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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이야기 상식]

대한민국의 자랑 '국보' 편 - 국보1호~국보10호

'국보' - 문화재 중에서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기술적인 가치가 큰 문화재를 국가가 법적으로 지정한 유형문화재를 말한다.


1. 국보 1호 : 서울 숭례문(崇禮門)

 - 국보 지정일 : 1962년 12월 20일, 소재지 : 서울 중구 세종대로 40

 - 특징 : 우진각지붕(정면에서 보면 지붕이 사다리꼴 형태), 다포 양식(주두와 기둥 사이에 두공을 두어 외관이 복잡하고 번화)

우리나라 국보1호 '숭례문'은 남쪽에 있다고 하여 '남대문'이라고도 불리는데, 1396년(태조 5년)에 건축하기 시작하여 1398년(태조 7년)에 완성되었다. 이후 '숭례문'은 1448년(세종 30년)개축이 있었고 1479년(성종 10년)에는 보수 공사가 있었다. 그리고 2008년 2월 10일 방화로 큰 피해를 입고, 무려 5년 2개월에 걸친 복원작업 끝에 2013년 5월 4일 복원이 완료되었다.

※ 숭례문 방화 사건

 2008년 2월 10일 오후 8시 40분 경에 자신이 소유한 토지의 보상 문제에 불만을 품은 채종기 씨가 숭례문에 시너를 뿌린 후 방화를 한 사건이다. 이 화재로 당시 '숭례문'은 누각을 받치는 석축만 남기고 전소되었다.


2. 국보 2호 :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

 - 국보 지정일 : 1962년 12월 20일, 소재지 : 서울 종로구 종로 99

 - 특징 : 조선시대 석탑으로는 유일한 형태이며(조선시대 석탑의 재료는 일반적으로 화강암이었다.), 높이는 약 12m이다. 원각사지 십층석탑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탑을 받치는 기단은 3단으로 되어있으며, 위에서 내려다 보면 아(亞)자 모양이라고 한다. 그리고 각 기단의 측면에는 용, 사자, 연꽃무늬 등의 조각이 있다. (세부구조 및 전체적인 형태 등이 고려시대 경천사지 십층석탑과 흡사하다고 한다.)   

1465년(세조 11년)에 세워진 '원각사'는 임진왜란 이전까지 보신각종을 보관했던 당시 도성 내에서 가장 큰 사찰(현재 탑골공원자리)이었다. 그러나 1504년 연산군이 '원각사'를 '연방원'이라는 기생집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원각사는 없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원각사지 십층석탑의 맨 위의 3층이 무너져 방치되어 오다가 1947년에 원상태로 복구하여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3. 국보 3호 :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 국보 지정일 : 1962년 12월 20일 , 소재지 :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국립중앙박물관)

 - 특징 : 자연암반 위에 2단의 층을 만들고 그 위에 세워졌다. 비에 새겨진 글은 모두 12행으로 각 행마다 32자가 해서체로 새겨짐.

신라 제42대 왕이었던 진흥왕이 세운 순수척경비 가운데 하나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는 한강 유역을 영토로 삼은 뒤 이 지역을 왕이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비를 세운 정확한 시기는 비문에 새겨진 연호가 닳아 없어져서 정확히 알 수는 없다. 1816년(순조 16년)에 추사 김정희가 발견하고 판독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비문의 내용은 왕이 그 지역을 방문하는 목적 및 순수비를 세운 사유, 영토를 확장한 진흥왕을 찬양하는 내용 등이다.

