 지구 곳곳에 타임 슬립이 자주 일어나는 곳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버뮤다 삼각지대나 뉴멕시코의 네바다 사막 등 자기장이 강력한 곳에서 시공간을 초월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다.

<‘타임 슬립’에 대한 최근 연구 결과 및 동향>

2004년 미국표준연구원의 데이비드 와인랜드 박사팀은 원자의 정보를 원격 전송하는데 성공했으며 2006년 영국 ‘요크 대학’와 일본 ‘도쿄 대학’의 공동 연구팀은 레이저 빔을 순식간에 다른 장소로 원격 전송하는 것을 실험으로 밝혀냈다. 즉, 빛과 원자는 원격 전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성과들을 바탕으로 미국 뉴욕시립대학교 교수 ‘미치오 카쿠’는 수십 년 내에 생체 분자의 순간 이동이 가능하며 물체의 순간 이동은 수백 년 후 가능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더 나아가 시간 이동까지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까지는 원자 단위의 순간 이동만 성공했지만 이를 바탕으로 먼 미래에는 인간의 시간여행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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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진시황제 무덤과 병마용갱!!

1974년 중국 산시성에서 이상한 것이 발견된다. 그것은 인간을 본 떠 만든 인형과 창, 청동화살, 석궁의 촉 등이었다. 이것을 본 한 일간지 기자가 이 상황을 신문에 실었다. 그런데 이 소식을 접한 중국의 주석이었던 ‘마오쩌둥’은 사람 형체의 인형이 발견된 곳으로 발굴팀을 급파했고 파견된 고고학 발굴팀은 도착하자마자 대대적인 조사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뒤, 발굴팀은 6m 깊이의 땅속에서 벽돌바닥 위에 줄지어 서 있는 지하군단을 발굴한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이 군단은 병사들만 서있는 보병, 전차와 병사가 함께 있는 기병군단이 섞여있었는데 말 4마리가 끄는 전차에는 병사들이 3~4명씩 타있었으며 그 뒤에는 보병이 12명씩 서있었다. 그것은 막강한 권력을 누렸던 진시황제의 무덤을 지키는 병사들이었던 것이다. 진시황은 기원전 246년 13세의 나이에 진나라 왕위에 올라 23세에 실권을 잡았으며 26세에 중국 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인물이었다. 진시황은 통일 후에 당시 통치제제였던 봉건제를 중앙집권제로 바꾸고 넓은 영토와 여러 민족을 다스리기 위해 철권통치를 일삼았다. 이때 봉건제도를 뒷받침했던 유교 철학을 철폐하기 위해 유학서적을 전부 불태우고 460명의 유학자를 생매장하는 ‘분서갱유사건’을 일으키는 등 악명을 떨친 전제군주였다. 하지만 그런 그가 중국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여겨지는데 이 이유는 진시황의 엄청난 치적 때문이었다. 그는 성문법을 만들고 도량형과 화폐를 통일했다. 또한 진시황은 글자를 통일함으로서 넓은 영토 어디에서도 뜻이 통하게 했고 식량과 물자를 신속하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도로를 개설하고 운하를 건설했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또한 진시황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건축물을 많이 지었는데, 인류 최대의 토목공사라 불리는 만리장성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진시황은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에 거대한 무덤을 만들도록 했는데, 이것은 사후 자신의 무덤이 파헤쳐질 수 있다는 생각에 진짜 묘는 철통같은 보안 속에서 만들게 하였으며 사후에는 가묘를 만들어 자신의 진짜 묘를 찾지 못하게 하라고 명령했다. 심지어 진시황은 자신의 무덤을 만드는 것에 관련된 사람들을 비밀 유지를 위해 모두 생매장했다. 그래서 옥수수밭에 지나지 않던 곳에서 거대한 병마 군단이 모습을 드러내자 많은 중국 사람들이 흥분했던 것이다. 그리고 1976년 4월, 처음 발견된 무덤으로부터 약 20m 근처에서 2,000여 명의 병사와 89대의 전차, 청동 병기 수만 점이 나온 ‘병마용갱’이 또 하나 발견된다. 그리고 한 달 뒤, 지휘부 군영을 재현한 ‘제3호 용갱’이 추가로 발견되는데 학계에서는 특히 이 ‘제3호 용갱’에 관심을 가졌다. 왜냐하면 ‘제3호 용갱’은 그동안 비밀에 쌓여있던 진시황의 군사 포진도 즉,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했을 당시 그의 강력한 군대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어 무덤 그 자체가 커다란 하나의 군사 박물관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후 진시황에 대해 연구하던 학자들이 뜻밖의 주장한다. 그것은 바로 진시황이 우주에 광적인 집착을 가졌었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진시황 무덤의 축조 기술을 살피던 학자들은 직사각형 모양의 무덤이 전체적으로 ‘돌아올 회’자 모양을 하고 있으며 건축물의 공간배치가 천체의 움직임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는 그가 살았던 ‘아방궁’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아방궁’이란 중국 진시황이 세운 궁전으로 약 900개의 방이 있어 약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라고 전해지는 궁전인데 학자들이 이 아방궁터를 하늘의 별자리와 비교하면 아방궁의 공간배치는 하늘의 별자리와 대응했고 황제가 머물렀던 ‘자미궁’은 북두칠성자리에 그리고 아방궁 안에 있던 ‘위수’는 은하수자리에 북쪽에 있는 나머지 궁전은 페가수스 두 별자리에 위치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실에 대해 일본의 한 연구단체는 진시황의 우주에 대한 관심은 이상한 믿음에서 생기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이 제시한 기록에 의하면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한 직후 자기 자신 스스로 신선이 되겠다고 다짐하고 한 도인을 찾아갔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때 그 도인으로부터 ‘사람을 대할 때 생기는 사악한 기를 피하라(인주 미행 체중 사기 피)’는 말을 듣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진시황은 호위무사에게 신하들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거처를 알리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얼마 후, 진시황의 거처를 알아내고 신하들이 찾아오자 매우 분노한 진시황은 주위에 있던 신하들을 전부 죽여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이때부터 진시황이 더욱 심하게 자신이 인간 이상의 존재라고 믿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자신의 호칭을 바꾼 것이었다. 그동안 ‘왕’이라고 불렸던 것을 금지시키고 ‘황제’라고 부르게 한 것이다. 이때 황제의 ‘황’은 천제, 즉 우주의 지배자라는 뜻이었다. 또한 학자들은 주장의 근거로 <사기>와 같은 중국의 문헌들을 제시했는데 이 문헌들의 기록에는 그동안 알고 있었던 진시황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 스스로 자신을 신이라 여겼음은 물론 자기를 인간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모조리 형벌을 내렸다는 것이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또한 고고학자 ‘크라피바’ 박사는 기록 중 진시황의 청동거울을 언급하며 이때부터 진시황이 우주, 외계를 광적으로 맹신했다고 주장했다. 청동거울이란 진시황이 만든 12개의 커다란 거울을 말한다. 그런데 이 청동거울을 진시황은 밤마다 달빛에 비추며 우주와 대화를 했다는 것이다. ‘크라피바’ 박사는 그의 이러한 행동은 이뿐만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진시황은 외계의 계시를 받아야만 건축물을 축조를 했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렇게 지어진 첫 건축물이 ‘극묘’라고 했다. ‘극’은 하늘의 중심 별자리인 북극성을 말하는 것으로 진시황은 당시 지상공간을 천상세계와 명확하게 대응시키는 새 궁전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극묘’를 지었다는 것이다. 이때, 기적의 삼발이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기적의 삼발이가 진시황의 건축물을 짓는데 이용되었다는 것으로 진시황의 건축물로 대표되는 아방궁과 270채의 궁전, 만리장성은 물론 거대한 자신의 무덤 역시 이 기적의 삼발이가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기적의 삼발이는 문헌에만 기록되어 존재할 뿐 실제로 발견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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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유령사진, 그 진실은?

