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라이즈]역사 속으로 사라진 우리의 '독도 강치'

[흥미로운 이야기 상식] 2016. 4. 11. 13:06

1980년 대, 세계자연보호 국제회의에 참석한 각국의 대표들은 한 동물의 멸종 원인에 대해서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회의에 참석했던 일본대표가 ‘독도 강치’가 멸종된 것이 한국의 경비대원들이 잡아먹어서라는 주장을 했기 때문이었다. 일본 대표의 이 어이없는 주장으로 한국은 한순간에 ‘독도강치’ 학살 주범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게 된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물개과 중 바다사자 아과에 한 속인 ‘강치’는 ‘캘리포니아 강치’, ‘갈라파고스 강치’ 그리고 ‘독도 강치’ 총 세 가지 종류가 있다. 그런데 독도에서 서식했던 강치의 학명은 '일본강치(Zalophus japonicus)'인데, 그 이유는 ‘독도강치’를 최초로 학술기록에 남긴 미국인이 ‘독도강치’를 처음 발견한 장소가 일본의 연안이었기 때문에 이 같은 학명이 붙여진 것이었다. 하지만, ‘독도강치’는 피터가 발견하기 훨씬 전부터 독도에서 서식했던 것으로 밝혀진다. 그 최초의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성종 편’에 나오는데, 학자들은 실록에서 언급된 ‘삼봉도’가 지금의 ‘독도’이며, 인형(人形)같은 것이라고 기록된 것이 ‘독도 강치’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 후, 조선시대 사람들은 독도에 나타난 강치를 ‘바닷가제’ 또는 ‘가지어’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 사실은 ‘정조실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학자들은 여기서 말하는 ‘가지도’는 독도이고 ‘가지어’는 독도에 살았던 ‘독도 강치’를 칭하는 것이라며, ‘가지어’가 지금도 쓰이는 ‘가제’로 발전한 것이라고 밝혔다. 독도는 바위가 많고 먹이가 풍부해 ‘강치’가 살기에 적합한 장소였기 때문에 이후에도 끊임없이 ‘강치’들이 독도에 나타났고 이에 사람들은 그들을 ‘독도강치’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독도강치’는 같은 종류인 ‘캘리포니아 강치’나 ‘갈라파고스 강치’와 비교하면 몸집이 더 긴 편인데, 수컷은 약 240cm, 암컷은 약 180cm 정도였다고 한다. 심지어 일부 ‘독도 강치’들은 길이가 무려 288cm, 몸 둘레가 310cm, 무게는 무려 750kg에 달할 만큼 거대해서 종종 일본 어부들이 던져 놓은 어망을 찢어버리거나 어선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본 어부들은 ‘독도 강치’를 당시 서양인들이 독도를 일컬어 불렀던 이름인 ‘리앙쿠르 암(Liancourt Rocks)’에서 따온 말인 ‘리앙쿠르(Liancourt)’를 딴 ‘리앙쿠르 대왕’이라고 부르며 두려워했다고 한다. 이러한 ‘독도강치’는 덩치만 큰 것이 아니라 돌고래보다도 지능이 높다고 알려진다. ‘독도강치’는 19세기에만 대략 50,000마리 정도가 독도 인근에서 서식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그토록 많았던 독도강치가 1974년, 일본 북해도에서 마지막으로 생포된 것을 끝으로 전혀 발견되고 있지 않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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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갑자기 종적을 감춘 ‘독도강치’의 흔적을 찾던 학자들은 1994년, [일본의 포유류]란 일본 책에서 ‘독도강치’를 발견하는데, 일본인들이 독도의 가제 바위에서 ‘독도강치’를 포획하는 모습이 담긴 옛 사진이었다. 확인 결과, 사진은 1934년 당시 일본어부들이 독도에서 ‘강치’를 잡는 장면을 촬영한 영상에서 찾아낸 것으로 밝혀졌는데, 일본 측의 독도강치 포획 사진을 본 후 관련 자료를 수집해 오던 학자들은 더욱 놀라운 사실을 알아낸다. 1900년대, 수십 년에 걸쳐 ‘독도 강치’가 일본 어부들에 의해 대량 포획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학자들에 의하면 ‘독도강치’는 당시 일본 어부들의 주된 수입원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강치를 잡아 가죽을 벗겨 제품으로 만든 뒤 일본인들에게 팔았다. 당시 강치가죽은 고급가방이나 바가지로 만들어져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 특히 독도강치 가죽으로 만든 가죽 가방이 파리박람회에서 금상을 수여할 정도로 그 가치가 대단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강치의 피하지방으로는 기름을 만들었고 강치의 살과 뼈는 비료로 이용했을 만큼, 어떤 부위도 버릴 것이 없었던 ‘독도강치’는 당시 한 마리의 가격이 황소 열 마리의 값과 같았다고 한다. 이에 일본인들은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 무자비하게 ‘독도 강치’를 잡기 시작했다. 암컷은 그물을 이용해 잡았고 덩치가 큰 수컷은 총으로 잡았다. 뿐만 아니라 새끼들까지 잡아 서커스용으로 팔아 넘겼다. 철저히 일본인들의 생활유지 수단으로 전락한 독도 강치들, 그렇다면 일본 어부들은 당시 대한제국의 영토였던 독도에서 강치를 마구잡이로 잡을 수 있었을까?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그것은 바로 ‘나카이 요사부로’라는 사람에서부터 시작된다. 