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소중한 유산, 사적1호~10호 알아보기!!

오늘은 우리나라의 소중한 유산 중에서 사적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사적이란 기념물 중에서 유적·제사·신앙·정치·국방·산업·교통·토목·교육·사회사업·분묘·비 등으로서 중요한 것을 뜻하는데요. 현재 사적은 제1호부터 제533호까지 있는데 그 중 사적1호~10호까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1. 사적1호 - 경주 포석정지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454-3번지

 지정일(등록일) - 1963년 1월 21일

 시대 - 통일신라

(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유적 정보 - 신라시대 연회장소로서 신라 제49대 헌강왕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5.234㎡의 면적으로 원래는 정자가 있었으나 현재는 정자는 없고 물길만 남아있다. 물길은 무려 22m이며 높낮이의 차이는 5.9cm이다. 고대 중국의 명필이었던 왕희지가 벚들과 유상곡수연을 하였는데, 이를 본따서 만들어졌다고 한다.(유상곡수연 : 물 위에 술잔을 띄워 술잔이 자기 앞에 오는 동안 시를 읊어야 하는데 시를 짓지 못하면 벌로 술 3잔을 마셔야했던 잔치)


2. 사적2호 - 김해 봉황동 유적

 소재지 - 경남 김해시 봉황동 253번지

 지정일(등록일) - 1963년 1월 21일

 시대 - 청동시대

(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유적 정보 -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1~4세기경의 생활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유적으로, 패총은 조개껍질과 생활 쓰레기가 함께 버려져 쌓여 있는 곳인데, '조개더미'라고도 한다. 봉황대 언덕 인근에 시기가 서로 다른 회현리 조개더미(조개더미에서 토기, 석기, 가락바퀴, 중국 화폐인 화천, 탄화미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와 다양한 무덤유적(고인돌, 옹관묘)들이 있다. 


3. 사적3호 - 수원 화성

 소재지 - 경기 수원시 팔달구 장안동 1-2번지

 지정일(등록일) - 1963년 01월 21일

 시대 - 조선시대

(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유적 정보 - 서쪽으로는 팔달산을 동쪽으로는 낮은 구릉의 평평한 평지를 따라 쌓아진 평산성이다. 1794년(정조 18년)에 짓기 시작해 1796년(정조 20년)에 완성되었다. 수원 화성의 둘레는 약 5.7km, 높이는 4~6m에 달한다. 다산 정약용이 설계하였으며 거중기 등을 이용해 매우 과학적이고 실용적으로 지어졌다. 그리고 수원 화성 안에는 화성행궁, 내포사, 사직단, 중포사가 있었었다.(지금은 화성행궁과 내포사만 복원되어있다.) 1796년부터 현재에 오면서 성곽과 시설물들이 파손되었는데 1975년부터 보수와 복원을 하여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다. 

※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4. 사적4호 - 부여 가림성

 소재지 - 충남 부여군 임천면 성흥로97번길 167 (군사리)

 지정일(등록일) - 1963년 01월 21일

 시대 - 백제

(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유적 정보 - 백제의 수도였었던 웅진성과 사비성을 보호하기 위해 금강 하류 부근에 지은 석성으로 501년(백제 동성왕 23년)에 위사좌평이었던 백가가 쌓았다고 전해진다. 가림성은 돌과 흙으로 성벽을 쌓았으며, 형태는 테뫼식(산꼭대기를 빙둘러 쌓은 형태)이다. 성 내부에는 군창터, 남서북문터,우물터 3곳 그리고 보루(방어시설)가 남아있다. 백제시대에 만들어진 성곽 중 유일하게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성이다.


5. 사적5호 - 부여 부소산성

 소재지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31 (쌍북리)

 지정일(등록일) - 1963년 01월 21일

 시대 - 삼국시대

(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유적 정보 - 사비시대의 도성으로 성이 자리한 부소산의 이름을 따서 부소산성이라고 부른다.(삼국사기에서는 사비성, 백제본기에서는 소부리성이라 기록되어 있다.) 수도를 웅진에서 사비로 옮기던 538년(백제 성왕 16년)에 왕궁을 지키기 위하여 이중의 성벽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500년(동성왕 22년)경에 테뫼식 산성이 이미 있었던 것을 605년(무왕 6년)경에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한 것으로 짐작되어 진다. 그리하여 테뫼식과 포곡식이 혼합된 형태의 산성이다. 성 내부에는 군창터, 영일루, 사비루, 낙화암, 고란사 등이 남아있다. 