1995년 11월 영국의 ‘웸(wem)시청’에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이때 그 근처에 있던 ‘토니 오래힐리(Tony O’Rahilly)'라는 사진작가가 불타고 있던 건물을 촬영했다. ‘토니 오래힐리’는 촬영한 사진을 살펴보던 중 이상한 점을 발견하는데, 화재 속에 있던 ‘웸시청’에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 한 소녀가 찍혀있었던 것이었다. 이 사진은 곧 엄청난 관심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이 사진을 본 주민들은 사진 속 소녀가 ‘제인 츄름(Jane Churm)'이라는 소녀라고 주장한다. 주민들이 말한 ‘제인 츄름’이라는 소녀는 1677년 사고로 마을회관에 불을 내고 그 자리에서 사망한 14살의 소녀였다. 그런데 불이 난 건물 사진에 ‘제인 츄름’이 찍히자 사람들은 그녀의 유령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 후, 이 소녀는 ‘웸 유령(Wem ghost)'이라고 불리며, 세계 10대 유령사진 중 하나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웸 유령’ 사진 외에도 유령이 찍힌 사진이라고 주장하는 사진들은 많이 있다.

1. 1997년 미국의 음악 연구가인 ’브렛 메이즈너‘는 오래 전에 찍은 사진들을 보다가 한 사진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사진 속에서 그의 뒤에 사람처럼 보이는 형체가 미국의 가수 ’짐 모리슨‘과 매우 유사했던 것이다. (‘짐 모리슨(Jim Morrison)'은 1960년대의 록밴드 ‘도어스(Doors)'의 리더로 당시 대중문화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짐 모리슨’은 1971년 27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그리고 그는 사망한 후 프랑스 파리에 있는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에 묻혔는데, 이곳은 작가‘프로스트’, ‘오스카 와일드’, ‘쇼팽’, ‘모딜리아니’, ‘에디트 피아프’ 등의 무덤이 있는 파리의 명소 중 하나였다. 그런데 ‘짐 모리슨’의 무덤을 방문했던 ‘브렛 메이즈너’의 사진에 ‘짐 모리슨’과 비슷한 형체가 찍혀 있었던 것이다. 이 사진을 분석한 결과 조작은 없는 것으로 판명되면서 이 사진은 ‘짐 모리슨의 유령 사진’으로 불리게 된다.

2. 2004년 영국에 ‘크리스토퍼 페티(Christopher Petty)'형제는 어느 날 셰필드 공원에 갔다. 그런데 공원에서 그날 찍은 사진을 살펴보던 형제는 매우 놀란다. 왜냐하면 사진 속에서 정체모를 한 사람이 찍혀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그들 형제 주위에는 사람같은 형태의 조각상 등 찍힐 만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 전문가들이 사진을 분석한 결과 사진에 찍힌 사람은 3년 전, ‘셰필드 공원’에서 사고로 사망한 ‘플로렌스 브리스토’와 매우 유사했던 것이었다.

