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라이즈] 악어인간, 그 실체는?

1993년 이후 미국 롱비치(Long beach)지역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추종하는 스타가 있다. 이 스타의 애칭은 ‘제이크(JAKE)’로, 그는 미국 롱비치에 위치한 ‘머시즈 프리 박물관(Marsh's Free Museum)’의 한 평 크기의 유리관 속에 존재하는데, 그 모습이 남달랐다. 130cm의 키에 단단한 껍질로 이루어진 하반신, 마치 인어공주처럼 하반신은 꼬리로 되어있고, 머리털이 약간 남아있는 머리, 사나운 눈매, 뾰족한 이빨, 애리한 손톱, 사람보다 조금 더 큰 어깨뼈가 부자연스럽게 삐져나온 상반신은 남자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다. 그리고 하반신을 덮은 꼬리와 꼬리를 덮은 비닐, 날카로운 손톱과 밖으로 툭 삐져나온 어깨뼈 구조는 악어와 일치했는데, 이 괴이한 형체의 미라를 전시하고 있는 ‘머시즈 프리 박물관(Marsh's Free Museum)’ 측은 이 ‘악어인간 미라’가 진짜 살아있었던 ‘악어인간’이라고 주장한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박물관장의 주장은 1880년대에 목격된 ‘악어인간’에 대한 기록해서 시작한다. 기록에 따르면 축제가 한창이던 당시 거리 구경에 나선 노인이 있었는데, 노인은 매년 드라이브를 즐기며 텍사스에서 열리는 축제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빼놓지 않고 찾아가 꼭 보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악어인간 제이크 쇼(JAKE, the crocodile man show)’였다. 당시 노인이 이 축제에서 본 ‘악어인간 제이크(JAKE, the crocodile man)’를 묘사한 기록에는 대중 앞에서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사람들이 던지는 간단한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머리를 흔들어 의사표현을 했다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그 후, ‘악어인간(Alligator man)’이 죽은 뒤인 1967년, 텍사스의 축제에서 텍사스의 축제에서 쇼를 했던 ‘악어인간 제이크’라는 ‘악어인간(Alligator man)’은 미라가 되어 경매광고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악어인간(Alligator man)’이 경매로 나오던 날 캘리포니아 주의 한 경매장에는 ‘악어인간 미라’에 관심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몰렸고 불꽃 튀는 경매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 끝에 악어인간은 현재가치로 500만원에 금액을 제시한 ‘머시즈 프리 박물관(Marsh's Free Museum)’ 관장에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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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후 ‘악어인간 미라’는 유리관 속에 갇혀 전시되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26년이 흐른 뒤, ‘악어인간 미라’가 언론에 주목을 끄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1993년 9월 11일, 플로리다의 늪 인근 숲속에서 악어인간을 목격했다는 기사가 나온 것이다. 목격담에 따르면 플로리다 일대를 탐험하던 한 남자는 이상한 느낌에 가던 길을 멈추고 주변을 살폈는데, 그곳에 반은 인간이고 반은 악어인 괴물체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 기사가 나자 사람들은 ‘악어인간(Alligator man)’에 호기심을 가지게 되고 ‘악어인간 미라 제이크’가 박물관에 있다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이후 ‘악어인간 미라 제이크’는 사람들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모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악어인간’은 박물관이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벌인 사기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이크’는 조작된 미라일까? ‘악어인간’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미 ‘도룡뇽 인간’, ‘박쥐 인간’처럼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희귀 생물체의 미라가 등장한 적이 많았으나 그 대부분은 누군가가 사진을 합성해서 만들었든가, 개와 고양이의 사체를 교묘히 이용해서 미라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악어인간’도 이와 같을 거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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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박물관장은 대학 연구팀에 ‘악어인간 미라(제이크)’의 분석을 의뢰한다. 