6. 사적6호 - 경주 황룡사지

 소재지 - 경북 경주시 구황동 320-1번지

 지정일(등록일) - 1963년 01월 21일

 시대 - 신라

(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유적 정보 - 553년(신라 진흥왕 14년) 경주 월성 동편에 궁궐을 짓던 중 그 곳에서 황룡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찰(절)로 고쳐 지어지기 시작해 17년 만에 완공되었다. 이후 5m가 넘는 삼존불상을 만들고 이를 모시고자 584년(신라 진평왕 6년)에 금당을 지었다. 그리고 643년(신라 선덕여왕 12년)에 자장의 권유로 외적의 공격을 막기 위한 바람으로 9층 목탑을 건축하게 되는데, 백제의 장인 아비지에 의해 645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무려 93년간에 걸쳐 조성된 큰 절이었다.) 하지만 1238년(고려 고종 25년) 몽고의 침입으로 다 타버려 현재는 그 흔적만 남아있다. 


7. 사적7호 - 경주 망덕사지

 소재지 - 경북 경주시 배반동 956번지

 지정일(등록일) - 1963년 01월 21일

 시대 - 통일신라

(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유적 정보 - 신라 문무왕이나 문왕 때 지어진 것으로 전해지는 경주 낭산 기슭에 위치한 절터로 사천왕사와 마주하고 있다. 679년(신라 문무왕 19년) 당나라가 침입을 하자 부처의 힘으로 이를 이겨내고자 사천왕사를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실을 당나라가 알고 사신을 보내오자 사천왕사 대신 이 절을 보여 주며 당나라의 덕을 우러른다는 뜻에서 망덕사라 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동서 목탑터, 금당터, 강당터, 중문터, 회랑터가 남아있다. 쌍탑 가람배치 형태이다.


8. 사적8호 - 경주 사천왕사지

 소재지 - 경북 경주시 배반동 935-2번지

 지정일(등록일) - 1963년 01월 21일

 시대 - 통일신라

(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유적 정보 - 674년(신라 문무왕 14년) 당나라가 신라를 공격하려 하자 명랑법사에게 이를 막을 계책을 구하는데, 신유림에 사천왕사라는 사찰을 지어 부처의 힘으로 막아내자고 하였다. 이에 사천왕사는 679년에 완공되었다. 절터에는 머리부분이 없어진 귀부 2기와 비신 그리고 당간지주 1기가 현재 남아있다. 사천왕사는 전형적인 쌍탑식 가람 배치 형태를 하고 있으며 통일신라 시대에 접어들고 가장 먼저 지은 절이었다. 


9. 사적9호 - 없음


10. 사적10호 - 서울 한양도성

 소재지 - 서울 종로구 누상동 산1-3번지 외

 지정일(등록일) - 1963년 01월 21일

 시대 - 조선시대

(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유적 정보 - 한양을 둘러싼 도성으로 1395년(조선 태조 4년) 도성축조도감을 설치하고 수도를 방어하기 위해 쌓았다. 흙과 돌로 지은 성곽에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을 두었다. 이후 1422년(조선 세종 4년) 흙으로 쌓은 곳을 전부 돌로 바꾸고 공격과 방어시설을 늘렸다. 그리고 1704년(조선 숙종 30년)정사각형의 돌들을 다듬어서 벽면이 수직이 되도록 쌓았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시면 더욱 다양한 자료들과 정확한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으니 한 번 방문하셔서 둘러보세요~~우리의 문화재는 조금만 여유를 가지면 찾아 볼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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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소중한 유산, 보물 1호~10호 알아보기!!

[흥미로운 이야기 상식] 2016. 1. 24. 15:56

국가 지정문화재에는 '국보', '보물', '사적', '명승', '천연기념물', '중요무형문화재', '중요민속문화재'가 있는데요. 오늘은 그중에서 '보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국가지정문화재 중 하나인 '보물'은 건조물, 전적, 서적, 고문서, 회화, 조각, 공예품, 고고자료, 무구 등의 유형문화재 중에서 중요한 문화재를 국가가 지정해놓은 것을 말합니다.  그럼 우리나라 보물 1호부터 10호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 보물 제1호 - 흥인지문

 - 소재지 : 서울 종로구 종로 288 (종로6가) / 지정연도 : 1963.01.21

 - 특징 : 도성의 여덟 개의 성문 중에서 유일하게 옹성을 갖추고 있음,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는 문화재임.