3. 2010년 어느 날 ‘르네 잉글리쉬’라는 사람이 가족들과 함께 호주 시드니에 있는 ‘세인트 마크’ 공동묘지를 방문했다. 그런데 이곳은 평소 유령이 자주 나타난다고 알려진 유명한 유령 관광코스였다. 하지만 유령을 믿지 않는 ‘르네 잉글리쉬’는 이 관광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사진을 보던 ‘르네 잉글리쉬’는 매우 놀란다. 왜냐하면 묘지를 찍은 사진에 알 수없는 두 명의 아이 모습이 찍혀있는 것이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사진 속에 나타난 남자아이는 1946년 소아마비로 사망한 ‘데이비드 쇼우’라는 아이였고 여자아이는 1886년 기찻길 옆에서 사망한 ‘브랑쉬 문’이라는 아이였다.

4. 2011년 4월 아들을 찍은 사진 속에 꼬마 유령이 나타났다고 주장 하는 사진이 공개되었다. 실제로 아이 옆에는 어린아이의 형체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데 현재까지 조작 가능성은 극히 낮은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이렇게 죽은 사람의 유령이 찍혔다는 사진들은 카메라가 대중들에게 보급된 19세기 말부터 꾸준하게 등장해 왔다. 하지만 조작된 사진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어 왔다. 20세기 초 사진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대에는 사진 조작이 빈번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조작된 유령을 넣은 사진들은 신비로운 이미지 때문에 인기를 끌었는데 일부 심령학자들은 직접 심령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중 심령사진 작가인 ‘토마스 해밀튼’은 다양한 심령사진들을 연출하고 찍은 것으로 유명했다. 21세기 들어 사진 기술과 컴퓨터가 발달하자 조작은 점점 더 정교해지기 시작했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실제로 찍힌 것처럼 조작한 사진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논란 많았던 이 사진에는 가족들의 다리 사이로 한 아이의 모습이 찍혀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빛이 만들어낸 현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빛의 착란이 우연하게도 아이 얼굴과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유령사진들의 공통점>

- 유령사진들은 공동묘지나 오래된 학교, 성, 교회 등 유령이 자주 나타난다는 장소들에서 촬영되었다는 것이다.

예 1) 2010년 영국의 앤너비 초등학교에서 찍힌 사진도 마찬가지였다. 이 학교는 건물이 너무 낡아 보수 중이었는데, 공사 과정을 남기기 위해 한 남자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한 소년이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 찍힌 것이었다. 사진의 배경이 된 초등학교는 이전부터 유령이 출몰하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예 2) 영국 요크셔 지방의 교회에서 찍힌 형체는 ‘수도사 유령’이라 불리며 유명세를 탔고 영국 햄프턴 궁전의 ‘목 없는 유령’ 역시 관광객이 찾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예 3) 스코틀랜드에 위치한 ‘탠탈론 성(Tantallon Castle)'은 ‘유령의 성’으로 유명한데, 창가에 의문의 여성이 나타난 사진이 종종 찍혔기 때문이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유령사진을 부정하는 학자들의 주장>

1. 영국의 심리학 교수인 ‘리처드 와이즈먼’은 특정한 주변 환경이 유령이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령이 나타난다는 곳으로 유명한 영국의 햄프턴 궁전에서 유령체험과 관련된 실험을 했다. 이 궁전 안을 돌아다니다가 이상한 기분이 들거나 어떤 존재감을 느꼈다면 그 장소가 어딘지를 묻는 실험이었다. 실험 결과, 참가자의 46.5%가 온도가 낮고 어둡고 협소한 곳을 유령이 나올만한 곳으로 지목했다. 그런데 그 장소는 예전부터 유령이 많이 출현했다고 보고된 지점이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기장이 급변하는 환경에 처하면 인체의 생리적 리듬이 일시적으로 깨져 마치 유령을 본 듯한 한기나 오싹함을 느낀다고 한다. 즉, 이런 장소에서 빛의 착란과 같은 정체모를 형상이 찍혔을 때 유령이 찍혔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2. 청각과 후각을 담당하는 부위인 뇌의 측두엽 때문에 유령을 봤다고 느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캐나다의 신경과학자 ‘마이클 퍼신저’ 교수는 실험 참가자 다섯 명의 측두엽을 전기로 자극했는데 그 중 네 명이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즉, 측두엽이 활성화된 사람일수록 유령과 같은 이상한 소리나 느낌을 잘 받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도 불과하고 유령을 믿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령이 원한이나 자신의 무고함 등을 알리기 위해 사진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조작이나 착란이 아닌 유령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충격적인 주장이 제기 됐다. 영국의 ‘웸 유령’ 소녀가 조작이라는 것이었다. 2010년 이 마을의 택시 운전기사인 ‘브라이언 리어’는 지역신문에 실린 옛날 사진을 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1922년 시청 건물주변을 찍은 사진 중 유령과 닮은 소녀를 발견한 것이다. 두 사진 속 소녀가 드레스, 모자 심지어 얼굴까지 동일하자 ‘브라이언 리어’는 ‘토니 오래힐리’가 사진을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토니 오래힐리’는 2005년에 사망했으며 사망할 때까지 사진을 조작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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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고대 암벽도시 페트라, 고대도시