어업가였던 그는 1891년부터 1892년까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강치잡이를 했고 1893년에는 우리나라 경상도와 전라도 연안에서 해표와 전복잡이에 열을 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독도 강치잡이가 큰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곧바로 강치잡이를 시작한다. 그리고 예상대로 강치잡이를 통해 엄청난 수입을 올리게 됐고 수입이 늘수록 욕심이 더해갔다. 이에 그는 독도 강치 어업권을 독점하고 싶어졌다. 이에 그는 가장 먼저 일본 농상무부에 찾아갔다. 그는 독도가 대한제국의 영토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 농상무부가 대한제국 정부를 상대로 어업 독점권에 대한 교섭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 소식을 접한 당시 일본 해군성의 수로부장 ‘기모츠키 가네유기 제독’은 대답 대신, ‘나카이 요사부로’에게 어이없는 제안을 했다. 독도는 주인이 없는 섬이기 때문에 대한제국에 어업권을 요청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한후 일본정부에 독도 어업권을 요청하는 서류를 제출하라고 한 것이다.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모를리 없는 일본해군은 이를 빌미삼아 독도를 빼앗은 후 해군용 감시 망루를 설치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어떻게든 독도 어업권만 따내면 되었던 ‘나카이 요사부로’는 1940년 9월 29일 일본 해군성의 권유에 따라 일본 정부에 ‘독도 영토편입 및 사용허가 요청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1905년 1월 10일 ‘무인도 소속에 관한 건’이 일본 내각에 올려졌고 1905년 1월 28일 일본 내각의 결정을 통보받은 일본 내무성은 1905년 2월 15일자 훈령 제 87호로 각료회의의 결정을 관내에 고지할 것을 시마네현 지사에게 지시했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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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아직도 일본이 독도가 자신들의 영토라는 근거로 내세우는 ‘시마네현 고시 제 40호’이다. 대한제국의 영토인 독도를 대한제국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독도를 강제로 자신들의 영토로 편입시킨 일본, 그리고 역시 어이없게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나카이 요사부로’에게 독도에서의 강치포획 독점권을 넘겼던 것이다. 독도 어업권을 독점하게 된 ‘나카이 요사부로’는 1905년 한 해에만 2,750마리의 강치를 도살했다. 그 고기와 뼈는 어림잡아도 381톤으로 추정되었는데, 그런식으로 ‘나카이 요사부로’가 잡은 강치의 수는 1904년부터 8년 동안 무려 14,000마리에 달했다. 그가 잡아들인 ‘독도 강치’의 사체 썩는 냄새가 울릉도까지 날아올 정도였고 썩은 고기는 바다에 떠서 수십 km까지 떠돌아 바다를 황색으로 물들여 일본정부조차 나카이에게 경고를 내릴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나카이 요사부로’의 독도 강치 포획은 멈출줄을 몰랐고 1941년까지 연간 수십에서 수백 마리씩 ‘독도 강치’를 포획해간 것으로 드러났다. 그 후, 겨우 몇백 마리 남아있었던 독도강치들은 1948년 독도에서 해상 폭격 훈련을 했던 일본 주둔 연합군들의 사격 연습용 표적이 되어 또 다시 무참히 죽어갔다. 현재까지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 쪽 바다에서도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다만, 세계에서 유일하게 표본으로 남아있는 ‘독도 강치의 박제’가 ‘리앙쿠르 대왕’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산베 자연관에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런데 자신들이 이렇게 수많은 강치를 포획하며 멸종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뻔뻔스럽게도 국제회의장에서 독도 강치 멸종 책임을 한국에 떠넘겼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일본은 독도 강치를 멸종시킨 것도 모자라 독도까지 자신들의 영토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나카이 요사부로’에 의해서 만들어지게 된 ‘시마네현 고시 40호’를 빌미삼아 독도를 다케시마로 바꾸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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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독도의 이름을 ‘다케시마’로 바꾸려는 계획이 쉽게 진행되지 않자, 독도를 서양인들이 불렀던 이름인 ‘리앙쿠르 암’으로 바꾼 후, 다시 다케시마로 바꿀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일본 어부들의 파렴치한 포획에 의해 지금은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독도 강치, 국내 종 복원 및 포유동물 전문가들은 러시아나 베링 해 등에서 독도강치와 혈연적으로 가까운 개체군을 찾아 독도강치를 복원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희소식이 들려왔다. 2009년 독도 주변에서 조업을 하던 어민들에 의해 강치로 추정되는 바다사자들이 무리지어 출몰한다는 것이 확인 된 것이다.

posted by 멈출수없는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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