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라이즈] 롬멜의 보물, 그 행방은?

[흥미로운 이야기 상식] 2016. 3. 30. 21:39

2007년 7월 18일, ‘테리 호지킨슨’이라는 저명한 탐험가가 놀라운 주장을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사라졌던 일명 사막의 여우라 불렸던 ‘에르빈 롬멜’의 보물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육군 원수였던 ‘에르빈 롬멜’은 능수능란한 지휘로 매우 유명했다. 히틀러 최측근인 ‘요제프 괴벨스’는 ‘사막의 여우 에르빈 롬멜’을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에게 있어 전설적인 존재라고 평가했고, 심지어 상대국이었던 영국의 수상 ‘처칠’ 또한 ‘에르빈 롬멜’을 위대한 장군이라고 평가했을 만큼 ‘에르빈 롬멜’은 독일군과 연합군에게 존경의 존재였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런데, 연합군의 계속된 공세로 독일군의 전선이 점점 무너지게 되자 1943년 ‘롬멜’의 전차부대는 북아프리카 튀니지로 퇴각한다. 그리고 얼마 후, 영국의 한 방송은 튀니지의 사하라 사막에서의 전투에서 연합군이 ‘롬멜’의 부대를 전멸했다고 보도한다. 그런데, ‘롬멜’의 정예부대가 사하라 사막 한 가운데에서 섬멸됐다는 것이 알려지자 ‘에르빈 롬멜’의 부대가 사하라 사막에 간 이유에 의문이 제기된다. 당시 북아프리카 전투에서 상당한 양의 보물들을 강탈한 ‘롬멜’과 친위대 사령관 ‘발터 라우프’(튀니지 나치 유대인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에게 각종 진귀한 역사적 유물들과 금은보화를 약탈했으며 특히 ‘제르바 섬’의 유대인들에게서는 440파운드의 금괴와 보물들을 강탈했다.), 그들이 수탈한 보물의 양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독일군이 계속해서 연합군에게 밀리기 시작하자 ‘롬멜’은 강탈한 보물들을 튀니지에서 이탈리아 남부로 옮기려 했지만, 이미 연합군이 북아프리카 해상까지 모두 장악했음을 알게 되자 ‘롬멜’은 정예부대에게 비밀기지에 보물들을 감출 것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런데, 그가 보물들을 숨기려고 한 장소가 바로 사하라 사막이었고 이로 인해 ‘롬멜’의 정예부대는 군용차 15~20대에 보물들을 싣고 사하라 사막으로 향했다. 그런데 정예부대가 사하라 사막의 비밀장소에 보물을 성공적으로 싣고 돌아오던 도중 연합군의 공격으로 몰살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후, ‘롬멜’이 히틀러에 의해 숙청을 당하자 어딘가에 숨겨진 보물의 위치가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섬멸당한 정예부대가 ‘롬멜’의 보물을 사하라 사막 어딘가에 숨겼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보물들을 찾으려는 수많은 탐험가들이 사하라 사막으로 몰려온다. 하지만 ‘롬멜’의 보물은 쉽게 발견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1948년 6월, 독일 프랑스영사관에 ‘페터 플라이크’라는 한 남성이 ‘코르시카 섬’의 여행 비자를 신청하는데, ‘페터 플라이크’가 제출한 서류를 보던 영사관 직원은 그가 옛 독일군 친위대 잠수부였다는 사실에 의문을 갖게 되고 이에 ‘페터 플라이크’를 조사한다. 그리고 곧 ‘페터 플라이크’로부터 놀라운 이야기을 듣게 된다. 5년 전인 1943년 9월 ‘페터 플라이크’는 상관으로부터 ‘코르시카 섬’ 근처 바다 속에서 철제 상자 6개를 숨길만한 장소를 찾으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이에 ‘페터 플라이크’는 코르시카 섬 인근 바다 속에서 적당한 동굴을 찾았다. 그 후, 그는 그 지점을 표시해 놓고 다음 날 보트에 철제 상자를 싣고 장교들과 함께 그 동굴로 떠났는데, 철제상자를 숨기는 장교들의 모습을 훔쳐보던 중 그 철제상자들 속에 엄청난 보물이 든 것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그는 그곳에 위치와 특징을 기억해 두었다고 한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롬멜의 보물’이 사하라 사막에 숨겨졌다고 알려진 것과는 달리 코르시카 섬 근처에 수장됐다는 ‘페터 플라이크’에 새로운 주장에 탐험가들은 이번엔 ‘코르시카 섬’으로 몰려들었고, 심지어 프랑스 정부는 ‘페터 플라이크’에게 협력을 제안하여 인양작업을 실시하기로 한다. 그런데 몇 달 동안 100억 프랑 이상을 들여 전문 잠수부들과 첨단 장비들을 총 동원해 탐색을 했으나 보물들을 찾지 못했다. 결국 ‘페터 플라이크’는 사기죄로 감옥에 구금된다. 그러던 1943년 9월 어느 날 밤, 독일 군인들이 코르시카 섬 근처 바다 속으로 상자들을 빠뜨리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목격자의 진술로 인해 사람들은 ‘페터 플라이크’의 말처럼 ‘롬멜의 보물’이 ‘코르시카 섬’ 인근에 숨겨져 있을 것 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두 달 후, 출옥을 하게 된 ‘페터 플라이크’, 그런데 출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해변을 산책하다가 갑자기 실종된다. 이에 수색에 나선 경찰들이 그를 끝내 찾아내지 못하자 사람들은 ‘페터 플라이크’의 실종에 거대한 음모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등 근거없는 다양한 소문들이 나돌기 시작한다. 진실은 미궁에 빠진채 어느덧 10여 년이 지난 1961년, 아일랜드의 한 기자가 과거 실종된 ‘페터 플라이크’에 대한 기사를 쓰던 중 이상한 사실을 알게 되는데, ‘페터 플라이크’가 한 말이 전부 거짓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기자는 ‘페터 플라이크’가 사기꾼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쓰게 되고 이는 사람들에 관심을 끌게 된다. 그런데 얼마 후, 기자에게 한 통의 편지가 발송된다. 이 편지는 바로 ‘페터 플라이크’가 보낸 편지였다. 그후 기자는 ‘페터 플라이크’를 만나게 되는데, 그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사실 ‘페터 플라이크’는 이탈리아 해군이었으며, 1943년 9월 17일 모터보트에 철제상자 6개를 싣고 장교들과 함께 코르시카섬의 바스티아 항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출항 전, 상관이 철제상자 속의 물건을 확인하는 것을 훔쳐보고 그것이 ‘롬멜의 보물’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9월 19일 목적지 바스티아 항에 도착하자 갑자기 연합군의 집중 폭격이 시작되었고 이에 다급해져 ‘롬멜의 보물’을 바다 속으로 던져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페터 플라이크’는 당시 ‘롬멜의 보물’을 빠뜨린 지점이 폭파당한 어느 이슬람 사원 건너 편쯤이라고 고백한다. 이후 고들리 기자의 보도로 이 사실은 알려지게 되고, 또 다시 많은 탐험가들이 롬멜의 보물을 찾기 위해 몰려든다. 하지만 롬멜의 보물은 끝내 찾아내지 못한다. 이에 많은 논란이 계속되던 중 2007년 영국의 유명한 탐험가 ‘테리 호지킨슨’이 롬멜의 보물은 코르시카 섬의 바스티아에서 1해리도 채 안되는 바다 속에 수장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다시 한 번 롬멜의 보물은 화제가 됐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롬멜의 보물’은 그 누구도 찾아내지 못한 채 미궁속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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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소중한 유산, 보물 1호~10호 알아보기!!