그리고 얼마 후, 분석을 맡았던 연구팀이 검사 결과를 내놓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바로 그 어떠한 조작의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X선 검사 결과 ‘악어인간 미라’는 12개의 늑골과 견갑골이 꼬리까지 이어져 있다고 발표했는데, 이것은 인공적으로 뼈를 짜맞춰서 조작할 수 없는 형태라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에도 ‘악어인간’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검사 결과 역시 날조된 것이라며 ‘악어인간(crocodile man)’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그렇게 '악어인간(crocodile man)'에 대한 논란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고 생물학자 ‘폴 세레노(Paul C. Sereno)’가 ‘악어인간(crocodile man)’은 고대부터 존재했던 생물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는 고대 사람들의 풍습 중에는 사후 인간의 몸체를 악어의 몸체와 이어 붙여서 ‘악어인간미라’를 만드는 풍습이 있었다는 점과 고대 이집트 신화에 저주 받은 사람의 영혼을 먹는 악마 ‘암무트’가 반은 여신이고 반은 악어였다는 점을 들어 ‘악어인간(crocodile man)’은 실제로 고대에 생존했던 생물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주장에 대해 하나의 근거를 제시했는데, 니제르와 모로코 등지에서 발견한 고대화석 5점 중 한 점이었다. 악어의 머리를 뺀 몸길이가 약 1m 정도 되는 기이한 형태의 악어화석이 ‘악어인간’의 몸 구조와 흡사하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에 대해 하버드 대학의 ‘구울드(Stephen J. Gould)’박사가 반박하고 나섰다. 그는 ‘폴 세레노’가 제시한 화석은 악어의 한 종류일 뿐 ‘악어인간’으로 보기 어려우며, 고대문헌에 등장하는 '악어인간(crocodile man)'은 당시 고대민족의 상상도일 뿐 실존의 근거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새롭게 제시한 것은 괴물이론. 지금까지 우리는 종의 발전에 있어 장기간에 걸쳐 점차적으로 변화한다는 이론인 다윈의 개념을 믿고 있지만 사실 종의 발전은 점진적이지 않으며 수백만 년 동안 서서히 변화하다가 갑작스럽게 새로운 종이 탄생한다는 이론으로 ‘악어인간(crocodile man)’ 역시 새롭게 탄생한 종족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학자들 사이에 ‘악어인간(crocodile man)’에 대해 분분하던 중, 또다시 ‘악어인간(crocodile man)’이 모습을 드러냈다. 2000년 5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한 남자가 모래 언덕 한 가운데에 있는 ‘악어인간’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자 ‘악어인간(crocodile man)’에 대한 사람들에 관심은 비상해졌고, 심지어 한 일간지에서는 또 다른 가설을 내세우기에 이른다. ‘악어인간(crocodile man)’이 악어에 세균에 감염되어 나타난 돌연변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제시한 내용에 따르면 성격이 과격한 악어는 영역싸움을 하면서 무수히 많은 상처를 입게 되는데, 이때 악어의 혈액이 세균에 감염되고 그래서 발생한 세균이 굉장히 강력해서 주변환경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악어들 간에 싸움이 일어나 그 중에서 악어가 상처를 입거나 죽게 되는 악어가 생길 경우 악어의 상처와 사체는 세균에 즉시 감염되고 이때 악어의 혈액이 물과 섞여 흐르다가 상처가 난 인간이 그 물에 접촉할 경우 악어의 세균이 인간에게 영향을 미쳐서 이 후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악어인간(crocodile man)’은 세균에 감염된 악어로 인해 나타난 돌연변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악어인간’의 정체는 무엇일까? 지금까지의 모든 주장은 가설일 뿐 아직까지 이에 대한 주장은 분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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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라미드, 쿠푸왕의 피라미드

