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일화 - 모 버그의 사진

[흥미로운 이야기 상식] 2016. 4. 26. 08:04

1939~1945년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인명과 재산 피해를 초래한 제2차 세계대전,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 선언으로 막을 내린 제2차 세계전쟁. 이 악몽 같은 전쟁으로부터 일본의 항복을 이끌어 내는 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은 바로 메이저리그의 평범한 한 야구 선수였다.

(출처 - 신비한TV서프라이즈)

1937년 7월 일본의 중국 침략으로 시작된 중일전쟁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치열해졌고 이에 따라 일본 역시 재정적·군사적 등 점점 어려움에 처했다. 왜냐하면 전쟁에 필요한 군수물자가 부족해졌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우호국이었던 미국마저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군수물자 수출을 전면 중단하면서 일본은 더더욱 어려워졌다. 그렇게 되자 일본은 미국과의 전면전에 나섰는데, 그것이 바로 미국 본토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1941년 12월 7일 새벽, 일본은 하와이 오아후 섬의 진주만에 있는 미군 기지를 기습한다.

(출처 - 신비한TV서프라이즈)

총 25척의 군함, 전투기 441대를 동원해 진주만을 기습한 일본의 공격에 미국은 함선 18척이 침몰 또는 막대한 손상을 입었고 약 180여 대의 비행기가 파괴되었으며 사상자는 무려 3,400명에 달했다. 이에 미국은 12월 7일을 ‘치욕의 날’로 선정, 일본과의 전면전을 선포하고 2차 세계대전에 합류한다.

(출처 - 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 후 미국과 일본은 아시아와 태평양 등지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일본의 끈질긴 저항으로 쉽사리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러자 미국은 일본을 굴복시킬 결정적 공격을 찾게 되는데, 1945년 미군은 마침내 결정적인 한 방의 공격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일본의 수도인 도쿄를 기습 공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미군에서 보유하고 있는 도쿄 관련 자료들은 부족했다. 이에 미군은 민간 자료까지 총 동원해 도쿄와 관련된 모든 자료들을 수집한다. 그러던 중 도쿄의 시가지가 담긴 사진 한 장을 발견하게 되고 곧바로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을 불러들인다. 그런데 사진을 찍은 사람은 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포수였던 ‘모 버그’였다. 시카고 화이트삭스 출신의 포수 ‘모 버그’는 대학 졸업 후 브루클린 로빈스에 입단했지만 곧 백업 유격수로 전락했고 2년을 벤치에서만 보내다가 마이너리그로 강등됐다. 몇 년 후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들어가게 된 그는 드디어 주전 포수의 자리를 꿰차게 된다. 하지만 1930년 무릎 부상을 입고 또다시 백업 포수로 전락하게 된다. 그 후, 계속된 트레이드 끝에 워싱턴 세니터스에 들어가게 된 모 버그는 1932년 ‘허브 헌터’의 제안으로 일본으로 떠나게 된다.

(출처 - 신비한TV서프라이즈)

일본에서 학생들에게 야구를 가르치며 점차 아시아의 문화에 매료된 그는 결국 모든 일정이 끝난 후에도 혼자 남아 일본 곳곳을 여행했다. 이 후, 미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계속해서 일본을 그리워하던 그는 2년 후인 1934년 베이브 루스, 루 게릭, 지미 팍스 등으로 구성된 메이저리그 올스타팀과 함께 다시 한 번 일본을 찾았다. 올스타팀에 들어갈 실력이 아니었으나 당시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유일한 야구선수였기에 올스타팀에 합류할 수 있었다. 일본에 다시 한 번 가게 된 그는 올스타팀의 경기보다 일본 관광에 훨씬 관심이 많았고 직접 가져온 카메라로 도쿄의 모습을 담는 것에 집중했다. 그리고 미군이 도쿄대공습의 공격위치를 선정하는데 있어서 그가 도쿄에서 찍어온 사진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 것이었다.

(출처 - 신비한TV서프라이즈)

1945년 3월 10일 새벽 마침내 미군은 폭격기 344대를 이용 도쿄 상공에서 무자비하게 폭탄을 투하하기 시작했다. 무려 6시간 동안 100만 발 가량의 폭탄이 떨어진 도쿄는 말 그대로 불바다가 되고 말았는데 공습 하루 만에 약 10만 명이 사망했고 약 100만 명이 이재민이 되었으며 불붙은 기름이 강과 바다에서도 불길을 일으킬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도쿄대공습을 통해 일본의 항복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미국의 기대와는 달리 일본은 쉽게 굴복하지 않았고 끈질기게 저항했다. 일본의 저항이 길어지자 미국 역시 피해가 커졌고 여론 역시 악화되기 시작했다. 이에 미군은 전쟁을 끝낼만한 강력한 무기를 꺼내들기로 결정했는데 그것은 바로 원자폭탄이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암호명으로 비밀리에 원자폭탄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1945년 7월 16일, 원자 폭탄이 드디어 첫 실험에 성공했고 마침내 특단의 조치 일본에 원자폭탄 투하를 결정한 것이다.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기로 결정한 미국은 원자폭탄을 투하할 도시를 결정하는데 박차를 가했다. 원자폭탄 투하 작전의 완벽한 성공을 위해서는 원자 폭탄 투하 목표 도시 선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미국은 원자폭탄 투하 목표 도시 설정 위원회가 결성됐다. 도시 선정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두 가지, 첫 번째는 큰 도시이면서도 중요한 역할 하는 도시여야하며 두 번째는 원폭 투하 시 효과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어야 하는 도시여야 했다. 하지만 계속된 토론에도 의견이 쉽게 좁혀지지 않자 결국 위원회는 다시 한 번 ‘모 버그’의 자료를 찾게 된다. 왜냐하면 일본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던 모 버그의 자료로 일본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출처 - 신비한TV서프라이즈)

마침내 원자폭탄 투하 도시를 선정한다. 선정된 도시는 니가타, 교토, 히로시마, 고쿠라, 나가사키. 위원회는 선정된 도시를 바탕으로 완벽한 원자폭탄 투하 작전을 세웠다. 그리고 1945년 8월 6일과 9일, 마침내 미군은 히로시마에 ‘리틀보이(Little Boy)’, 나가사키에 ‘팻맨(Fat man)’을 투하했다. 결국 1945년 8월 14일 일황 히로히토가 항복을 선언하면서 드디어 제2차 세계대전은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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