 1812년 요르단의 사막 한 가운데 거대한 절벽 사이를 지나가는 아랍인으로 위장한 스위스 탐험가 ‘부르크하르트’는 오래전 역사 속에 사라진 '고대 도시'를 찾는 중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험난한 협곡 끝에서 사막의 암벽도시 ‘페트라’를 찾고만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을 기준으로 서남쪽으로 150km 지점에 위치한 고대도시 ‘페트라’, ‘페트라’로 가기 위해서는 요르단의 '그랜드 캐니언'이라 불리는 거대한 협곡 지대 ‘와디무집’을 지나야만 한다. 약 70m의 이 엄처난 협곡 지대는 오랜 시간동안의 지진과 침식의 결과물로, 사해로 들어가는 협곡이다. 이러한 척박한 사막에 세워진 고대 암벽도시 ‘페트라’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며, 1985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암벽도시 ‘페트라’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촬영 장소로도 유명한데, 더욱 놀라운 것은 ‘페트라’가 세상에 알려진 것이 고작 200여 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출처 - MBC신비한TV서프라이즈)

19세기, 스위스 출신의 탐험가이자, ‘아프리카내륙탐사추진협회’의 회원이었던 ‘부르크하르트’가 황금의 도시 ‘엘도라도’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프리카 탐험 대신 회교도의 성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Mecca)’의 탐사를 계획한다. 그렇지만 ‘아프리카내륙탐사추진협회’는 ‘부르크하르트’의 ‘메카’ 탐험을 허락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 서양에서 파견된 기독교인 탐험가들이 회교권을 여행하다가 살해를 당하거나 탐험을 포기하고 돌아오기 일수였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르크하르트’는 아랍어&코란을 심히 공부하는가하면, 수염을 기르는 등 아랍인들의 생활양식을 수행하며 열심히 준비를 한다. 왜냐하면 회교도를 가장하다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이 들키게 되면 죽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노력에 감탄한 협회는 마침내 ‘부르크하르트’에게 회교권 지역 탐험을 허락한다. 이렇게 탐사를 시작하게 된 ‘부르크하르트’는 1812년 팔레스타인 지역을 지나던던 중 상인들로부터 고대도시 ‘페트라’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에 호기심을 가진 그는 ‘페트라’를 찾는 일에 몰두하게 되지만 ‘페트라’를 찾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왜냐하면 '페트라'가 외부에선 입구도 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절벽 암석으로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페트라’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은 폭 2m, 길이 1.2km에 이르는 절벽 사이에 있는데, 이 길은 협곡이라는 뜻의 아랍어 ‘시크(Siq)’라고 불린다. 오랜 세월동안 지각변동으로 벌어진 바위 틈새 덕분에 ‘페트라’는 천혜의 요새가 된 것이다. 결국 이 길을 찾은 ‘부르크하르트’가 길을 통과해 ‘페트라’를 보고 매우 놀라는데, 그곳이 1,200여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었다. 좁고 깊은 골짜기를 따라 형성된 고대도시 ‘페트라’는 주거시설, 목욕탕, 극장, 시장, 무덤, 상수도 시설까지 완벽하게 갖춰진 인구 30,000명이 거주하던 고대 도시였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페트라’의 모든 건물이 ‘조각’이라는 사실이었다. 즉, 건축물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조각품인 것이다. 높이 39m, 너비 28m에 이르는 거대한 장밋빛 사암, 이 암석을 통째로 조각한 ‘알 카즈네 신전’은 기둥이나 벽을 세우지 않고 바위를 정교하게 다듬고 파내서 만든 것이다. ‘페트라’는 도시 전체가 커다란 바위덩이인 것이다. 기원전 4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도시 페트라’, 그럼 과연 누가 언제 만든 것일까?

(출처 - MBC신비한TV서프라이즈)

2,000여 년전, 그리스와 이집트에서는 향료의 수요가 높아 교역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상인들은 향료 무역에 적극적으로 나섰는데, 그중 아랍계 유목인 ‘나바테아인’들은 사막에서 상인활동을 하며 아라비아 일대의 무역에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라비아 남부의 향료나 인도의 후추 등을 아라비아 북부로 운송하던 강력한 상인 집단이었다. 활발한 활동으로 시리아와 이라크 서부 등까지 세력을 확장한 ‘나바테아인’들은 사막 한 가운데에 있는 바위 틈새에 도시를 건설한다. 유럽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을 연결하는 지역이자 상인들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교역의 중심지에 만든 요새 도시 ‘페트라’였다. 사막을 건너다녀야 했던 상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정보는 모래바람을 피할 수 있고 물을 얻을 수 있는 곳이었다. 사막 한 가운데에 있는 도시 ‘페트라’는 척박한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였고 난폭한 도적이나 짐승들로부터 보호 받을 수 있는 안전 지역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사막 여행으로 지친 상인들은 모두 ‘페트라’를 거쳐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공짜는 아니었다. ‘나바테아인’들은 ‘페트라’를 거쳐 지나가는 상인들에게 통행세를 징수했다. 상품가격의 무려 25%에 달한 통행세 덕분에 ‘나바테아인’들은 점점 부를 축적해나간다. 대상무역이 활발해지고 천연의 요새라는 이점까지 갖춘 ‘페트라’는 교역의 중심지로 급부상했다. 그런데, 무역을 하는 유목민족 ‘나바테아인’들이 어떻게 암벽에 도시를 만드는 기술을 가졌을까?

