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P 현상, 죽은 자의 목소리

[흥미로운 이야기 상식] 2016. 1. 28. 22:42

미국의 한 남자가 집에 들어와 자동응답기를 켜는데 정체불명의 한 남자에게서 자동응답 메시지가 와있었다. 그리하여 자동응답 메시지가 온 곳으로 전화를 하는데, 전화를 받은 여자는 전화를 건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둘은 자동응답 메시지를 같이 들어보게 되는데 여자는 깜짝놀라하며 그 목소리는 6개월 전에 죽은 자신의 남편 목소리라고 주장한다. 대체 어떻게 이런일이 가능한 것일까. 이러한 현상을 학자들은 화이트 노이즈(White Noise) 또는 전자 음성 현상(Electronic Voice Phenomenon)이라고 부르는데, EVP 현상은 전자기기 등을 통해 사망자가 메시지를 남기는 현상을 말한다. 즉, TV, 라디오, 컴퓨터, 전화 등을 통해 초자연적인 영혼의 목소리를 녹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좀처럼 믿기 어려운 이 EVP현상을 실제로 겪었거나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고 한다. 전세계적으로 약 87개 국가에 모임 회원만 무려 3만명이 넘을 정도이다. 이러한 모임 중 가장 대표적인 모임인 '미국 전기 음성 현상 협회'는 미국 내 40여개 주에 회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회지를 정기적으로 발간할 정도라고 한다. 뿐만아니라 EVP현상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는데, 영국 '린다 윌리엄스(Linda Williamson)'은 현재까지 수많은 영혼의 목소리를 녹음했다고 주장했는데 그녀는 사망한 자신의 친척 그리고 친구의 목소리 뿐만아니라 죽은 개가 짖는 소리까지 녹음하는데 성공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EVP현상이 큰 화제가 된 것은 충격적인 한 사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2008년 미국 LA유니언 역에서 출발한 열차가 채스워스에서 화물열차와 충돌하여 무려 25명이 사망하고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이 열차에는 '척 팩(Chuck Peck)'이라는 한 남자가 타고 있었는데 그는 사고 후 11시간에 걸쳐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사고 발생 12시간 후 '척 팩'은 사망한 상태로 발견된다. 그런데 부검 결과 '척 팩'은 사고가 발생하자마자 사망한 것으로 밝혀진다. 그리고 조사원들은 '척 팩'의 휴대전화를 사고 현장에서 찾지 못한다.('척 팩'이 가족들과 통화한 내역은 가족들의 휴대폰에 그대로 저장되어 있었다.) 이 미스터리한 사건으로 인해 EVP현상은 큰 화제가 되었다.

(출어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이러한 EVP현상은 '그것이 진짜인지 or 조작된 가짜인지'에 대해 논란이 매우 많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영국 뉴 햄프셔 주에 있는 마운트 워싱턴 호텔의 공주 유령 영상이다. 이 호텔은 '캐롤린(Carolyn)'이라는 공주 유령이 자주 출몰하는 곳으로 유명한데 2008년 한 심령 연구모임에서 이 공주 유령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호텔 안을 촬영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촬영 중 회원이 한 질문에 공주 유령으로 추정되는 한 여성이 대답을 한 것이다. 이 영상은 여러 언론매체에 소개되며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이영상은 현재까지 어떤 기술적인 조작도 없는 영상으로 알려져 있다. 즉, 유령의 목소리가 녹음된 'EVP'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심리학자들은 극도로 예민해지거나 공포심이 조성된 상황에서 들리는 소리는 사실과 다르게 판단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분별이 어려운 소리를 자신이 원하는 내용으로 재해석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진위여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EVP현상.....

(출어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런데 놀라운 사건이 발생한다. 2003년 미국, '조지'라는 한 남자는 한 녹음 프로그램을 자신의 컴퓨터에 설치하고 실행시킨다. 그런데 몇 분뒤,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여성의 목소리가 녹음된 것이다. 이 여성은 자신의 이름을 '그레이스'라고 밝히고 자신의 남편이 자신을 살해하고 구멍이 난 보트에 자신의 시신을 버렸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조지'는 자신이 착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다음날, 실제로 '그레이스 로버트슨'이라는 한 여성이 실종되었다는 기사를 보게된다. '조지'는 기사를 보고 경찰서로 가서 자신이 어제 들은 내용을 경찰들에게 말한다. 하지만 경찰들은 오히려 '조지'를 사건과 관련된 용의자 취급하며 그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몇달 후, FBI가 재수사를 한 결과 '그레이스 로버트슨'의 시신을 찾았는데 놀랍게도 '조지'가 '그레이스'와 나눈 대화내용과 일치했던 것이다. '그레이스 로버트슨'은 '조지'의 집 근처에서 살해당한 후 구멍 난 보트에 버려져 있었고 사건을 숨기려던 '그레이스 로버트슨'의 남편은 결국 '그레이스 로버트슨'을 살해한 사실을 인정했다. 이 사건은 'EVP현상'을 또 다시 주목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EVP현상'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단순히 주파수의 혼선에 의한 것일뿐이라고 주장한다. 주파수의 기본적인 잡음을 말하는 'EVP'는 광범위한 주파수들이 섞일 경우 인간의 목소리와 비슷하다고 착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또는 'EVP현상'을 단순한 녹음오류 현상이라고도 주장한다. 즉, 녹음 시 잡음이 섞였거나, 기계 자체의 결함으로 인해 발생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심리학자들은 'EVP'는 심리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사람이 사망을 하면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마음이 일시적인 환청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듭되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늘고있는 EVP현상에 사례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으로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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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규하는 미라,"역사상 가장 미스터리한 미라"