1979년 ‘바이킹 호(Viking spacecraft)’를 통해 화성의 표면을 탐사하고 있던 나사(NASA). 그러던 중 ‘바이킹 호(Viking spacecraft)’가 찍어 보내온 사진을 보고 과학자들은 깜짝 놀라게 된다. 그 이유는 ‘바이킹 호(Viking spacecraft)’가 보내온 사진들 중간에 거대한 피라미드(Pyramid) 모양의 구조물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사진이 공개되자 이것이 빛에 의한 단순한 착시현상인지 인공으로 만들어진 구조물인지에 대해 논란이 일었는데, 엉뚱하게도 세계가 주목한 것은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of Khufu)’였다. 그 이유는 '바이킹 호(Viking spacecraft)'가 전송해 온 사진 속 구조물과 똑같은 모양의 피라미드가 이집트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서쪽으로 13km 떨어진 '기자지역'에는 4,5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피라미드가 있는데, 이 피라미드는 평균 2.5T의 돌 230만 개를 쌓아올린 피라미드였다. 완공 당시의 높이는 147M, 바닥면적은 53,000제곱미터로 그 규모를 지금의 인공적인 구조물과 비교해보면 현대의 42층 높이의 빌딩의 높이에, 10개의 축구장을 합한 바닥면적에 달한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럼 과연 이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of Khufu)’는 누구의 피라미드일까? 이에 대해 학자들은 이 ‘대피라미드’가 ‘쿠푸왕의 피라미드’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1837년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of Khufu)’ 안에서 ‘쿠푸왕(Khufu)’이라고 새겨진 상형문자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 후부터,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of Khufu)’는 쿠푸왕의 피라미드라고 불리게 됐다.(‘쿠푸왕(Khufu)’은 이집트 4대왕조의 두 번째 왕으로 기원전 2551년부터 2528년까지 약 20년간 이집트를 통치한 왕이다. 하지만 '쿠푸왕(Khufu)'에 대해 남겨진 기록은 거의 없고 오직 7.5CM의 작은 ‘쿠푸상’ 하나만이 발견되었을 정도로 베일에 싸인 왕이다.) 그런데, ‘쿠푸왕(Khufu)’의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of Khufu)’를 살펴보면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보통 이집트 피라미드는 왕이 사후에 살고 있는 궁전이라 생각하여 완성되면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 입구를 돌로 막아 어느 곳이 입구인지 알 수 없도록 했는데,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of Khufu)’ 외벽에서 입구가 발견된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이 외벽 입구는 내부와 연결되어 있지 않고 막혀 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이로인해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of Khufu)' 안에 엄청난 보물이 숨겨져 있을 거라는 소문에도 오랜 시간동안 도굴범들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런데 이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of Khufu)’ 안으로 들어간 최초의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이슬람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 알 마문’이었다. 그는 818년 이집트를 정복하고 ‘쿠푸왕(Khufu)’의 막대한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대피라미드’를 파헤치도록 명령했고, 결국 내부로 통하는 통로를 발견한다. 그리고 드디어 ‘쿠푸왕’의 보물과 미라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방에 도달하게 된 ‘칼리프 알 마문’, 그가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여왕의 방’이었다. ‘여왕의 방’은 동서 길이 5.75m, 남북 길이 5.68m, 높이 6.22m에 천장은 우아한 맞배구조로 만들어져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of Khufu)’의 동서축과 동일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기대한것과 달리 아무것도 없었다. 보통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흔히 발견되는 상형문자가 새겨진 벽화, 유물, 미라 등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실망한 ‘칼리프 알 마문’은 다시 통로를 따라 들어갔고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왕의 방’이었다. 하지만 '왕의 방' 역시 텅 비어있는 왕의 석관만 존재할 뿐 이집트 왕의 절대 권력을 자랑하는 보물, 유물, 벽화, 부장품, 왕의 미라 등 그 어떤 것도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놀라운 점은 '왕의 방'이 수학적 계산으로 건설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왕의 방'이 정확히 3:5의 비율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3:5의 비율, 즉 황금비율은 기원전 4세기 전후로 고대 그리스에서 처음 발견됐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이보다 훨씬 이전에 건축된 ‘대피라미드’의 '왕의 방'에서 황금분할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런데 왜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of Khufu)’에는 왕의 미라, 유물, 보물 아무것도 없는 것일까? 첫 번째 가능성은 '도굴'이다. 하지만, 내부와 외부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도굴을 당한 흔적이 어디에도 없다. 두 번째 가능성은 이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of Khufu)’가 ‘쿠푸왕(Khufu)’의 진짜 무덤이 아닐 가능성이다. 일부 학자들은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of Khufu)’가 ‘쿠푸왕(Khufu)’의 진짜 무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학자들은 동지에 해가 지기 바로 직전 ‘대피라미드’의 그림자를 연구했는데, 그 그림자의 끝은 나일강 유역이었다. 과거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us)’는 “나일강 가운데 있는 섬 지하 어딘가에 쿠푸왕의 무덤이 있다.”고 기록했는데, 학자들은 이 기록과 연구결과가 일치한 다는 점을 들어 쿠푸왕의 진짜 무덤은 나일강 유역에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of Khufu)’는 도굴을 막기 위해 만든 속임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마지막 가능성은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of Khufu)’ 내부에 '비밀의 방'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고대 이집트에서 왕은 신이자 우주의 중심이기 때문에 피라미드의 정중앙에 왕의 방이 건설되는데, 이에 반해 ‘쿠푸왕의 방’은 정중앙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부의 어떤 곳에 진짜 왕의 무덤이 숨겨져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1992년 로봇 공학자 ‘루돌프 간텐브링크’ 탐사팀은 여왕의 방 위쪽에 있는 환기 통로에 탐사로봇을 투입했다. 혹시 다른 곳과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해서였는데, 그들은 놀라운 것을 발견한다. 로봇이 통로의 끝에서 두 개의 구리 손잡이가 달린 돌문을 발견한 것이다. 탐사팀은 이것이 바로 비밀의 방으로 가는 통로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이집트 정부는 그것이 비밀의 방이 아닌 공기 통로에 불과하다며 탐사팀의 추측을 부정했다. 그리고 이후 이집트 정부는 ‘루돌프 간텐브링크’ 탐사팀의 피라미드 탐사 재게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집트 정부는 ‘여왕의 방’을 폐쇄한다. 갑작스런 이집트 정부의 태도변화에 사람들은 당황했고 여기에 대한 의문이 재기되는 가운데 2002년 이집트 정부가 다시 ‘여왕의 방’을 공개하면서 미국 시카고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 합동팀이 ‘루돌프 간텐브링크’팀이 발견한 돌문을 기계로 뚫어 탐사하게 되는데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은 가로막힌 또 다른 돌문이었고 결국, 어딘가에 비밀의 방이 있을 것이라는 의문을 남긴 채 탐사에 실패하게 된다. 계속된 실패에도 2010년 영국 리즈 대학교 기술진은 어렵게 이집트 정부의 허가를 받아 이집트 문화재청과 함께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of Khufu)’의 비밀을 풀기 위해 현재까지 탐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과연 비밀의 방이 발견될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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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최고의 미녀, 네페르티티 여왕