(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도성의 8개 성문 중에서 동쪽에 위치하고 있어 동대문이라고도 부른다. 1396년(조선 태조5년)에 건립되었고, 이후 1453년(조선 단종 1년)에 다시 고쳐 지었으며, 이후 1869년(조선 고종6년)에 다시 새로 지어져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다. 국보 1호 숭례문과 마찬가지고 지붕은 우진각 지붕이며, 다포양식이다. 그리고 성문 바깥쪽으로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반원 형태의 옹성을 쌓았다. (※옹성 : 성문을 공격하거나 부수는 적을 측면과 후방에서 공격할 수 있는 시설.)

2. 보물 제2호 - 옛 보신각 동종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 지정연도 : 1963.01.21

 - 특징 : 2번의 화재로 원형 손상 및 음향이 변함. 

(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1468년(조선 세조14년)에 만들어 정릉사에 있었다. 하지만 정릉사가 없어지며 원각사로 옮겨졌다가 임진왜란 후 종루에서 보관했다. 그리고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내에서 보관 중이다. '보신각종'이라는 명칭은 1895년(조선 고종32년) 종루에 '보신각'이라는 현판을 달면서 지금의 보신각종이라 불리게 되었다. 높이 3.18m, 지름 2.28m, 무게 19.66톤을 자랑하는 거대한 사이즈의 보신각종은 조선 초기의 전형적인 종 형태이다. 그리고 종의 연대를 알 수 있는 명문이 남아있어서 언제 주조 되었는지 그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그리고 '보신각종'은 음통이 없으나, 두 마리 용이 종의 고리 역할을 하고 있으며 몸통에는 3줄의 굵은 띠와 종 입구 위에는 2줄의 띠를 가지고 있다.


3. 보물 제3호 - 원각사지 대원각사비

 - 소재지 : 서울 종로구 종로2가 38-3번지 탑골공원 / 지정연도 : 1963.01.21

 - 특징 : 앞면의 비문은 '김수온'과 '성임', 뒷면의 추기는 '서거정'과 '정난종'이 짓고 썻다. 

(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원각사지 대원각사비는 원각사의 창건 내력을 적은 '비'이다. 그 내력을 보면 1471년(조선 성종2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탑골공원 위치에 있던 원가사는 조선시대 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당시 조계종 본절로 세웠었다. 그러다 조계종이 없어지자 관아로 이용되었고, 이후 세조가 간경도감에서 [원각경]을 번역하고 화암사 사리탑에서 사리를 나누어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다시 이곳에 원각사를 짓고 10층 사리탑을 세웠다. 비는 비몸돌 위를 두 마리 용이 감싸듯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비 아랫돌인 돌거북은 머리는 목을 표현하지 않고 앞으로 나와있으며, 등무늬는 사다리꼴 평행세선을 새겼으며, 등 중앙은 연잎조각, 꼬리&다리에는 물고기의 비늘 모양을 조각해 놓았다. 그리고 비몸돌 위로는 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보주)을 들고 있는 두 마리의 용이 조각되어있다.(조각 아래 가운데 부분에는 '대원각사지비'라는 비의 이름이 '강희맹'의 글씨로 새겨져 있다.)


4. 보물 제4호 - 중초사지 당간지주

 - 소재지 : 경기 안양시 만안구 예술공원로103번길 4 / 지정연도 : 1963.01.21

 - 특징 : 서쪽 지주 바깥쪽에 명문은 모두 6행 123자 해서체로 새겨짐.(건립에 대한 내용이 작성됨)

(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사찰에 행사가 있을 시 사찰 입구에 '당'이라는 깃발을 걸어두는데, 이 깃발을 다는 장대를 '당간'이라 하고,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하여 주는 2 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현재 지주의 기단은 남아있지 않는다. 양쪽 지주에 장식적인 꾸밈이 없고 윗부분을 둥글게 다듬은 흔적으로 보아 오래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해 간구멍을 각 지주의 상중하 3 곳에 뚫었는데, 이중 동쪽 지주의 윗부분이 깨져 있다.(※ 신라 흥덕왕 1년(826) 8월 6일에 돌을 골라서 827년 2월 30일에 건립이 끝났음을 알 수 있다.만든 해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국내에서 유일한 당간지주라고 한다.)