[흥미로운 이야기 상식] 2016. 1. 26. 22:07

1886년 '가스통 마스페로'박사가 이끄는 발굴단은 이집트에서 람세스3세의 무덤을 발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까지 한번도 보지못한 기이한 모습의 미라가 람세스3세의 무덤 옆에서 발견된다. 이 기이한 미라는 일반적인 미라와는 달리 죄인처럼 양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아 단단히 묶여 있었으며 입을 크게 벌린채, 매우 고통스러운 듯 일그러진 표정을 하고 있었다. 뿐만아니라 일반적으로 미라의 옆에는 '죽은자의 이름'과 '사자의 서'가 적혀있는데, 독특하게도 이 미라 옆에는 '이름'도 사후에 세계를 기원하는 '사자의 서'도  쓰여있지 않았다.

※ <사자의 서>란? - 미라가 죽은 후 부활하여 사후세계를 잘 찾아가도록 안내하는 글귀를 말한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이 미스터리한 미라를 연구하기 위해 '가스통 마스페로'박사는 정밀 검사가 가능한 연구소가 있는 프랑스로 이 미스테리한 미라를 가져간다. 연구소에서 미스테리한 미라를 연구하던 '가스통 마스페로'박사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보통 미라를 만들 때에는 시신이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뇌와 장기를 모두 제거하는데 반해 이 미스테리한 미라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뇌와 장기가 그대로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리고 고대 이집에서 죽은 죄인들 위에 덮어두었던 염소가죽이 이 미라를 덮고 있었던 것이었다.(당시 관습에 의하면 죄인은 미라로 만들지 않았다. 그리고 죽은 죄인 위에 염소가죽을 덮어두었다고 한다.) 이에 많은 이들은 어떻게 람세스3세와 죄인이 같은 무덤에 묻혔는가에 대해 궁금해하였다. 이러한 미스테리를 풀기위해 더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으나 120년 간 이 미스테리는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2008년,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의 '수잔 레드포드'박사가 이 미스테리한 미라가 람세스3세의 아들이라는 놀라운 주장을 했다. '수잔 레드포드'박사는 이러한 주장에 대한 증거로 첫 번째, 3D 안면 재건술을 통해 복원한 미스테리한 미라의 얼굴 생김새를 들었다. 복원을 한 결과 전체적으로 길고 각진 얼굴에 긴턱 그리고 매부리코를 지닌 모습이 람세스3세와 매우 닮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유전자 검사를 한 결과, 이 미스테리한 미라와 람세스3세의 Y염색체가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이 미스테리한 미라는 람세스3세의 아들이라는 것이었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리고 '수잔 레드포드'박사는 이 미스테리한 미라에 숨겨진 사연을 자신의 저서 [하렘의 음모]를 통해 밝혔는데, 그 사연은 다음과 같다. 람세스3세에게는 당시 아내가 2명 있었는데, 첫 번째 아내의 아들 '몬투헤르호셰프'가 후계자로 책봉되자 두 번째 아내인 '타이'와 그녀의 아들 '펜터웨어'왕자는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이에 두 번째 부인 '타이'는 왕실 측근들을 포섭하고나서 람세스3세를 제거하기 위해 자객을 보내 람세스3세를 살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눈치챈 후계자 '몬투헤르 호셰프'는 둘째 부인 '타이'와 '펜터웨어'왕자를 제압하고 재판을 한다. 그리고 재판에서 공모자 36명 중 '펜터웨어'왕자를 제외한 모든 공모자에게 사형을 내렸고 '펜터웨어'왕자에게는 왕족의 예우를 갖춰 독약을 먹고 자살할 수 있게 하였다. 독약을 먹고 죽은 후 미라로 만들어지게 되는 '펜터웨어'왕자는 죄인이었기에 뇌와 장기도 빼지 않았으며 죄인한테 사용하는 염소가죽을 덮은 채로 아버지 옆에 놓이게 된 것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람세스3세가 죽은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수잔 레드포드'박사의 이러한 주장 역시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고 반론했다.

※ 당시 이집트에서 사형 선고는 미라로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 그 이상의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미라로 만들어지지 못한다는 것은 죽은 이후에 사후세계에서 부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였기 때문이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러던 2012년, '수잔 레드포드'박사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발견되었다. 유럽의 한 연구소에서 이탈리아의 생물학자가 람세스3세의 미라를 연구하던 도중 목부분에서 깊이 7cm의 상처를 발견한 것이다. 이 상처는 이전에 '수잔 레드포드'박사가 주장했던 람세스3세의 두 번째 부인 '타이'가 자객을 보내 람세스3세를 암살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이로인해 3000년 간 의문에 쌓여있던 람세스3세의 죽음에 대한 원인이 밝혀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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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에 대한 광적인 집착, 아돌프 히틀러