※ 원래는 북한산 비봉에 있었으나 비를 보존하기 위하여 경복궁에 옮겨놓았었다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4. 국보 4호 : 여주 고달사지 승탑

 - 국보 지정일 : 1962년 12월 20일, 소재지 :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 411-1

 - 특징 : 바닥부분이 8각 형태, 사리를 모셔둔 탑몸돌에 새겨진 문짝 모양과 사천왕상 조각, 가운데돌에 새겨진 두 마리의 거북이, 용, 구름 조각, 가운데 돌의 위 그리고 아래돌에 새겨진 연꽃 무늬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높이 3.4m의 승탑이다. 고달사(764년 경덕왕 23년에 건립되었던 사찰)터에 위치하고 있다. 전형적인 8각 원단형 승탑이나 신라시대의 양식이 엿보이는 고려시대 초기 층탑이다.(아쉽게도 상륜부는 소실되었다고 한다.) 고달사지 승탑이 세워진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10세기 즈음으로 본다. 뿐만아니라 승탑의 주인도 정확하지않다.(일설에는 신라 말의 고승 '원감'의 묘탑이라는 주장도 있고 원종대사혜진탑이라는 주장도 있다.)


5. 국보 5호 :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

 - 국보 지정일 : 1962년 12월 20일, 소재지 :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로 379(법주사)

 - 특징 : 사자를 조각한 석조물 중 가장 오래되었으며 매우 독특한 형태이다.

법주사 대웅전과 팔상전 사이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이다(통일신라시대 석등을 대표하는 작품). 8각의 하대석 위에 가슴을 맞대고 두발로 선 사자 두 마리가 앞발과 주둥이로 상대석을 받치고 있다. 이는 당시 석등과는 다른 매우 독특한 형태이며 사자의 갈기 그리고 몸의 근육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은 8각 형태인데 불빛이 나오도록 이 중 4곳에 창을 내었다. 맨 위의 지붕돌은 꾸밈이 없어 소박하고 안정되어 보인다.

※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을 세운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720년(통일신라 성덕왕 19년)으로 추측하고 있다.


6. 국보 6호 :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 국보 지정일 : 1962년 12월 20일, 소재지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11

 - 특징 : 너비에 비해 너무 높아 안정감이 덜하다.

 - 관련 설화 : 통일신라 원성왕 때 국토의 중앙을 알아보기 위해 국토의 남북 각 끝지점에서 같은 보폭을 가진 두 사람을 동시에 출발시켰더니 항상 이곳에서 만났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곳에 탑을 세워 중앙을 표시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다하여 '중앙탑'이라고도 불리는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은 통일신라의 석탑이다. 당시 세워진 석탑 중 규모가 가장 크다(높이 14.5m). 넓게 시작되는 기단은 각 면마다 여러 개의 기둥모양을 새겨 놓았으며, 탑신부 각 층의 몸돌들 역시 기둥 모양을 조각해 놓았다. 그리고 지붕돌의 4개 귀퉁이 끝이 치켜올려져 있어 탑에 활기를 준다. 뿐만 아니라 탑 정상의 머리장식은 이중으로 포개어진 똑같은 모양의 받침돌이 받쳐주고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 1917년 해체·보수 되었는데 이때 잘못으로 원형과 달라진 부분이 많이 있다고 한다.(당시 보수작업 중 6층 몸돌과 기단 밑에서 사리와 유물이 발견되었으며, 6층 몸돌에서 나온 거울이 고려시대 것으로 밝혀져 탑 완공 이후 고려시대에 2차 봉안이 있었던 것으로 본다고 한다.) 


7. 국보 7호 :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 국보 지정일 : 1962년 12월 20일, 소재지 : 충남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대홍3길 77-48

 - 특징 : 대개 갈비는 머릿돌이나 지붕돌을 따로 얹지 않고 비몸의 끝부분을 둥글게 처리하나, 봉선홍경사 갈기비는 거북받침돌과 머릿돌을 모두 갖추고 있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전체높이 2.8m의 갈기비이다. 이 비가 있는 봉선홍경사는 1021년(고려 현종 12년)에 창건된 사찰이며, 사찰이름 앞의 '봉선'은 고려 안종이 절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목숨을 다하자 아들 현종이 사찰을 완공한 후 아버지의 뜻을 받든다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다. 거북 모습의 받침돌은 머리부분은 용의 머리를 하고 있으며(용두화 됨), 지느러미 같은 날개가 머리 양쪽에 새겨져 있다. 그리고 머릿돌에는 구름 속에 용이 새겨져있으며, 비면에는 보상화문을 조각하였다. 그리고 갈기비의 비문은 당대 유명한 유학자 최충(해동공자)이 지었고, 글씨는 백현례가 썼다.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비는 1026년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8. 국보 8호 :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