(출처 - MBC신비한TV서프라이즈)

바로 천장에 난 구멍이었다. 페트라는 바위의 정면에서 안으로 파고 들어간 것이 아니라 천장에 구멍을 뚫고 수직으로 깎아 내리면서 공간을 만든 것이다. ‘나바테아인’들은 건물을 지을 바위의 윗부분을 평평하게 깍은 뒤, 그 위에 정교한 설계도를 그렸다. 그리고 그 설계도에 따라 위에서부터 아래로 파 내려 간 것이다. ‘페트라’의 대표적인 건물인 ‘알 카즈네 신전’ 역시 바위에 윗부분에 수직으로 관통하는 구멍을 뚫어 아래로 내려가면서 공간을 만든 것이다. 왜 만들었을까? ‘나바테아인’들의 삶은 바위에서 태어나 바위에서 살다가 바위에서 죽는 것이었다. 즉, 그들은 바위자체를 신으로 숭배했던 것이다. ‘나바테아인’들에게 바위 속에 매장 된다는 것은 신에게 다가간다는 의미를 가졌기 때문에 죽은 사람 역시 바위를 깎아 그 안에 매장했다. 일일이 바위를 조각해 만든 ‘페트라’에 건물은 현재까지 발굴된 것만 800여 개에 달하지만 이는 ‘페트라’전체의 1/4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런데 인구 30,000명의 도시 ‘페트라’가 엄청난 인원과 시간이 소요되는 ‘페트라’를 어떻게 건설할 수 있었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왜냐하면 ‘나바테아인’들이 건축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페트라를 짓기 위해 이집트가 도움을 줬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기원전 2800여 년 전부터 피라미드를 건축한 이집트의 인력과 기술이 동원됐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페트라’의 건물들에 붙은 이름들 때문이다. 신전 ‘알 카즈네’는 보물창고라는 뜻의 아랍어인데, 이집트의 파라오가 이곳에 보물을 숨겨뒀다는 이야기에 근원한다. 또 다른 신전인 ‘카스르알빈트피라움’은 ‘파라오 딸의 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이곳이 오래전부터 문화적으로 이집트의 영향을 받았다고 추정되고 있다. 실제로 ‘페트라’의 한 가운데 있는 ‘바로의 궁전’은 이집트 건축 양식인 탑문을 갖고 있으며 이 건물은 이집트의 파라오가 시집간 딸을 위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페트라’가 정확히 어떤 과정으로 지어졌는지는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출처 - MBC신비한TV서프라이즈)

또 하나의 미스터리는 30,000명이 마실 식수를 어떻게 공급했냐는 것이었는데, 왜냐하면 ‘페트라’는 1년동에 강수량이 10~15cm밖에 안 되었을 정도로 물이 부족한 지구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도시 곳곳에 연결된 '수로'였다. ‘나바테아인들’은 바위를 오목하게 깎아서 빗물을 저하는 곳간으로 만들었고 이러한 물 창고가 먼 곳의 샘에서 물을 끌어들였는데, 대략 반경 25km 이내의 모든 샘물들이 이 수로를 통해 ‘페트라’의 수원으로 사용되었 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모인 물들은 각 가정의 부엌들로 이어지는 것이다. 완벽한 물 이동 통로와 암벽으로 둘러싸인 암벽 도시 ‘페트라’가 짧은 시간 내에 엄청난 속도의 발전을 할 수 있었던 비밀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2세기에 접어들면서 '페트라'는 역사적 전환점에 맞딱드인다. 그것은 바로 당시 거대제국을 건설 중이던 로마에게 ‘페트라’의 존재가 거슬린 것이다. 험난한 암벽으로 막힌 천연의 요새 ‘페트라’는 난공불락이었기에 로마는 새로운 대책을고심하게 된다. 그러다 생각해낸 것이 바로 ‘페트라’의 수로를 막아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로  '페트라'는 고된 식수난을 겪다가, 결국 서기 106년 로마의 ‘트라야누스(Trajanus)’황제에게 점령당하고 만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서기 363년과 551년 두 번의 대 지진이 발생한다. 이 지진으로 ‘페트라’의 대부분을 망가져 버렸다. 뿐만아니라 전염병까지 돌자 거주민들은 ‘페트라’를 떠나기 시작한다. 이렇게 ‘페트라’는 서서히 붕괴되고 사막 한가운데에 버려진 도시가 됐다. (‘페트라’의 마지막 기록은 6세기경의 파피루스 뭉치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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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불가사의한 지하도시, '데린쿠유'&'마트마타'