[흥미로운 이야기 상식] 2016. 1. 25. 23:07

제2차 세계대전, 나치 독일의 총통이 된 '아돌프 히틀러'는 유럽 각국을 침략하였다. 그리고 그가 침략과 동시에 가장 먼저 한 일은 그 나라의 미술품들을 약탈하는 것이었다. '아돌프 히틀러'가 미술품 약탈에 얼마나 집착을 했는지 보여주는 것이 바로, '엘른자츠타프'이다. '엘른자츠타프'는 일명 미술품 수집 특수부대였다. 이렇듯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럽 각국의 미술품을 광적으로 약탈한 아돌프 히틀러, 그가 약탈한 미술품은 무려 약 500만여점이나 되었다. 그는 무엇때문에 이토록 미술품에 집착을 하였을까?? '아돌프 히틀러'는 13살에 미술에 대한 꿈을 위해 학교를 자퇴한 후, 매일 방에서 그림을 그렸었다. 하지만 당시 생활이 그리 넉넉지 않았던 터라 그의 아버지(알로이스 히틀러)는 '아돌프 히틀러'가 화가의 꿈을 접고 학교로 다시 돌아가 공부할 것을 강효하였다. 뿐만아니라 그의 어머니(클라라 히틀러)마저도 '아돌프 히틀러'의 꿈을 이해해주지 않았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하지만 그는 그의 꿈을 이루기 위해 7년 뒤 국립미술아카데미의 입학 시험을 보기 위해 비엔나로 떠난다. 하지만 그는 연달아 2번 낙방하게 된다. 그러자 '아돌프 히틀러'는 국립미술아카데미의 학장을 찾아가 자신이 낙방한 이유가 무엇인지 따지는데, 학장은 '아돌프 히틀러'의 그림을 무시한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왜냐하면 당시 유럽에서는 사물을 그릴 때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야수파 작품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던터라 '아돌프 히틀러'의 사실적인 묘사를 바탕으로 한 그림은 시대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꿈이 좌절되고만 '아돌프 히틀러'는 30년 뒤, 나치 독일의 총통이 된다. 그리고 그는 곧 독일 내 유대인들의 미술활동을 엄격히 제한했는데, 이는 자신의 그림을 무시하고 국립미술아카데미에 두번이나 낙방을 시킨 당시 국립미술아카데미의 학장이 유대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심지어 '아돌프 히틀러'는 112명의 야수파 화가들의 작품을 모아 '퇴폐 미술전'이라는 전시를 열었는데, 이때 야수파 작품들 옆에 정신병원 환자들의 그림을 같이 전히하며 야수파 작품들을 조롱하였다. 그러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아돌프 히틀러'는 자살로 생을 마감함) '아돌프 히틀러'가 약탈했던 미술품들이 발견되었으나, 수많은 약탈 미술품들을 본 소유자들에게 모두 돌려주기까지는 무려 6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아돌프 히틀러'의 미술품에 대한 이런 광적인 집착은 좌절된 그의 꿈에 대한 그릇된 집착이 아니었나 싶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후대에 물려주어야할 귀중하고 가치있는 수많은 미술품들이 당시 이러한 약탈로 인하여 훼손되거나 파손되었다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아직 행방이 묘연하거나 밝혀지지 않은 약탈품들이 더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당시 전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작품을 팔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손해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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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초상화의 비밀 - 자크 루이 다비드의 고백

[흥미로운 이야기 상식] 2016. 1. 25. 22:06

나폴레옹의 초상화 중에서 나폴레옹의 위대함을 가장 잘 표현한 것으로 손꼽히는 명작 '자크 루이 다비드'의 '성 베르나르 협곡을 넘는 나폴레옹'은 역동적인 대각선 구도로 그려저 나폴레옹의 진취적인 도전 정신을 강렬하게 표현하였고 눈은 모든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는 영웅의 눈빛으로 그려졌다. 뿐만아니라 나폴레옹이 두르고 있는 붉은 망토와 화려한 군복은 나폴레옹의 위상을 표현하였으며 발동작은 그 어떤 어려움도 뚫어 버릴 듯이 힘있게 그려져있다.