5. 보물 제5호 - 없음

 - 사유 : '원래는 중초사지 삼층석탑'이 보물5호 였으나 시도유형문화재로 변경되면서 현재 보물 제5호는 공석이다.


6. 보물 제6호 -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 소재지 :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 419-3번지 / 지정연도 : 1963.01.21

 - 특징 :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 전기로 넘어가는 탑비형식을 잘 보여줌.

(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원종대사'를 기리기 위해 고달사터에 세워진 '비'이다. 비신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으며, 이곳 절터에는 '귀부'와 '이수'만 있다. 받침돌은 거북모양으로 머리는 눈을 부릅뜨고 눈꼬리가 길게 치켜올라가 있는 험상궂은 형태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고, 다리의 발톱은 사실적으로 표현되어있다. 목은 길지 않다. 등부분에는 이중의 6각형 모양이 조각되어있고, 중앙부로 가면서 소용돌이치는 구름을 표현하여 '비좌(비를 끼워두는 곳)'를 돌출시켜 놓았다. 그리고 머릿돌은 직사각형의 형태에 가까우며, 입체감 있는 구름과 용무늬가 있다. 밑면은 연꽃을 두르고 1단의 층급을 두었다. (※ 탑비의 비문에 의하면 거북받침돌과 머릿돌이 975년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7. 보물 제7호 - 고달사지 원종대사탑

 - 소재지 :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 산46-1번지 / 지정연도 : 1963.01.21

 - 특징 : 탑신의 문모양과 사천왕입상의 조각

(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3단으로 이루어진 '원종대사탑'은 기단 위에 탑신과 지붕돌을 올려놓은 형태이다. 전체적으로는 팔각의 평면을 하고 있으나 기단부는 네모난 바닥돌에 연꽃잎을 돌려 새겨놓았다. 아래받침돌은 네모난 형태이며, 가운데 받침돌의 윗부분부터 팔각의 평면이 된다. 그리고 가운데 받침돌의 조각은 고려시대의 유물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할 수 있다. 거기에 각 부와의 조화도 매우 뛰어나다. 기단부가 약간 큰 듯 하지만 좋은 비례를 갖췄음을 보여준다.(※ '원종대사'는 869년(통일신라 경문왕9년)에 출생하였으며, 입적은 958년(고려시대 광종9년)에 한 고승이다.)


8. 보물 제8호 - 고달사지 석조대좌

 - 소재지 :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 420-5번지 / 지정연도 : 1963.01.21

 - 특징 : 뛰어난 조각의 사각형 대좌, 고려시대의 양식

(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고달사지 석조대좌'의 불상은 없으나, 대좌는 거의 완벽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받침돌은 상중하 각기 다른 돌을 다듬어 3단으로 이루어져있다. 윗받침돌과 아래받침돌에 대칭으로 새겨 놓은 연꽃잎이 있는데, '고달사지 석조대좌'가 사각형의 엄청난 규묘임에도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것은 바로 이 연꽃잎 때문이다.(석불대좌 상층부에 있었을 불상이 없어진 것이 아쉽다.) 정확한 제작연도는 알 수 없으나 대략 10세기 후반경에 만들어 진것으로 보는 경향이다.


9. 보물 제9호 - 서봉사지 현오국사탑비

 - 소재지 : 경기 용인시 수지구 신봉동 산110번지 / 지정연도 : 1963.01.21

 - 특징 : 고려후기 석비의 새로운 양식을 보여주는 보물.

(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1185년(고려 명종 15년)에 세워진 '서봉사지 현오국사탑비'는 '현오국사'의 행적을 후대에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탑비이다. 화강암의 비받침 위에 점판암의 비몸돌이 놓여있는 형태로 소박한 모습이다. 15세에 '불일사'에서 승력가 된 현오국사는 이후 부석사의 주지가 된다. 그리고 1178년(고려 명종 8년)에 입적하였다. 이에 왕이 매우 슬퍼하며 국사로 삼고 시호를 현오라 한 뒤 동림산 기슭에 화장하였다고 비문에 새겨있다.(서봉사의 건립시기에 대한 기록이 없으나 매우 큰 사찰로 추정된다고 한다.)