1960년 터키 ‘카파도키아’, 도망치는 닭을 쫓던 농부가 쫓던 닭이 작은 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한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구멍 속으로 들어간 닭이 구멍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농부는 닭이 들어간 구멍 속으로 직접 들어간다. 농부는 구멍 안으로 조금씩 밑으로 내려가던 중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매우 놀라고 만다. 왜냐하면 상상조차 어려운 놀라운 광경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은 또 다른 곳으로 통하는 계단과 이어져 있었으며, 계단을 따라 내려간 곳에는 가축을 키운 흔적이 남아있었다. 뿐만 아니라 동물 사육장에는 또 다른 어딘가로 가는 길이 있었고 그 통로의 끝의 장소에서는 불에 그슬린 흔적이 남아있는 부엌이었다. 부엌에도 역시나 다른 공간으로 가는 통로가 있었고, 그곳에는 학교, 침실, 식량창고, 교회 뿐만 아니라 감옥처럼 보이는 장소까지 발견됐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즉, 농부가 발견한 것은 거대한 ‘지하도시’였던 것 이다. 이렇게 지하세계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자 학자들은 본격적으로 이 ‘지하도시’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학자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지하도시’는 마치 개미집처럼 상하좌우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정확하지는 않으나 밑으로 20층 가까이 되는 것으로 추정했을 뿐만 아니라 이 ‘지하도시’는 무려 30,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였는데, 후에 학자들은 이 지하도시의 이름을 터키어로 ‘깊은 우물(Derinkuyu)’이라는 뜻의 ‘데린쿠유’라고 명명하고 이 ‘지하도시’에서의 생활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학자들은 터키공화국이 설립되던 1923년까지 ‘데린쿠유’에서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했는데, 학자들은 햇빛도 전혀 없고 공기 또한 전혀 들어오지 않는 ‘지하도시’에서의 생활을 가능하게 한 것은 작은 환기구 구멍 때문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이 ‘지하도시’에서 발견된 환기구 구멍은 총 54개로 수직으로 파진 80m의 중심 환기구로 공기가 들어오며, 중심 환기구와 연결되어 있는 보조 환기구를 통해서 각각의 방으로 공기가 들어가게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낮은 층에서도 맑은 공기가 유입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즉, 환기를 위해 ‘지하도시’를 수직구조로 만들어 공기가 잘 통하도록 설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축을 중심으로 양 옆으로 생활공간을 조성하여 생활한 것이었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학자들은 이 ‘지하도시’는 기독교가 박해 받던 로마시대 기독교인들이 이곳으로 숨어들어오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했다. 처음에는 도망쳐온 몇 명의 사람들이 지하로 들어가 생활하다가 점차 그 숫자가 많아지자 더 크고 넓은 공간을 가지기 위해 옆으로 지하로 계속 파들어 갔고 현재 지금의 복잡한 미로 형태가 됐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둥근 바퀴모양의 돌문을 통로마다 설치했을 뿐만 아니라 통로를 미로처럼 여러 갈래 뚫어 침입자가 길을 잃도록 만들었다. 덕분에 13세기 칭기즈칸이 이곳을 침략했을 때에도 ‘지하도시’는 입구를 봉쇄함으로서 침략을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학자들은 ‘데린쿠유’를 피라미드에 버금가는 난공사라고 표현하며 아무런 장비도 없이 평균 7~80m의 지하에 수 십 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는 ‘데린쿠유’에 지하도시를 건설하려면 적어도 300여 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외부에서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고, 내부에 들어와도 미로 속에 갇혀 버릴 것 같은 지하도시 ‘데린쿠유’.

그리고 ‘데린쿠유’가 세상에 알려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하나의 미스테리한 ‘지하세계’가 모습을 나타낸다. 1969년, 튀니지에 무려 22일 동안이나 폭우가 쏟아졌었는데, 한 남자가 자신의 마을이 물에 잠겼다며 구조요청을 한다. 이로 인해 세상 밖으로 모습을 내비치게 된 ‘지하세계’, 그것은 세계 최대의 지하마을 ‘마트마타’였다. 모습을 드러낸 ‘마트마타(Matmata)’는 거대한 웅덩이의 벽에 구멍이 뚫린 것과 같은 특이한 형태의 마을이었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마을이 생긴 것이 무려 천 년 전이라는 사실이었다. 학자들은 약 7000년 전, 이 곳 사람들의 선조들이 이곳에 이주를 해 왔으며, 뜨거운 태양을 피하기 위해 지하에 집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지하마을’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우선 땅을 거대한 우물처럼 깊게 파기 시작했고, 깊이 판 웅덩이의 벽에 인공 동굴과 같은 구멍을 파서 각각의 방을 만든 후, 그 방들을 연결하는 복도를 파서 하나의 집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렇게 집을 완성한 ‘마트마타’에 사람들은 매년 봄 마을 북쪽으로 가서 일 년치에 식량을 구해 온 뒤, 창고에 식량을 보관해 생활을 유지해온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지하에 만들어진 마을에 비가 조금이라 많이 내리면 잠길 위험이 컸기 때문에 그들은 집의 형태를 1층과 2층으로 나눠서 만들었고 1층이 잠기더라도 자신들의 식량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2층에 식량창고를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런데, 이 신비로운 마을에 유난히 관심을 가졌던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스타워즈에 감독 ‘조지 루카스(George Walton Lucas Jr.)'였다. 그는 우연히 알게 된 ‘마트마타’에 대단한 관심을 보였고 자신의 영화를 이곳에서 촬영하기로 결심했다. 그 결과, 아이러니하게도 몇 천년 전에 지어진 지하마을이 먼 미래를 배경으로 그려진 영화 속 집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 후, ‘마트마타’는 더욱 유명해져 관광지로 발전했고 지하마을에 일부는 호텔로 운영되어 직접 체험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 그 영화는 1977~2005년까지 시리즈물로 제작되며 미국 SF영화의 시초가 된 <스타워즈>였다. 그리고 그 중 가장 먼저 만들어진 ‘스타워즈 에피소드4 - 새로운 희망’에서 주인공 ‘루크’가 살았던 집의 배경이 된 곳이 ‘마트마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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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러시아 미스테리홀은 씽크홀? 핑고?