<성 베르나르 협곡을 넘는 나폴레옹>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이 명작을 그린 '자크 루이 다비드'는 1748년 프랑스 태생으로 프랑스 혁명가 '마라'가 죽자 그의 혁명 정신을 존중하며 '마라의 죽음'이라는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이 그림은 마라의 장례행렬에 사용되었고, 자크는 혁명정신을 대표하는 화가로 대중들의 존중을 받고 있던 화가였다. 그러던 어느날, 자크 루이 다비드를 나폴레옹이 찾아와 자신의 초상화를 부탁한다. 당시 장군에 불과했던 나폴레옹을 '성 베르나르 협곡을 넘는 나폴레옹'이라는 위대한 인물로 그려준 것은 당시 나폴레옹이 프랑스 혁명정신을 실현해 줄 젊은 지도자이며 유일한 대안이라고 자크 루이 다비드는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림이 완성되자 나폴레옹은 물론 시민들에게도 이 그림은 큰 호응을 얻었으며, 이 그림을 통해 나폴레옹이 혼란스러운 프랑스를 안정시켜줄 지도자라고 시민들은 각인하게 된다. 하지만 사실 이 그림'성 베르나르 협곡을 넘는 나폴레옹'은 사실과는 전혀 달랐다.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을 당시에 상황을 있는 그대로 그린 것으로 알려진 화가 '폴 들라로슈'의 그림을 보면 '자크 루이 다비드'의 그림이 실제 상황을 얼마나 왜곡해서 그렸는지, 그리고 나폴레옹을 얼마나 영웅화하여 그렸는지 알 수 있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자크 루이 다비드'의 그림에서는 나폴레옹이 힘있는 백마를 타고 알프스를 힘차게 넘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으나, 사실은 '노새'를 타고 알프스를 넘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크 루이 다비드'의 그림에서는 나폴레옹 본인이 앞장서 진두지휘하여 부대를 이끄는 것처럼 그려져있으나, 사실은 현지 농부의 안내를 받아 조심조심 이동하였다고 한다. 뿐만아니라 붉은 망토와 화려한 군복을 입지 않고 일반적인 군복을 입었다고 한다. 위의 그림을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과 비교하여보면 '자크 루이 다비드'가 나폴레옹을 얼마나 영웅의 모습으로 극대화해 그렸는지 알 수 있다. 이러한 자신의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들었던 나폴레옹은 자크 루이 다비드에게 '성 베르나르 협곡을 넘는 나폴레옹' 그림을 4점이나 더 그리게 해서 주변 국가들에 선물하였다고 한다. 얼마 후, 나폴레옹은 제1총통이 되었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런데 나폴레옹이 제1총통이 되고난 후, 나폴레옹을 추하게 그린 그림들이 나돌게 되고 이에 화가 난 '자크 루이 다비드'는 나폴레옹의 초상화를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하게 된다.(당시 까지도 '자크 루이 다비드'는 나폴레옹이 혁명정신을 가지고 프랑스를 이끌어줄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거 같다.) 이렇게 나폴레옹의 초상화를 그리던 '자크'는 심지어 나폴레옹을 대신할 미남의 대역을 고용하여 초상화를 그리게 된다. 이로인해 나폴레옹은 역대 프랑스 지도자들 중에서 가장 화려한 초상화를 가진 지도자가 되었다. 그러던 중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려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 '자크 루이 다비드'는 매우 실망하게 된다. 왜냐하면 프랑스 시민혁명으로 왕정을 힘들게 무너뜨렸는데 나폴레옹이 다시 황제로 등극한다는 것은 왕정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은 '자크 루이 다비드'에게 자신의 황제 즉위식을 그려달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이에 '자크 루이 다비드'는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어도 프랑스 혁명정신을 가지고 프랑스를 이끌어줄 거라 다시 한 번 믿고 이를 수락한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이렇게 그려진 그림이 '나폴레옹 황제 대관식'이라는 무려 길이 10m의 대작이다. '나폴레옹 황제 대관식'을 보면 나폴레옹은 두손으로 공손히 왕관을 들고 있으며, 우측의 교황은 편안한 표정을 하고 오른손을 들어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를 축복해주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하객들이 등장하여 화려하고 장엄한 대관식으로 그렸다. 하지만 이 그림 또한 나폴레옹의 요청으로 조작된 그림이었다고 한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실제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식에 참석하여 그가 스케치한 그림을 보면 나폴레옹은 한 손으로 왕관을 거만하게 들어서 쓰고 있으며, 교황은 불쾌한 표정으로 두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초청을 받은 수많은 인물들 많은 이들이 참석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듯 황제에 자리에 오른 나폴레옹은 황제가 된 이후로 더욱 독재정치를 심하게 하였으며, 심지어는 자신의 아들에게 황제 자리를 세습하려고 했다. 이에 크게 실망한 '자크 루이 다비드'는 벨기에로 망명을 하였으며, 생을 마감할 때까지 나폴레옹을 위해 그림을 그린 것을 후회하였다고 한다.


이 밖에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의 작품들...

[자크 루이 다비드 레카미에 부인의 초상]

[자크 루이 다비드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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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 '크로노바이저'는 무엇인가?

[흥미로운 이야기 상식] 2016. 1. 17. 14:07

1972년 5월 성 베네딕트 수도회 소속의 펠레그리노 에르네티 신부('언어학자'이자 '양자물리학자')는 자신과 동료들은 교황청의 명령을 받아 1958년에 타임머신 '크로노바이저'를 만들었다고 폭로했다. 이 기사는 이탈리아 주간지 [라 도메니카 델 코리에레]에 실렸다. 위와 같은 내용을 폭로한 펠레그리노 에르네티 신부는 1950년 어느날, 교황청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는데 그것은 당시 교황 비오 12세로부터 온 편지였다고 한다. 편지를 받은 펠레그리노 에르네티 신부는 즉시 교황청으로 갔고, 교황 비오12세로부터 한 가지 임무를 받았다고 한다. 그 임무는 바로, '타임머신'을 개발하라는 것이었다. 교황 비오 12세는 어째서 타임머신을 개발하라고 한 것일까? 그렇다. 비오 12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고자 했던 것이다.