1923년 하나의 보물을 두고 이집트 정부와 독일 정부, 두 나라 사이에 대립이 고조되었다. 이집트 정부의 것이니 즉각 반환하라고 요구하는 이집트 정부와 보물이 운송과정에서 손상우려가 있다며 반환을 거부하는 독일 정부 대표 아돌프 히틀러, 이 보물은 바로 고대 이집트 최고의 미녀라고 불리는 여인의 흉상이었다. 1912년 12월 6일, 이집트 나일강 인근 사막도시 아켈타톤에서 독일의 고고학팀은 이집트 정부의 허가 하에 유적을 발굴 중이었다. 그러던 중 독일의 이집트 전문학자인 루트비히 보르하르트(Ludwing Borchardt)는 아름다운 여인의 흉상을 발견한다. 그리고 '루트비히 보르하르트'는 이집트 출입국 관리들의 눈을 피해 흉상을 독일로 밀반출한다.(당시 흉상에 석고를 발라 몰라보게 했다고 한다.) 이렇게 독일로 밀반출된 이 조각상은 1923년 원래 상태로 복원되어 독일 베를린 알테즈 박물관에 전시된다. 기원전 1360년쯤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어지는 이 조각상은 왼쪽 눈동자가 없는 미완성 상태였지만 매우 섬세하고 정밀하게 조각되어 현대의 미인상에 견주어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밝은 갈색 피부, 갸름한 얼굴, 커다란 눈, 오똑한 코, 도톰한 입술, 가늘고 긴목의 형태) 이에 이집트 예술품 중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데, 이 흉상이 바로 이집트 여왕 '네페르티티'의 조각상이다. 클레오파트라(Cleopatra), 아낙수나문(Anksnmn)과 함께 고대 이집트 3대 미녀로 꼽히는 네페르티티는 이름의 뜻 '미녀가 왔다.'를 보여주듯이 이집트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미인이었다. '네페르티티'는 기원전 14세기 고대 이집트 제18왕조의 10대 파라오 아크나톤(Akhnaton, 아멘호테프 4세)이 가장 사랑했던 왕비였으며, 파라오 투탕카멘(이집트 제18왕조 12대 파라오, Tutankhamen)의 장모이자 양모로 알려져 있다. 또한 '네페르티티'는 고대 이집트 왕국의 최초의 여왕이었다. 그리고 남편인 10대 파라오 아크나톤과 함께 이집트를 다스릴만큼 엄청난 권력을 가졌었다. 그런데 기원전 1367년 홀연히 역사 속 기록에서 사라진다. 뿐만아니라 무덤, 유물, 유적 등 '네페르티티'와 관련된 모든 기록이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네페르티티'의 기록 실종에 대해서 여러가지 설이 있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첫 번째, 아크나톤 왕 14년 이집트에 전염병이 유행했는데 이때 '네페르티티'가 사망했다는 설.