2014년 7월, 러시아의 한 언론을 통해 공개된 영상이 세상을 발칵 뒤집었다. 이 영상은 시베리아 하늘을 날고 있던 한 헬리콥터 조종사가 촬영한 것인데, 이 영상에는 시베리아 초원 한 가운데 정체불명의 거대한 구멍이 찍혀 있었다. 이 정체불명의 구멍은 러시아 시베리아 북쪽 끝에 위치한 ‘야말’지역으로(‘야말’은 토착민 언어로 ‘지구의 끝’이라고 한다.) 이름에 걸맞게 평균 기온이 영하 50도에 달하고 한겨울에는 햇빛을 거의 볼 수 없는 극한의 환경을 가진 곳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이곳에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이 거대한 구멍은 지름이 100m에 달했는데, 이는 지금까지 러시아에서 발견된 ‘싱크홀(sinkhole)’ 중에서 가장 컸으며, 거대한 깔때기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거대한 구멍 주변의 토양은 말라있었다. 이 영상이 공개된 후 이 구멍은 시베리아의 ‘미스테리 홀’이라 불리며 엄청난 주목을 받게 되는데, 특히 이 ‘미스테리 홀’이 주목받은 이유는 이 거대한 ‘미스테리 홀’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싱크홀(sinkhole)’은 아무런 예고 없이 발생해 주변에 있는 것들을 모두 집어삼키기 때문에 ‘싱크홀(sinkhole)’은 발생 시 어마어마한 굉음을 동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야말’지역의 ‘미스테리 홀’은 생성될 때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자, 일부사람들은 ‘미스터리 홀’이 누군가에 의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종종 이슈가 되기를 바라고 의도적으로 만든 ‘싱크홀(sinkhole)’‘미스터리 서클’들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곤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하루아침에 인공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하기에는 구멍이 너무 크다며 반박했다. 그러자 또 다른 일각에서는 ‘미스테리 홀’이 단순한 운석 충돌로 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일반적으로 운석은 지면과 충돌 시 거대한 충격음을 발생하지만, 지표면에 도달할 때까지 고속/고온을 유지하고 있는 일부 운석들은 소리 없이 순식간에 거대한 구멍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늘에서 떨어지는 운석을 목격한 사람이 아무도 없고 운석의 충돌이라면 구멍 주변에 검게 그을린 흔적이 남아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운석으로 인해 생긴 것이 아니라는 반박 주장이 제기 된다. 그러던 중 새로운 주장이 제기된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 대학에 극지방 과학 연구원 ‘크리스 포그윌’박사가 ‘미스테리 홀’‘핑고(pingo)’의 잔해라고 주장한다. ‘핑고(pingo)’는 얼음이 흙으로 덮여있는 장소를 뜻하는데, 북극 지역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핑고(pingo)’가 매우 커진 상태에서 기후 변화로 인해 기온이 높아져 내부에 얼음이 녹으면 거대한 구멍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러시아 당국은 북극연구센터와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소속 연구관들을 야말 지역으로 파견한다. 그리고 얼마 후, 결과를 발표하는데, ‘핑고(pingo)’는 얼음이 녹으면서 생기는 구멍이기 때문에 내부에 흙이 무너진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야말의 ‘미스테리 홀’은 아래로 무너져 내린 듯 한 형태가 아니라 주변에 흙이 쌓여있는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는 안에서부터 바깥으로 무언가가 분출되어 생긴 것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조사단은 생성원인을 지하가스 폭발이라고 발표했다. 실제로 이 ‘미스테리 홀’ 부근은 러시아에서 천연가스 매장량이 가장 많은 곳으로 ‘미스테리 홀’을 최초로 발견한 헬기 역시 인근에 위치한 가스회사의 소속이었다. 이에 러시아 당국은 온도 변화로 인해 가스층이 자연적으로 폭발하면서 생긴 것이라고 최종 결론짓는다. 하지만, 곧 뜻밖의 사실이 밝혀진다. 극지방 연구센터의 연구자인 ‘플레하노프’가 단독으로 ‘미스테리 홀’의 조사를 진행하는데, 놀랍게도 러시아 당국의 발표와는 달리 ‘미스테리 홀’에서 가스가 전혀 검출되지 않은 것이다. 결국, 구멍에 생성원인은 또 다시 미궁에 빠지고 만다. 그런데, 야말 지역에서 ‘미스테리 홀’이 발견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또 다른 구멍들이 연이어 발견됐다. 새로 발견된 구멍들은 각각 시베리아 ‘타즈’지역과 ‘타이미르’지역에 위치해 있었는데, 각각 지름이 15m, 4m로 야말 지역의 구멍보다 작은 크기였지만 모양은 깔때기 모양으로 유사했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이렇듯 원인을 모른 채 늘어나는 ‘미스테리 홀’에 주민들은 언젠가 자신들의 발 아래 구멍이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혔고, 의혹은 점점 커져가는 가운데, 급기야 UFO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시베리아는 유독 UFO가 자주 출몰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2011년 3월 시베리아의 ‘이르쿠츠크 주’에서는 UFO가 추락했다는 주민들의 제보가 빗발쳤고 이에 경찰과 소방관들이 긴급 출동하고 재난당국이 헬기를 동원해 수색작업을 벌이는 일이 있었다. 2012년 3월에는 시베리아의 한 작은 마을에 길이 180cm, 무게 200kg의 정체불명의 금속 물체가 추락했는데, 거대한 돔 형태 때문에 UFO의 잔해로 추정되기도 했다. 