(출처 - mbc신비한tv서프라이즈)

교황의 임무를 받은 펠레그리노 에르네티 신부는 12명의 과학자 그룹을 구성하는데, 그 중에는 노벨물리학 수상자 '엔리코 페르미 박사'와 아폴로 11호를 개발한 로켓 분야의 1인자 '베르너 폰 브라운 박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룹이 구성되자 그들은 즉시 교황청의 비밀 연구실에서 타임머신 연구 개발에 돌입한다. 그리고 1958년 마침내 타임머신 '크로노바이저'가 완성된다. '크로노바이저'는 일반적으로 특정 시간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타임머신과는 달리, 과거의 사건이나 인물을 모니터를 통해 보여주는 기계였다. '크로노바이저'로 그들은 1900년대 초 무솔리니가 연설하는 모습을 포착한 것을 시작으로 1797년 나폴레옹이 연설하는 장면, 기원전 63년 마르쿠스 키케로의 연설하는 장면 등을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골고타 언덕에서 고난을 겪는 예수의 모습까지 포착하는데 성공하였다고 한다.

(출처 - mbc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러나, 얼마지나지 않아 교황 비오 12세는 '크로노바이저'가 악용될 것을 염려하여 폐기를 명령한다. 뿐만 아니라 '크로노바이저'와 관련된 설계도, 분해된 제품 그리고 연구자료들 등은 교황청 비밀창고에 숨겼다. 그리고 '크로노바이저'와 관련된 그 어떠한 사실도 외부에 발설하지 못하도록 하였으며, 그룹 모두에게 '크로노바이저'에 대해 함구하겠다는 내용의 각서에 서명을 받았다고 한다. 이로인해 지금까지 함구하고 있었다고 한다.

(출처 - mbc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런데, 펠레그리노 에르네티 신부가 타임머신 '크로노바이저'에 대해 폭로하면서 전 세계는 발칵 뒤집혔으며, 이에 사람들은 교황청에 진실을 밝히라고 요구했으나 교황청은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었다. 그런데 논란이 커져가던 어느날, 펠레그리노 에르네티 신부의 주장이 가짜라는 주장이 나온다. 그 첫 번째 이유, 펠레그리노 에르네티 신부가 근거로 제시한 사진 중 예수 그리스도의 사진은 이탈리아 토리 지역 순례지에서 팔고 있는 엽서와 완벽히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 사진 역시 독일 화가의 그림과 완벽히 일치했다. 거기에 펠레그리노 에르네티 신부가 근거로 제시한 엔니우스의 희곡 [티에스테스] 원본에 대해 고대 로마 문학 전문가인 '캐서린 엘드레드 교수'는 엔니우스의 작품이라고 보기에는 희곡의 내용과 문장이 허술하고 엔니우스가 죽고 250년이 지난 후에야 사용된 라틴어들이 사용되었다며 가짜라고 주장했다. 더불어 같이 개발했다는 두 박사는 온적이 없고 다른 곳에서 연구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는 주장들이 덧붙여 지며 펠레그리노 에르네티 신부는 더이상 자신의 말을 주장하지 못하고 1994년 사망하고 만다.


하지만 2002년, '크로노바이저'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주장이 다시 나온다. 이 주장을 한 사람은 교황청 성서연구원 출신 '프랑수아 브룬'신부로 그는 '크로노바이저'에 대해 펠레그리노 에르네티 신부에게 꾸준히 들어왔으며, 그가 죽기 직전까지 '크로노바이저'가 실제로 존재했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가 제시했던 가짜 증거들은 교황청의 압박으로 인해 진짜 증거를 제시할 수 없었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크로노바이저'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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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의 노스트라다무스, 예언가 코이니치 오드하

[흥미로운 이야기 상식] 2016. 1. 10. 21:18

'스코틀랜드의 노스트라다무스'라 불리는 예언가 '코이니치 오드하'는 17세기 소코틀랜드에서 구멍이 뚫린 돌로 미래를 본 예언가이다. 그가 이런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은 한 사건을 통해서이다. 어릴적 스코틀랜드의 루이스 섬에서 자랐는데, 어느 날 바닷가에서 혼자 놀던 중 여인의 모습을 한 유령을 만나게 된다. 이 여인은 자기를 오래전 스코틀랜드 앞 바다에서 사망한 노르웨이의 공주라고 밝히며, 바닷가를 떠도는 자신의 시신을 수습해 달라고 부탁한다. 코이니치 오드하는 그 여인이 알려준 위치로 가서 시신을 수습하고 양지마른 곳에 묻어준다. 그날 밤, 여인 유령이 다시 오드하에게 나타나는데, 그녀는 오드하에게 한 장소를 알려주고 사라진다. 오드하는 여인이 알려준 장소로 가서 땅을 파보는데 그곳에 구멍뚫린 돌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구멍 사이로 미래의 모습을 보게 되기 시작한 것이다. 

(출처 - MBC[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러던 중 그의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에 대해 알게 된 시포스 백작에 눈에 들어 백작의 예언가로 활동하게 된다. 1663년 백작 부인은 오드하에게 시포스 백작이 왜 돌아오지 않느냐고 묻는다. 이에 오드하가 '백작이 다른 여인을 만나고 있어 당분간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예언한다. 이에 분노한 백작부인은 그를 처형하는데, 오드하는 죽기 전 백작 부인에게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처형되는데....