두 번째, 아크나톤 왕이 사망하고 다음 파라오인 투탕카멘이 즉위하기 전에 잘 알려지지 않은 파라오 '스멘카레'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 '스멘카레'가 '네페르티티'라는 설.

세 번째, 기원전 1367년 '네페르티티'가 아크나톤 왕의 사랑을 잃고 왕비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설.

네 번째, 일신교(태양신을 유일신으로 숭배하는 종교)를 도입하는 종교혁명이 실패로 돌아가자 정치적인 이유로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는 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런데, 독일 베를린 알테즈 박물관에 공개된 '네페르티티'의 조각상은 기이하게도 왼쪽 눈동자가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 때문인지 '네페르티티' 조각상은 보는 각도에 따라 소녀처럼 보이기도 하고, 성숙하고 아름다운 여인처럼 보이기도 하고, 추한 여인으로 보이기도 하는 등 여러 얼굴로 보였다. 이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주장이 있다.

첫 번째, 고대 이집트 궁중 조각가였던 투트모스가 '네페르티티'를 사랑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원한을 담아 아름다움과 추함이라는 이미지를 섞어 만들었다는 설.

두 번째, 고대 이집트 궁중 조각가였던 투트모스가 '네페르티티'의 실제 아름다움에 자신이 만든 조각상이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조각을 미완성인 상태로 남겨놓았다는 설.

세 번재, '네페르티티'조각상을 밀반출했던 '루트비히 보르하르트(Ludwing Borchardt)'가 밀반출 과정 중 훼손시켰다는 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런데 2003년 영국 요크대학의 '조앤 플레처'교수가 놀라운 주장을 한다. 1898년 프랑스의 이집트 고고학자 '빅터 로렉'이 발견한 7대 파라오 아멘호테프 2세의 무덤에서 발견되었던 '젊은 여인'이라는 이름이 붙어진 미라가 발견되었었다. 하지만 당시 훼손 상태가 심해서 주목을 받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 미라가 흉상과 유사하다고 느낀 '조앤 플레처'교수가 12년간 미라의 가발 조각들과 뼈의 형태 등을 분석한 결과 미라를 싼 천이 당시 왕족들만이 사용한 고급 천이었다는 것과 최상의 약품으로 만들어졌다는 것, 왕이나 왕비의 미라를 만들 때만 사용하는 방식으로 팔이 꺽어져 있다는 점 그리고 미라의 양쪽 귀에 귀걸이 구멍이 있다는 점 등이 흉상의 모습과 완벽히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미라를 복원해 '네페르티티'의 당시 얼굴을 공개하였는데 아프리카계의 미인의 모습을 하고 있어 더욱 주목을 받기도 했다.)

많은 논란이 계속되던 2003년 8월 30일, 이집트 카이로 유물관리 위원회 사무총안 '자히 하와스'는 '조앤 플레처'교수가 '네페르티티'의 미라라고 주장한 미라에 대해서 '네페르티티'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고대 남성의 미라라며 반박한다. 이에 대한 근거로 양쪽 귀에 귀걸이 구멍은 당시 고대 이집트에서 남성과 여성 모두 했던 풍습이었으며 왕비들은 귀를 뚫지 않고 가발을 이용해서 귀걸이를 착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6번이나 출산을 했다고 알려진 '네페르티티' 여왕이라고 하기엔 이 미라의 골반이 너무 작다는 것이었다. 뿐만아니라 '네페르티티'는 30세 쯤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 미라는 18~30세로 추정되므로 '네페르티티'의 미라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에 진짜 '네페르티티'의 미라를 찾기 위한 발굴 작업이 본격화된다. 그 결과 투탕카멘, 아크나톤 등 수많은 미라들에 신원이 밝혀진다. 하지만 아쉽게도 '네페르티티'의 진짜 미라는 아직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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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규하는 미라,"역사상 가장 미스터리한 미라"

1886년 '가스통 마스페로'박사가 이끄는 발굴단은 이집트에서 람세스3세의 무덤을 발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까지 한번도 보지못한 기이한 모습의 미라가 람세스3세의 무덤 옆에서 발견된다. 이 기이한 미라는 일반적인 미라와는 달리 죄인처럼 양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아 단단히 묶여 있었으며 입을 크게 벌린채, 매우 고통스러운 듯 일그러진 표정을 하고 있었다. 뿐만아니라 일반적으로 미라의 옆에는 '죽은자의 이름'과 '사자의 서'가 적혀있는데, 독특하게도 이 미라 옆에는 '이름'도 사후에 세계를 기원하는 '사자의 서'도  쓰여있지 않았다.