 - 국보 지정일 : 1962년 12월 20일, 소재지 :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80-4번지

 - 특징 : 통일신라시대 탑비 중 가장 거대한 풍채, 화려하고 아름다운 조각

통일신라시대 승려 낭혜화상 무염의 탑비로 전체높이는 4.55m이다. 낭혜화상은 13세 되던 해에 출가하여 이후 당나라로 유학하다 수도를 통해 깨달음을 얻은 후 다시 돌아와 웅천(현재 보령)의 오합사의 주지가 되었고, 이후 왕이 '성주사'라는 절 이름을 내려주었으다. 그리고 888년 89세로 이 절에서 입적하니 왕은 시호를 '낭혜'라 하고, 탑 이름을 '백월보광'이라 내렸다. 이 비의 받침돌은 거북이 모양으로 머리 일부분이 깨져있다.(1974년 받침돌이 파손된채로 흙에 묻혀있던 것을 해체하고 보수하였다.) 비문의 글은 최치원이 짓고 그의 사촌인 최인곤이 글씨를 썻으며, 비문에는 낭혜화상 무염의 업적이 적혀 있다.


9. 국보 9호 :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 국보 지정일 : 1962년 12월 20일, 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364

 - 특징 :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더불어 현존하는 백제시대 석탑, 정제된 조형미

낮고 좁은 기단에 5층에 탑신이 세워진 모양이다. 기단은 각면의 가운데 그리고 모서리에 기둥돌을 끼워 놓았으며, 탑신부는 각 층 모서리에 기둥을 세워(목조건물의 배흘림기법을 이용)놓았다. 지붕돌의 네 귀퉁이 부드럽게 꺽어져 단아함을 뽐낸다. 뿐만아니라 이 석탑이 전체적으로 안정되며 아름다운 이유는 비례가 완벽하기 때문이다고 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안타깝게도 상륜부 노반석의 일부만 남아있고 나머지는 유실되었다고 한다.

※ 한때 신라와의 연합군으로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한 기념탑이라는 뜻의 글을 정림사지 오층석탑에 남겨놔서 '평제탑'이라 잘못 불리기도 했었다.


10. 국보 10호 : 남원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

 - 국보 지정일 : 1962년 12월 20일, 소재지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975

 - 특징 : 다양한 모습의 조각들로 화려하게 장식되어있으며, 자유로운 구조

지리산 천왕봉 서쪽에 위치한 실상사는 828년(통일신라 흥덕왕 3년)에 홍척선사가 창간했다. 그리고 실상사 북쪽에 딸린 소박한 암자가 백장암인데 이 백장암 경내에 위치한 삼층석탑이 남원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이다. 낮은 기단 위에 탑신을 올린 형태를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탑 정상부로 갈 수록 너비와 높이가 줄어드는데, 백장암 삼층석탑의 경우 너비가 거의 일정하고 2층과 3층은 높이도 비슷하여 독특하다. 그리고 탑 전체에 다양한 조각들로 새겨져 있는데 탑신1층에는 보살상과 신장상이, 탑신2층에는 주악천인상, 탑신3층에는 천인좌상이 새겨져있다. 그리고 지붕돌밑면은 연꽃무늬를 새겨넣었다. 


이번에는 국보1호부터 국보10호까지 알아보았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보들이 많이 남아있으니 관심을 가져주세요. 자세한 내용 및 추가적인 내용을 확인하고 싶으신 분들은 문화재청 www.cha.go.kr에 접속하셔서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