"부인의 자손은 훗날 성홍열에 걸려 청각을 잃고 말도 못하게 될 것이며, 그의 아들들 역시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영토를 빼앗기고 가문은 몰락할 것이다."라고 마지막 예언을 한다. 그렇게 코이니치 오드하는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얼마 후 시포스 백작이 돌아오는데, 그는 오드하에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란다. 그 이유는 그가 정말로 다른 여자랑 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드하가 자신의 가문에 대해 예언한 내용을 듣고 죽을때까지 걱정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오드하가 예언한지 100년 후, 오드하의 예언이 실행되기 시작한다. 시포스 백작의 후손인 프란시스 매켄지가 청력을 잃어 말을 못하게 되고 그의 아들들 4명은 모두 어린나이에 사망했으며, 그로인해 상속자가 된 딸은 주변세력에게 영토를 빼앗기고 가문은 몰락하게 된다. 이로인해 그의 마지막 예언은 모두 실현되었던 것이다.

(출처 - MBC[신비한TV서프라이즈])

이밖에도 예언가 오드하는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많이 예언 했다고 한다.

1. "도살자가 나타나 하일랜드를 피로 물들일 것이다."

 - 1746년 스코틀랜드 하일랜드 일대에서 컬로든 전투가 일어난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하노버 왕가의 컴벌랜드 백작이 승리하는데 놀랍게도 당시 그를 사람들이 '도살자'라고 불렀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전투로 수 많은 사람이 죽어 하일랜드는 피로 물듬.

2. "수백년 후엔 배들이 톰나허리치 언덕을 돌아 항해할 것이다."

 - 1847년 스코틀랜드의 동해안과 서해안을 연결하는 칼레도니아 운하가 건설되면서 인버네스 지역을 흐르던 네스강은 두 갈래로 나뉘는데 그로인해 배들이 톰나허리치 언덕을 돌아 항해하게 된다.

3. "애버딘에 검은 비가 내려 사람들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 1970년대, 스코틀랜드 인근의 북해에서 유전이 발견되고 이로인해 항구 도시 애버딘은 석유 산업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이로인해 유럽의 석유 수도라 불리게 된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풍요롭게 살게 된다.

(출처 - MBC[신비한TV서프라이즈])

위의 예언들이 적중하자 사람들은 그를 '스코틀랜드의 노스트라다무스'라고 부르게 된다. 

그런데 아직 하나의 예언이 남아있다. '이글 스톤'이라 불리는 바위에 얽힌 예언이다. 오드하는 스코틀랜드 스트라스페퍼에 독수리 문양이 새겨진 독특한 바위를 세웠는데, "이 바위가 쓰러질 때마다 큰 재앙이 뒤따를 것이며 세 번 쓰러지면 전 세계까 멸망할 것이다."라고 예언한 것이다. 이글 스톤은 현재까지 두 번 쓰려졌는데, 첫 번째 쓰러졌을 때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두 번째 쓰러졌을 때 2차 세계대전이 발생했다고 한다. 이에 한 번 더 쓰러지면 세계가 멸망할 것이라 걱정한 사람들이 바닥에 콘크리트를 발라 고정시켰다고 한다. 마지막 예언으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예언가 오드하에 대한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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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널드 레이건 저격 사건과 조디 포스터는 무슨 관계일까?

[흥미로운 이야기 상식] 2016. 1. 10. 20:07

미국의 제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은 취임한지 70일도 되지 않은 1981년 3월 30일 오후 2시 25분, 워싱턴 D.C의 한 호텔에서 오찬을 마치고 나오던 도중 저격범이 쏜 총에 맞고 쓰러진다. 6번의 총성이 울려퍼졌고 이론인해 로널드 레이건은 물론 그를 보좌하던 백악관 대변인 제임스 브래디, 경호원 티모시 맥카티 그리고 경찰관 토마스 델라한티가 총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진다. 그리고 2시간여의 수술을 받고 왼쪽 가슴에 박힌 총알을 제거하여 목숨을 건진다. 그리고 다행히도 총상을 입은 나머지 3명도 목숨을 구한다. 이로 인해 미국 전역은 큰 충격에 빠졌다. 

(출처 - MBC[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럼 과연 범인은 누구이고 범행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사건 당시 현장에서 바로 검거된 저격범은 25살의 '존 힝클리'였다. 그런데 경찰조사 결과 그의 범행 동기는 정말 황당했다. 동기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관심을 받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그리고 더욱 황당한 것은 그 여인이 당시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던 여배우 '조디 포스터'였기 때문이다. 존 힝클리가 평범한 20살 대학생이던 1976년 우연히 조디 포스터가 출연한 영화 '택시 드라이버'를 보게 되는데, 이 영화를 보고 조디 포스터에 광팬이 된것이었다. 그때부터 조디 포스터를 향한 저격범 존 힝클리의 광적인 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그는 그때부터 무려 4년 동안, 매일밤 조디 포스터에게 편지를 썻으며 뿐만아니라 전화를 걸기도 하고 조디 포스터의 집앞에서 몇 시간씩 기달리기도 할 정도로 광적이었다.(조디 포스터가 예일대에 입학하자 그 근처로 이사까지 함.) 