10. 보물 제10호 - 강화 장정리 오층석탑

 - 소재지 : 인천 강화군 하점면 장정리 산193번지 / 지정연도 : 1963.01.21

 - 특징 : 고려시대 석탑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보물.

(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1960년 수리하여 다시 세웠으나 파손된 곳이 많고 없어진 부분도 많다. '강화 장정리 오층석탑'은 1층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려놓은 형태이다. 기단 네 모서리에는 기둥모양이 새겨져 있고 탑신부는 1층 몸돌만 2장의 돌로, 그보다 윗 부분은 각 하나의 돌로 짜여있다. 전체적으로 무거운 느낌을 주지만, 신라석탑의 양식을 이어받은 고려시대 석탑의 전형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는 석탑으로 고려 후기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머리장식 부분, 5층의 지붕돌 등이 사라진 상태이다.)


위의 모든 내용은 문화재청 홈페이지(www.cha.go.kr)에 접속하셔서 찾아보시면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박물관 등에 방문하여 보시는 것도 우리의 문화 유산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만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귀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을 찾아가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기억에도 남는 추억이 될 수 있고 여행도 하시면서 1석2조가 아닐까 싶습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으로 더이상 훼손되거나 파손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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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자랑 '국보' 편 - 국보1호~국보10호

[흥미로운 이야기 상식] 2016. 1. 20. 23:59

'국보' - 문화재 중에서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기술적인 가치가 큰 문화재를 국가가 법적으로 지정한 유형문화재를 말한다.


1. 국보 1호 : 서울 숭례문(崇禮門)

 - 국보 지정일 : 1962년 12월 20일, 소재지 : 서울 중구 세종대로 40

 - 특징 : 우진각지붕(정면에서 보면 지붕이 사다리꼴 형태), 다포 양식(주두와 기둥 사이에 두공을 두어 외관이 복잡하고 번화)

우리나라 국보1호 '숭례문'은 남쪽에 있다고 하여 '남대문'이라고도 불리는데, 1396년(태조 5년)에 건축하기 시작하여 1398년(태조 7년)에 완성되었다. 이후 '숭례문'은 1448년(세종 30년)개축이 있었고 1479년(성종 10년)에는 보수 공사가 있었다. 그리고 2008년 2월 10일 방화로 큰 피해를 입고, 무려 5년 2개월에 걸친 복원작업 끝에 2013년 5월 4일 복원이 완료되었다.

※ 숭례문 방화 사건

 2008년 2월 10일 오후 8시 40분 경에 자신이 소유한 토지의 보상 문제에 불만을 품은 채종기 씨가 숭례문에 시너를 뿌린 후 방화를 한 사건이다. 이 화재로 당시 '숭례문'은 누각을 받치는 석축만 남기고 전소되었다.


2. 국보 2호 :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

 - 국보 지정일 : 1962년 12월 20일, 소재지 : 서울 종로구 종로 99

 - 특징 : 조선시대 석탑으로는 유일한 형태이며(조선시대 석탑의 재료는 일반적으로 화강암이었다.), 높이는 약 12m이다. 원각사지 십층석탑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탑을 받치는 기단은 3단으로 되어있으며, 위에서 내려다 보면 아(亞)자 모양이라고 한다. 그리고 각 기단의 측면에는 용, 사자, 연꽃무늬 등의 조각이 있다. (세부구조 및 전체적인 형태 등이 고려시대 경천사지 십층석탑과 흡사하다고 한다.)   

1465년(세조 11년)에 세워진 '원각사'는 임진왜란 이전까지 보신각종을 보관했던 당시 도성 내에서 가장 큰 사찰(현재 탑골공원자리)이었다. 그러나 1504년 연산군이 '원각사'를 '연방원'이라는 기생집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원각사는 없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원각사지 십층석탑의 맨 위의 3층이 무너져 방치되어 오다가 1947년에 원상태로 복구하여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3. 국보 3호 :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 국보 지정일 : 1962년 12월 20일 , 소재지 :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국립중앙박물관)

 - 특징 : 자연암반 위에 2단의 층을 만들고 그 위에 세워졌다. 비에 새겨진 글은 모두 12행으로 각 행마다 32자가 해서체로 새겨짐.