이런 사례로 봤을 때 ‘미스테리 홀’ 역시 UFO가 불시착한 흔적이거나, 고대 외계인들이 만들어 놓았던 지하기지가 빠져나간 흔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 ‘미스테리 홀’을 보면 뭔가가 빠져나간 듯 단면이 90도로 깎여 있었다. 이처럼 무수한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최근에도 ‘미스테리 홀’은 계속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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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터가이스트, 스코틀랜드 커버넌터스 무덤의 보이지 않는 자의 공격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시에는 17세기에 사용되었던 커버넌터스 감옥이 있었고 그 감옥 안에는 그 안에서 죽은 사람들의 무덤이 있었다. 이 무덤들은 모두 쇠사슬과 자물쇠로 잠겨있었으며 햇빛이 비치는 날에도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를 내는 스산한 곳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커버넌터스 감옥' 무덤에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무덤 근처를 지나가다 갑자기 누군가에게 목을 졸렸다는 한 여성, 하지만 경찰들은 이상한 여자라 생각하고 신경쓰지 않고 넘겨버린다. 그런데 그 후에도 무덤 주변을 지나가다 누군가에게 갑자기 공격을 받았다는 피해자들이 속출한다. 공교롭게도 그들은 모두 자신을 공격한 것이 무엇인지는 못 보았다고 증언했으나 그들의 몸에는 멍자국, 물린 자국 등이 선명히 남아있었다. 뿐만아니라 매일 무덤 주변에 원인 모를 동물들의 사체가 쌓여갔다. 이에 사람들은 무덤 가는 길을 '죽음의 거리(The street of Death)'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이렇듯 알 수 없는 일이 계속해서 발생하자, 결국 에든버러 시에서는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하게된다. 그리고 조사 중 무덤 중에서 제일 끝에 위치한 '블랙 머슬리움 무덤'의 문이 열려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이상한 일들이 바로 그 무덤 문이 열리면서 깨어난 유령의 소행이라고 생각한다. 즉, 실체가 없는 유령이 물건을 던지거나 사람을 공격하는 초자연적 현상인 '폴터가이스트'라는 것이었다. 특히, 사람들이 이같이 생각하게 된 이유는 이 무덤의 주인이 악명 높았던 '조지 맥켄지'였기 때문이다. 1691년 이 무덤에 묻힌 '조지 맥켄지'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법무장관까지 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커버넌터(Covenanters)', 즉 장로주의를 주장한 신도들을 잔인하게 탄압해 '피의 맥켄지'라고 불리기까지 했는데, '조지 맥켄지'는 사람들이 가득한 감옥에 불을 지르고 굶겨죽이는 등 매우 잔인한 행동을 일삼았다. 이 때문에 수백명이 죽임을 당했으며, 이로 인해 그가 법무장관으로 있었던 시간을 '살육의 시대'라 불렸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이에 사람들은 무덤 문이 열리면서 악명 높은 '조지 맥켄지'유령이 잠에서 깨어나 괴롭힌다 생각했다. 결국 사람들은 200년 퇴마사 '콜린 그랜트'에게 공격을 멈추게 해줄것을 부탁한다. 이에 '콜린 그랜트'는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악령을 물리치는 의식인 퇴마의식을 실행한다. 그리고 얼마 후, 사람들은 무덤 옆 교회에서 어두운 형체가 지나가는 것을 사람들이 목격하게 된다. 이에 사람들은 '조지 맥켄지'유령이 떠났다고 생각하며 안심한다. 실제로 그 이후, 보이지 않는 공격(미스터리한 공격)은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퇴마의식을 거행한 '콜린 그랜트'가 심장발작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미스터리한 공격은 다시 시작된다. 이에 겁에질린 사람들은 무덤의 문을 영원히 잠가 다시 열지 못하도록 할 것을 요구한다. 이에 결국 에든버러 시는 커버넌터스 감옥을 출음금지 구역으로 선언한다. 그런데, 무덤의 문이 다시 열리게 된다. 무덤의 문을 다시 연 사람은 사업가 '잔 앤드류 헨더슨'이였다. 그는 '커버넌터스 감옥'무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용해 돈벌이를 할 생각을 하고 에든버러 시에 정식 허가를 받는다. 그리고 원하는 사람들의 신청을 받아 '조지 맥켄지 무덤'을 관광시켜주는 '죽음의 도시투어'를 시작한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런데 그 후 '폴터가이스트 현상'들이 다시 나타났고 심지어 그 곳을 투어하다가 정신을 잃고 기절하는 사람까지 발생하게된다. 실제로 무덤의 문이 다시 열린 1998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500명 이상이 '보이지 않는 미스터리한 공격'을 받았고 170명이 기절했다는 기록까지 남아있다고 한다. 뿐만아니라, 유령을 믿지 않았던 사업가 '잔 앤드류 헨더슨'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업 시작 후 갑작스러운 화재로 그의 집이 불탔다. 그는 이러한 일과 직접 사람들이 공격당하고 기절하는 모습을 보고 먼 곳으로 이사를 갔다. 그리고 '맥켄지 무덤'에서 겪었던 일들을 책으로 출판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일들은 헨더슨 책 이외에도 직접 체험한 사람들의 후기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다. 이후, '조지 맥켄지 무덤'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무덤으로 불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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