그러던 중 어느날 영화 '택시 드라이버'를 다시 보다가 이상한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바로 ' 영화에서 처럼 '대통령을 저격하면 조디 포스터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는 곧 실현에 옮기는데, 사실 그의 목표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39대 대통령 '지미 카터'였다. 하지만 기회를 노리며 주위를 배회하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경호원들에 의해 불법 무기 소지 혐의로 체포되어 계획이 무산되었던 것이다. 그러다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당선되자 타깃을 바꾼 것이었다. 그리고 저격을 실행에 옮기기 전 조디 포스터에게 범행을 예고하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출처 - MBC[신비한TV서프라이즈])

이 사건으로 조디 포스터는 충격을 받아 한 동안 외부활동을 전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그 사건은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기억'일 것이다.(18년 후 '60분'이라는 TV프로그램에 출연해 이와 같이 고백했다고 함.) 뿐만아니라 당시 총을 맞았던 백악관 대변인 제임스 브래디는 하반신 마비 장애를 평생 안고 살게 되었다.

그러나 법원은 존 힝클리의 정신이상을 이유로 교도소가 아닌 정신병원에 수용하라는 판결을 내린다. 시간이 흘러 2000년 존 행클리는 법원으로부터 장기 외출울 허가 받지만 병실에서 조디 포스터와 연관있는 물건이 발견됨으로써 허가가 무산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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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독불가의 문서 - 빌의 암호는 픽션인가 논픽션인가

"도전하지 마라, 이것을 생업으로 삼지 마라. 너와 너의 가족을 망칠 것이다."

1885년 한 권의 소책자가 세상에 공개되자 세상은 충격에 빠졌다. 이 소책자는 숫자들이 잔뜩 나열된 세 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 암호를 풀면 엄청난 양의 보물이 매장된 곳의 위치를 알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이유로 이 소책자가 출간되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특히 암호 전문해독가와 보물사냥꾼들의 엄청난 관심을 받았는데, 이 책이 바로 <빌의 서류(The Beale Papers)>이다. 


 이 책이 출간되게 된 사연은 다음과 같다.

1820년 미국 버지니아주 린치버그 워싱턴 호텔에 로버트 모리스라는 매니저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의문의 손님, 토머스 빌이 방문한다. 얼마 후 토머스 빌은 로버트 모리스에게 상자 하나를 보관해 달라고 은밀히 부탁을 하며 "누군가 찾으러 올 것이다. 그에게 주면 된다. 만약 10년이 지나도 아무도 찾으러 오지 않으면 자물쇠를 열고 상자를 열어봐라."라고 한다. 시간은 흐르고 로버트 모리스는 상자를 열고 싶었으나 토머스 빌이 "10년 전에는 절대 열어보지마라."라고 당부했기에 10년 동안 주인이 오기를 기달린다. 하지만 결국 10년이 지나도록 아무도 찾으러 오지 않자 로버트 모리스는 그 상자를 열어보게 된다. 그 상자 안에는 뭔지 모를 서류들과 편지가 들어 있었는데, 그 편지를 읽은 로버트 모리스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편지에는 토머스 빌이 1819년 버팔로 사냥을 하던 중 보물을 발견했으며, 이 보물을 버지니아주 린치버그 어딘가에 숨겨두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보물에 대한 단서로 서류들을 함께 상자에 넣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바로 이 서류들이 '빌의 암호', 즉 빌의 서류이다.

 로버트 모리스는 모든 일을 중단하고 빌의 서류 암호 해독에 몰두한다. 하지만 그는 죽기 전까지 암호를 풀지 못했고, 친척이었던 제임스에게 암호를 풀어달라는 당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에 제임스는 로버트 모리스의 뒤를 이어 암호 해독에 매진하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독립선언문'을 떠올리고 암호에 적용하자 두 번째 장의 암호를 풀게 되었다. [예를 들어 두 번째 암호 문서 첫 번째 숫자 115를 독립선언문 115번째 알파벳에 적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푼 빌의 서류 두 번째 문서의 내용은 보물의 대한 정보는 보물의 양(현시가로 한화 800억에 달하는 금과 은)과 매장 위치 정보가 첫 번째 장의 문서에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임스도 끝내 나머지 두 서류의 암호를 풀지 못한다. 그러자 제임스는 로버트 모리스의 유언인 '암호를 꼭 풀어달라.'는 당부를 지키기 위해 소책자로 출간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제임스는 책의 출간과 동시에 자취를 감추었다. 


<첫 번째 암호 문서 - 보물이 매장된 위치에 대한 단서>


<두 번째 암호 문서 - 보물의 양에 대한 내용>

<세 번째 암호 문서 - ??? >

'이것은 이류 역사상 가장 어려운 암호이다.'

- 미 국무부 암호 해독 전문가    허버트 오스본 야들리 - 


'악마의 암호에 농락당했다.'

- 컴퓨터 암호 해독의 1인자    윌리엄 F. 프리드먼 -


'이제껏 이런 암호는 없었다.'

