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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이야기 상식]

[서프라이즈]라오콘 군상, 라오콘의 비밀과 미켈란젤로

서기 79년, 로마제국에 한 학자가 죽기 직전 "전무후무한 걸작품이 로마의 에스퀼리노 언덕에서 발견될 것이다."라는 예언을 남긴다. 이후, 1506년 한 농부가 에스퀼리노 언덕에서 뭔가 발견하는데, 그것은 고대 그리스에 조각품인 ‘라오콘 군상(Laocoon and His Sons)’이었다. 현재 ‘라오콘 군상’은 ‘바티칸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데, 높이 2.4m의 대리석 조각상이다. 이 조각상은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트로이의 제사장 라오콘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트로이 전쟁 때 트로이 성으로 진입하려던 그리스 군의 목마를 막아 신의 노여움을 산 라오콘이 두 아들과 함께 뱀에게 몸이 감겨 죽는 형벌을 받는 다는 신화의 내용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헬레니즘을 대표하는 유물로 손꼽힌다.

(출처 - MBC신비한TV서프라이즈)

(출처 - MBC신비한TV서프라이즈)

1506년 이 ‘라오콘 군상’을 처음 땅속에서 발견한 농부는 한 조각가를 찾아가는데, 그 조각가는 뜻밖에도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03.06~1564.02.18)’였다. '미켈란젤로'는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으로 ‘피에타 조각상(Pieta)’, ‘천지창조(Genesis)’, ‘최후의 심판(Last Judgement)’ 등을 제작한 조각가이자 화가이다. 그는 농부의 이야기를 듣고 그곳을 찾아가는데 ‘미켈란젤로’는 깜짝 놀란다. 그곳은 1세기경 로마제국의 박물학자, ‘대 플리니우스(Gaius Plinius Secundus Major, 23~79.08.24)’가 전무후무한 걸작품이 나올 것이라고 예언한 ‘에스퀼리노 언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바로 그곳에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모습 그대로의 ‘라오콘 조각상’이 묻혀있었던 것이다. 이 ‘라오콘 군상’은 여러 곳에 기록된 자료에 따르면 기원전 1세기 경 그리스 로도스 섬의 조각가 ‘아게산드로스’와 ‘아테노도로스’ 그리고 ‘폴리도로스(Polydoros)’가 공동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어지는데, 결국 1400여 년 전 ‘대 플리니우스’의 예언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뒤 ‘라오콘 군상’은 헬레니즘 문화를 대표하는 걸작품으로 남게 된다. 그런데 2005년, 콜롬비아 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가르치는 ‘린 캐터슨’에 의해 놀라운 주장이 제기된다. ‘라오콘 군상’이 기원전 1세기 경 제작된 것이 아닌 위조품이라는 것이다.

(출처 - MBC신비한TV서프라이즈)

사실 ‘라오콘 군상’은 발견 당시부터 진위 여부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어 왔었다. 그 이유는 오랜 시간 땅에 묻혀있었음에도 부식도 되지 않은 채 너무 말끔하다는 것과 ‘대 플리니우스’의 예언과 한 치의 다름도 없이 동일한 장소에서 발견되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에 ‘린 캐터슨’교수는 오랫동안 ‘라오콘 군상’에 대한 연구를 거듭했고 실제로 그리스 시대의 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냈다고 주장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위조품을 제작한 것이 ‘미켈란젤로’라는 것이다. 그녀는 ‘미켈란젤로’가 직접 ‘라오콘 군상’을 제작해 ‘에스퀼리노 언덕’에 묻었고 농부와 짠 뒤 마치 오래전 제작된 작품을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자작극을 벌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전 세계 미술계가 뒤집힐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는 첫 번째 근거로, ‘미켈란젤로’의 집에서 발견된 스케치를 들었다. 실제로 ‘미켈란젤로’가 그린 남성의 상반신 뒷모습 스케치는 ‘라오콘 군상’이 발견되기 4년 전 그려진 것인데 그 모습이 ‘라오콘 군상’과 흡사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미켈란젤로’가 ‘라오콘 군상’을 제작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근거는 ‘미켈란젤로’의 거래 기록이었다. 1498년부터 1501년까지 ‘미켈란젤로’가 다량의 대리석을 사들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 그때 구입한 것이 바로 ‘라오콘 군상’과 같은 종류의 대리석이라는 것이다.

(출처 - MBC신비한TV서프라이즈)

또한, 발견당시 ‘라오콘 군상’은 7조각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이것이 ‘미켈란젤로’가 커다란 조각상을 ‘에스퀠리노 언덕’으로 옮기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통에 조각상은 큰 대리석을 깍아 하나의 완성품을 만드는데 2.4m의 조각상을 만들어 비밀리에 ‘에스퀼리노 언덕’으로 옮겨야 했던 ‘미켈란젤로’는 7개의 조각으로 나눠 각자의 부분을 조각한 뒤 ‘에스퀼리노 언덕’으로 옮겨 땅속에 묻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1496년 무명 조각가였던 ‘미켈란젤로’는 ‘잠자는 큐피드’라는 작품을 직접 제작한 뒤 친구와 함께 유적에서 발굴한 것처럼 속여 로마의 고위 성직자인 추기경에 큰 돈을 받고 팔아넘긴 이력이 있었다. 훗날, ‘미켈란젤로’의 이런 사기행각을 드러났지만 오히려 이로 인해 조각가로서의 능력을 인정받고 로마에 입성해 명성을 떨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피렌체 공화국(Repubblica Fiorentina)'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던 '메디치 가문(Medici Family)'의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유물을 소유하고 싶어 했고 이를 알고 있었던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03.06~1564.02.18)’는 작품 활동을 유지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라오콘을 직접 조각해 유물로 꾸몄다는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린 캐터슨’에 이러한 주장을 신뢰할 수 없다며 반박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라오콘 군상(Laocoon and His Sons)’이 다른 그리스 로마 시대의 조각상과 유사점이 없다는 것만은 사실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