※ <사자의 서>란? - 미라가 죽은 후 부활하여 사후세계를 잘 찾아가도록 안내하는 글귀를 말한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이 미스터리한 미라를 연구하기 위해 '가스통 마스페로'박사는 정밀 검사가 가능한 연구소가 있는 프랑스로 이 미스테리한 미라를 가져간다. 연구소에서 미스테리한 미라를 연구하던 '가스통 마스페로'박사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보통 미라를 만들 때에는 시신이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뇌와 장기를 모두 제거하는데 반해 이 미스테리한 미라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뇌와 장기가 그대로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리고 고대 이집에서 죽은 죄인들 위에 덮어두었던 염소가죽이 이 미라를 덮고 있었던 것이었다.(당시 관습에 의하면 죄인은 미라로 만들지 않았다. 그리고 죽은 죄인 위에 염소가죽을 덮어두었다고 한다.) 이에 많은 이들은 어떻게 람세스3세와 죄인이 같은 무덤에 묻혔는가에 대해 궁금해하였다. 이러한 미스테리를 풀기위해 더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으나 120년 간 이 미스테리는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2008년,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의 '수잔 레드포드'박사가 이 미스테리한 미라가 람세스3세의 아들이라는 놀라운 주장을 했다. '수잔 레드포드'박사는 이러한 주장에 대한 증거로 첫 번째, 3D 안면 재건술을 통해 복원한 미스테리한 미라의 얼굴 생김새를 들었다. 복원을 한 결과 전체적으로 길고 각진 얼굴에 긴턱 그리고 매부리코를 지닌 모습이 람세스3세와 매우 닮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유전자 검사를 한 결과, 이 미스테리한 미라와 람세스3세의 Y염색체가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이 미스테리한 미라는 람세스3세의 아들이라는 것이었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리고 '수잔 레드포드'박사는 이 미스테리한 미라에 숨겨진 사연을 자신의 저서 [하렘의 음모]를 통해 밝혔는데, 그 사연은 다음과 같다. 람세스3세에게는 당시 아내가 2명 있었는데, 첫 번째 아내의 아들 '몬투헤르호셰프'가 후계자로 책봉되자 두 번째 아내인 '타이'와 그녀의 아들 '펜터웨어'왕자는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이에 두 번째 부인 '타이'는 왕실 측근들을 포섭하고나서 람세스3세를 제거하기 위해 자객을 보내 람세스3세를 살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눈치챈 후계자 '몬투헤르 호셰프'는 둘째 부인 '타이'와 '펜터웨어'왕자를 제압하고 재판을 한다. 그리고 재판에서 공모자 36명 중 '펜터웨어'왕자를 제외한 모든 공모자에게 사형을 내렸고 '펜터웨어'왕자에게는 왕족의 예우를 갖춰 독약을 먹고 자살할 수 있게 하였다. 독약을 먹고 죽은 후 미라로 만들어지게 되는 '펜터웨어'왕자는 죄인이었기에 뇌와 장기도 빼지 않았으며 죄인한테 사용하는 염소가죽을 덮은 채로 아버지 옆에 놓이게 된 것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람세스3세가 죽은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수잔 레드포드'박사의 이러한 주장 역시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고 반론했다.

※ 당시 이집트에서 사형 선고는 미라로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 그 이상의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미라로 만들어지지 못한다는 것은 죽은 이후에 사후세계에서 부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였기 때문이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러던 2012년, '수잔 레드포드'박사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발견되었다. 유럽의 한 연구소에서 이탈리아의 생물학자가 람세스3세의 미라를 연구하던 도중 목부분에서 깊이 7cm의 상처를 발견한 것이다. 이 상처는 이전에 '수잔 레드포드'박사가 주장했던 람세스3세의 두 번째 부인 '타이'가 자객을 보내 람세스3세를 암살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이로인해 3000년 간 의문에 쌓여있던 람세스3세의 죽음에 대한 원인이 밝혀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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