- 보물 사냥꾼   멜 피셔 -

 

하지만 빌의 서류가 소설에 불과하다는 일부 주장도 있다. 영문학자 조니켈은 소책자의 풀이에서 나온 단어 중 'Stampede'라는 단어를 그 증거로 들며 이 단어는 1800년대 후반부터 사용되었는데 소책자는 1800년대 초반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므로 소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증거로 1870년대 버지니아주 인구조사 명부에 로버트 모리스, 토머스 빌이라는 이름이 없었다며, 가상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빌의 서류의 암호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으며, 빌의 서류가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또한 아직도 미궁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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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빨간 카네이션 -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과 한 소녀

[흥미로운 이야기 상식] 2015. 9. 12. 12:16

많은 사람들은 미국의 암살당한 대통령하면
16대 에이브러험 링컨 대통령, 20대 가필드 대통령, 35대 존F.케네디 대통령만 떠올린다.

하지만 한 명의 대통령이 더 있다. 그는 25대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인데요. 저는 그의 죽음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를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출처: 미국의 정부와 정치)

윌리엄 매킨리는 빨간 카네이션이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하여 옷깃에 빨간 카네이션을 착용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저격당한 1901년 9월 6일 버팔로 시에서 열린 전미 박람회에 참석할 때도 빨간 카네이션을 착용하고 참석을 했다고 합니다.

박람회에 참석한 그는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던 중 한 소녀에게 그의 행운의 상징인 빨간 카네이션을 건내주었다. 그때 갑자기 손에 붕대를 감은 한 남자가 다가오며 매킨리 대통령에게 총을 두 발 쏘았다. 그리고 그는 8일 후인 9월 14일 사망한다.

이로인해 많은 이야기와 궁금증이 생겨나게 된답니다. 빨간 카네이션이 행운을 뜻하게 되는것도 그리고 그 행운의 카네이션이 소녀에게 전해지며 행운이 없어진 결과 매킨리 대통령이 암살을 당한거라는 이야기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어쩌면 이 행운의 빨간 카네이션은 하나의 이야기에 불과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매킨리 대통령의 암살과 관련해서는 다른 설도 많기때문이다. 그 중 하나는 매킨리 대통령의 죽음이 테쿰세의 저주에 의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기 때문이다. 테쿰세의 저주란 인디언들이 그들의 영토이자 터전을 미국인들에게 뺏기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싸울 당시 인디언 추장이었던 추장 테쿰세가 죽으며 저주를 거는데 이를 테쿰세의 저주라고 합니다.

저주의 내용은 20년을 주기로 0이 끝 수고 앞 수가 짝수인 해에 대통령은 임기 중 죽는다는 건데요.(정확한 내용은 이해가 잘되지않아서 제가 이해한 내용을 적었으므로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를 암살한 무정부주의자(아나키스트) 레온 촐고츠가 매킨리를 암살한 정확하지 않기에 의문이 많이 남는 사건이다. 물론 그는 암살 후 "내가 대통령을 죽인 것은 그가 선량한 사람들, 선량한 노동자들의 적이었기 때문이었다."라고 주장하긴 했지만 말이다.

추가로 빨간 카네이션의 꽃말은 존경, 사랑(건강을 비는 사랑)입니다.^^

모든 분들에게 항상 행운이 있길 바라며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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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뱀파이어 마을 - 뱀파이어병

[흥미로운 이야기 상식] 2015. 9. 11. 11:02

뱀파이어란 인간의 피를 빨아먹고 생명력을 얻는 육체를 가졌으나 죽은 자를 뜻한다.
이런 자들을 뱀파이어라고 부르게 된 유래에 대해서는 크게 세가지 설이 있는데~~
첫 번째 설은, 터키어의 uber(마녀)에서 유래 되었다는 것.
두번째 설은, 세르비아어로 날지않는 사람을 뜻하는 말인 vanpir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마지막 설은, 날개 달린 망령이라는 뜻의 폴란드어인 upior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로 나뉜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화면 캡처)



이러한 뱀파이어는 흔히 햇볕을 보면 타 죽어버리고 마늘, 십자가를 싫어하며, 대못을 심장에 박으면 죽는다고 흔히들 알고 계시는데요.

여기서에서 이번 이야기의 핵심은 햇볕을 보면 육체가 타버리는 뱀파이어 특유의 성질에 주목하셔야 합니다.

브라질 상파울로의 마을 중 인구 약 800명의 한 마을에 이러한 증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무려 600명이나 있다고 하는데요.


​​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캡쳐 사진)​


이러한 증상은 사실 이들이 뱀파이어라든가 그들의 후손이라서가 아닌 희귀병 때문인데요.
정식 병명은 색소피부건조증(Xeroderma Pigmentosum)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어서 랍니다.
마치 뱀파이어가 햇볕을 보면 피부가 타들어가는 것과 유사하여 일명 뱀파이어 병으로도 불리는 병인데요. 한 두명이 아닌 무려 600명이라는 인원이 같은 마을에서 같은 희귀병을 앓고 있다는 소식이 언론에 보도에 의해 알려지게 되었답니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 세계의 많은 사람이 안타까워 하고 있죠.....(정말 고통스러우실것같아요. 빨리 취료법이 개발되어 고통에서 해방되시기를 바랍니다.)

더욱 슬픈 사실은 이 희귀병이 유전병이라고 하니 비극이 아닐 수 없네요.

XP는 말씀 드린바와같이 현재는 치료법이 없어 의료진들도 햇빛을 피하라는 조치 외에는 할 수있는게 없다고 합니다.

뱀파이어 마을이라는 수식이 생겨버린 작은 마을에서 고통받는 이들에게 좋은 소식이 있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멈출수없는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