신라 제42대 왕이었던 진흥왕이 세운 순수척경비 가운데 하나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는 한강 유역을 영토로 삼은 뒤 이 지역을 왕이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비를 세운 정확한 시기는 비문에 새겨진 연호가 닳아 없어져서 정확히 알 수는 없다. 1816년(순조 16년)에 추사 김정희가 발견하고 판독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비문의 내용은 왕이 그 지역을 방문하는 목적 및 순수비를 세운 사유, 영토를 확장한 진흥왕을 찬양하는 내용 등이다.

※ 원래는 북한산 비봉에 있었으나 비를 보존하기 위하여 경복궁에 옮겨놓았었다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4. 국보 4호 : 여주 고달사지 승탑

 - 국보 지정일 : 1962년 12월 20일, 소재지 :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 411-1

 - 특징 : 바닥부분이 8각 형태, 사리를 모셔둔 탑몸돌에 새겨진 문짝 모양과 사천왕상 조각, 가운데돌에 새겨진 두 마리의 거북이, 용, 구름 조각, 가운데 돌의 위 그리고 아래돌에 새겨진 연꽃 무늬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높이 3.4m의 승탑이다. 고달사(764년 경덕왕 23년에 건립되었던 사찰)터에 위치하고 있다. 전형적인 8각 원단형 승탑이나 신라시대의 양식이 엿보이는 고려시대 초기 층탑이다.(아쉽게도 상륜부는 소실되었다고 한다.) 고달사지 승탑이 세워진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10세기 즈음으로 본다. 뿐만아니라 승탑의 주인도 정확하지않다.(일설에는 신라 말의 고승 '원감'의 묘탑이라는 주장도 있고 원종대사혜진탑이라는 주장도 있다.)


5. 국보 5호 :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

 - 국보 지정일 : 1962년 12월 20일, 소재지 :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로 379(법주사)

 - 특징 : 사자를 조각한 석조물 중 가장 오래되었으며 매우 독특한 형태이다.

법주사 대웅전과 팔상전 사이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이다(통일신라시대 석등을 대표하는 작품). 8각의 하대석 위에 가슴을 맞대고 두발로 선 사자 두 마리가 앞발과 주둥이로 상대석을 받치고 있다. 이는 당시 석등과는 다른 매우 독특한 형태이며 사자의 갈기 그리고 몸의 근육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은 8각 형태인데 불빛이 나오도록 이 중 4곳에 창을 내었다. 맨 위의 지붕돌은 꾸밈이 없어 소박하고 안정되어 보인다.

※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을 세운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720년(통일신라 성덕왕 19년)으로 추측하고 있다.


6. 국보 6호 :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 국보 지정일 : 1962년 12월 20일, 소재지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11

 - 특징 : 너비에 비해 너무 높아 안정감이 덜하다.

 - 관련 설화 : 통일신라 원성왕 때 국토의 중앙을 알아보기 위해 국토의 남북 각 끝지점에서 같은 보폭을 가진 두 사람을 동시에 출발시켰더니 항상 이곳에서 만났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곳에 탑을 세워 중앙을 표시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다하여 '중앙탑'이라고도 불리는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은 통일신라의 석탑이다. 당시 세워진 석탑 중 규모가 가장 크다(높이 14.5m). 넓게 시작되는 기단은 각 면마다 여러 개의 기둥모양을 새겨 놓았으며, 탑신부 각 층의 몸돌들 역시 기둥 모양을 조각해 놓았다. 그리고 지붕돌의 4개 귀퉁이 끝이 치켜올려져 있어 탑에 활기를 준다. 뿐만 아니라 탑 정상의 머리장식은 이중으로 포개어진 똑같은 모양의 받침돌이 받쳐주고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 1917년 해체·보수 되었는데 이때 잘못으로 원형과 달라진 부분이 많이 있다고 한다.(당시 보수작업 중 6층 몸돌과 기단 밑에서 사리와 유물이 발견되었으며, 6층 몸돌에서 나온 거울이 고려시대 것으로 밝혀져 탑 완공 이후 고려시대에 2차 봉안이 있었던 것으로 본다고 한다.) 