[흥미로운 이야기 상식] 2016. 1. 24. 15:56

국가 지정문화재에는 '국보', '보물', '사적', '명승', '천연기념물', '중요무형문화재', '중요민속문화재'가 있는데요. 오늘은 그중에서 '보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국가지정문화재 중 하나인 '보물'은 건조물, 전적, 서적, 고문서, 회화, 조각, 공예품, 고고자료, 무구 등의 유형문화재 중에서 중요한 문화재를 국가가 지정해놓은 것을 말합니다.  그럼 우리나라 보물 1호부터 10호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 보물 제1호 - 흥인지문

 - 소재지 : 서울 종로구 종로 288 (종로6가) / 지정연도 : 1963.01.21

 - 특징 : 도성의 여덟 개의 성문 중에서 유일하게 옹성을 갖추고 있음,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는 문화재임.

(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도성의 8개 성문 중에서 동쪽에 위치하고 있어 동대문이라고도 부른다. 1396년(조선 태조5년)에 건립되었고, 이후 1453년(조선 단종 1년)에 다시 고쳐 지었으며, 이후 1869년(조선 고종6년)에 다시 새로 지어져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다. 국보 1호 숭례문과 마찬가지고 지붕은 우진각 지붕이며, 다포양식이다. 그리고 성문 바깥쪽으로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반원 형태의 옹성을 쌓았다. (※옹성 : 성문을 공격하거나 부수는 적을 측면과 후방에서 공격할 수 있는 시설.)

2. 보물 제2호 - 옛 보신각 동종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 지정연도 : 1963.01.21

 - 특징 : 2번의 화재로 원형 손상 및 음향이 변함. 

(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1468년(조선 세조14년)에 만들어 정릉사에 있었다. 하지만 정릉사가 없어지며 원각사로 옮겨졌다가 임진왜란 후 종루에서 보관했다. 그리고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내에서 보관 중이다. '보신각종'이라는 명칭은 1895년(조선 고종32년) 종루에 '보신각'이라는 현판을 달면서 지금의 보신각종이라 불리게 되었다. 높이 3.18m, 지름 2.28m, 무게 19.66톤을 자랑하는 거대한 사이즈의 보신각종은 조선 초기의 전형적인 종 형태이다. 그리고 종의 연대를 알 수 있는 명문이 남아있어서 언제 주조 되었는지 그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그리고 '보신각종'은 음통이 없으나, 두 마리 용이 종의 고리 역할을 하고 있으며 몸통에는 3줄의 굵은 띠와 종 입구 위에는 2줄의 띠를 가지고 있다.


3. 보물 제3호 - 원각사지 대원각사비

 - 소재지 : 서울 종로구 종로2가 38-3번지 탑골공원 / 지정연도 : 1963.01.21

 - 특징 : 앞면의 비문은 '김수온'과 '성임', 뒷면의 추기는 '서거정'과 '정난종'이 짓고 썻다. 

(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원각사지 대원각사비는 원각사의 창건 내력을 적은 '비'이다. 그 내력을 보면 1471년(조선 성종2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탑골공원 위치에 있던 원가사는 조선시대 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당시 조계종 본절로 세웠었다. 그러다 조계종이 없어지자 관아로 이용되었고, 이후 세조가 간경도감에서 [원각경]을 번역하고 화암사 사리탑에서 사리를 나누어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다시 이곳에 원각사를 짓고 10층 사리탑을 세웠다. 비는 비몸돌 위를 두 마리 용이 감싸듯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비 아랫돌인 돌거북은 머리는 목을 표현하지 않고 앞으로 나와있으며, 등무늬는 사다리꼴 평행세선을 새겼으며, 등 중앙은 연잎조각, 꼬리&다리에는 물고기의 비늘 모양을 조각해 놓았다. 그리고 비몸돌 위로는 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보주)을 들고 있는 두 마리의 용이 조각되어있다.(조각 아래 가운데 부분에는 '대원각사지비'라는 비의 이름이 '강희맹'의 글씨로 새겨져 있다.)


4. 보물 제4호 - 중초사지 당간지주

 - 소재지 : 경기 안양시 만안구 예술공원로103번길 4 / 지정연도 : 1963.01.21

 - 특징 : 서쪽 지주 바깥쪽에 명문은 모두 6행 123자 해서체로 새겨짐.(건립에 대한 내용이 작성됨)

(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사찰에 행사가 있을 시 사찰 입구에 '당'이라는 깃발을 걸어두는데, 이 깃발을 다는 장대를 '당간'이라 하고,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하여 주는 2 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현재 지주의 기단은 남아있지 않는다. 양쪽 지주에 장식적인 꾸밈이 없고 윗부분을 둥글게 다듬은 흔적으로 보아 오래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해 간구멍을 각 지주의 상중하 3 곳에 뚫었는데, 이중 동쪽 지주의 윗부분이 깨져 있다.(※ 신라 흥덕왕 1년(826) 8월 6일에 돌을 골라서 827년 2월 30일에 건립이 끝났음을 알 수 있다.만든 해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국내에서 유일한 당간지주라고 한다.)


5. 보물 제5호 - 없음

 - 사유 : '원래는 중초사지 삼층석탑'이 보물5호 였으나 시도유형문화재로 변경되면서 현재 보물 제5호는 공석이다.


6. 보물 제6호 -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 소재지 :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 419-3번지 / 지정연도 : 1963.01.21

 - 특징 :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 전기로 넘어가는 탑비형식을 잘 보여줌.