7. 국보 7호 :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 국보 지정일 : 1962년 12월 20일, 소재지 : 충남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대홍3길 77-48

 - 특징 : 대개 갈비는 머릿돌이나 지붕돌을 따로 얹지 않고 비몸의 끝부분을 둥글게 처리하나, 봉선홍경사 갈기비는 거북받침돌과 머릿돌을 모두 갖추고 있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전체높이 2.8m의 갈기비이다. 이 비가 있는 봉선홍경사는 1021년(고려 현종 12년)에 창건된 사찰이며, 사찰이름 앞의 '봉선'은 고려 안종이 절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목숨을 다하자 아들 현종이 사찰을 완공한 후 아버지의 뜻을 받든다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다. 거북 모습의 받침돌은 머리부분은 용의 머리를 하고 있으며(용두화 됨), 지느러미 같은 날개가 머리 양쪽에 새겨져 있다. 그리고 머릿돌에는 구름 속에 용이 새겨져있으며, 비면에는 보상화문을 조각하였다. 그리고 갈기비의 비문은 당대 유명한 유학자 최충(해동공자)이 지었고, 글씨는 백현례가 썼다.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비는 1026년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8. 국보 8호 :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

 - 국보 지정일 : 1962년 12월 20일, 소재지 :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80-4번지

 - 특징 : 통일신라시대 탑비 중 가장 거대한 풍채, 화려하고 아름다운 조각

통일신라시대 승려 낭혜화상 무염의 탑비로 전체높이는 4.55m이다. 낭혜화상은 13세 되던 해에 출가하여 이후 당나라로 유학하다 수도를 통해 깨달음을 얻은 후 다시 돌아와 웅천(현재 보령)의 오합사의 주지가 되었고, 이후 왕이 '성주사'라는 절 이름을 내려주었으다. 그리고 888년 89세로 이 절에서 입적하니 왕은 시호를 '낭혜'라 하고, 탑 이름을 '백월보광'이라 내렸다. 이 비의 받침돌은 거북이 모양으로 머리 일부분이 깨져있다.(1974년 받침돌이 파손된채로 흙에 묻혀있던 것을 해체하고 보수하였다.) 비문의 글은 최치원이 짓고 그의 사촌인 최인곤이 글씨를 썻으며, 비문에는 낭혜화상 무염의 업적이 적혀 있다.


9. 국보 9호 :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 국보 지정일 : 1962년 12월 20일, 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364

 - 특징 :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더불어 현존하는 백제시대 석탑, 정제된 조형미

낮고 좁은 기단에 5층에 탑신이 세워진 모양이다. 기단은 각면의 가운데 그리고 모서리에 기둥돌을 끼워 놓았으며, 탑신부는 각 층 모서리에 기둥을 세워(목조건물의 배흘림기법을 이용)놓았다. 지붕돌의 네 귀퉁이 부드럽게 꺽어져 단아함을 뽐낸다. 뿐만아니라 이 석탑이 전체적으로 안정되며 아름다운 이유는 비례가 완벽하기 때문이다고 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안타깝게도 상륜부 노반석의 일부만 남아있고 나머지는 유실되었다고 한다.

※ 한때 신라와의 연합군으로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한 기념탑이라는 뜻의 글을 정림사지 오층석탑에 남겨놔서 '평제탑'이라 잘못 불리기도 했었다.


10. 국보 10호 : 남원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

 - 국보 지정일 : 1962년 12월 20일, 소재지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975

 - 특징 : 다양한 모습의 조각들로 화려하게 장식되어있으며, 자유로운 구조

지리산 천왕봉 서쪽에 위치한 실상사는 828년(통일신라 흥덕왕 3년)에 홍척선사가 창간했다. 그리고 실상사 북쪽에 딸린 소박한 암자가 백장암인데 이 백장암 경내에 위치한 삼층석탑이 남원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이다. 낮은 기단 위에 탑신을 올린 형태를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탑 정상부로 갈 수록 너비와 높이가 줄어드는데, 백장암 삼층석탑의 경우 너비가 거의 일정하고 2층과 3층은 높이도 비슷하여 독특하다. 그리고 탑 전체에 다양한 조각들로 새겨져 있는데 탑신1층에는 보살상과 신장상이, 탑신2층에는 주악천인상, 탑신3층에는 천인좌상이 새겨져있다. 그리고 지붕돌밑면은 연꽃무늬를 새겨넣었다. 


이번에는 국보1호부터 국보10호까지 알아보았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보들이 많이 남아있으니 관심을 가져주세요. 자세한 내용 및 추가적인 내용을 확인하고 싶으신 분들은 문화재청 www.cha.go.kr에 접속하셔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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