(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원종대사'를 기리기 위해 고달사터에 세워진 '비'이다. 비신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으며, 이곳 절터에는 '귀부'와 '이수'만 있다. 받침돌은 거북모양으로 머리는 눈을 부릅뜨고 눈꼬리가 길게 치켜올라가 있는 험상궂은 형태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고, 다리의 발톱은 사실적으로 표현되어있다. 목은 길지 않다. 등부분에는 이중의 6각형 모양이 조각되어있고, 중앙부로 가면서 소용돌이치는 구름을 표현하여 '비좌(비를 끼워두는 곳)'를 돌출시켜 놓았다. 그리고 머릿돌은 직사각형의 형태에 가까우며, 입체감 있는 구름과 용무늬가 있다. 밑면은 연꽃을 두르고 1단의 층급을 두었다. (※ 탑비의 비문에 의하면 거북받침돌과 머릿돌이 975년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7. 보물 제7호 - 고달사지 원종대사탑

 - 소재지 :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 산46-1번지 / 지정연도 : 1963.01.21

 - 특징 : 탑신의 문모양과 사천왕입상의 조각

(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3단으로 이루어진 '원종대사탑'은 기단 위에 탑신과 지붕돌을 올려놓은 형태이다. 전체적으로는 팔각의 평면을 하고 있으나 기단부는 네모난 바닥돌에 연꽃잎을 돌려 새겨놓았다. 아래받침돌은 네모난 형태이며, 가운데 받침돌의 윗부분부터 팔각의 평면이 된다. 그리고 가운데 받침돌의 조각은 고려시대의 유물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할 수 있다. 거기에 각 부와의 조화도 매우 뛰어나다. 기단부가 약간 큰 듯 하지만 좋은 비례를 갖췄음을 보여준다.(※ '원종대사'는 869년(통일신라 경문왕9년)에 출생하였으며, 입적은 958년(고려시대 광종9년)에 한 고승이다.)


8. 보물 제8호 - 고달사지 석조대좌

 - 소재지 :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 420-5번지 / 지정연도 : 1963.01.21

 - 특징 : 뛰어난 조각의 사각형 대좌, 고려시대의 양식

(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고달사지 석조대좌'의 불상은 없으나, 대좌는 거의 완벽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받침돌은 상중하 각기 다른 돌을 다듬어 3단으로 이루어져있다. 윗받침돌과 아래받침돌에 대칭으로 새겨 놓은 연꽃잎이 있는데, '고달사지 석조대좌'가 사각형의 엄청난 규묘임에도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것은 바로 이 연꽃잎 때문이다.(석불대좌 상층부에 있었을 불상이 없어진 것이 아쉽다.) 정확한 제작연도는 알 수 없으나 대략 10세기 후반경에 만들어 진것으로 보는 경향이다.


9. 보물 제9호 - 서봉사지 현오국사탑비

 - 소재지 : 경기 용인시 수지구 신봉동 산110번지 / 지정연도 : 1963.01.21

 - 특징 : 고려후기 석비의 새로운 양식을 보여주는 보물.

(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1185년(고려 명종 15년)에 세워진 '서봉사지 현오국사탑비'는 '현오국사'의 행적을 후대에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탑비이다. 화강암의 비받침 위에 점판암의 비몸돌이 놓여있는 형태로 소박한 모습이다. 15세에 '불일사'에서 승력가 된 현오국사는 이후 부석사의 주지가 된다. 그리고 1178년(고려 명종 8년)에 입적하였다. 이에 왕이 매우 슬퍼하며 국사로 삼고 시호를 현오라 한 뒤 동림산 기슭에 화장하였다고 비문에 새겨있다.(서봉사의 건립시기에 대한 기록이 없으나 매우 큰 사찰로 추정된다고 한다.)


10. 보물 제10호 - 강화 장정리 오층석탑

 - 소재지 : 인천 강화군 하점면 장정리 산193번지 / 지정연도 : 1963.01.21

 - 특징 : 고려시대 석탑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보물.

(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1960년 수리하여 다시 세웠으나 파손된 곳이 많고 없어진 부분도 많다. '강화 장정리 오층석탑'은 1층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려놓은 형태이다. 기단 네 모서리에는 기둥모양이 새겨져 있고 탑신부는 1층 몸돌만 2장의 돌로, 그보다 윗 부분은 각 하나의 돌로 짜여있다. 전체적으로 무거운 느낌을 주지만, 신라석탑의 양식을 이어받은 고려시대 석탑의 전형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는 석탑으로 고려 후기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머리장식 부분, 5층의 지붕돌 등이 사라진 상태이다.)


위의 모든 내용은 문화재청 홈페이지(www.cha.go.kr)에 접속하셔서 찾아보시면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박물관 등에 방문하여 보시는 것도 우리의 문화 유산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만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귀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을 찾아가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기억에도 남는 추억이 될 수 있고 여행도 하시면서 1석2조가 아닐까 싶습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으로 더이상 훼손되거나 파손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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